[다산 칼럼] 불황·인플레 닥친 경제, 韓銀 역할은

입력 2022-03-07 17:18   수정 2022-03-08 00:15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불황이 벌써 2년을 넘어서고 있다.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고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했으나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전통적인 경제 이론에 따르면 예상치 못한 물가 상승(실제 인플레이션율-기대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높을 때 실업률은 낮게 형성되고, 인플레이션율이 예상했던 수준보다 낮으면 실업률은 높았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의 음의 상관관계를, 처음 발견한 영국의 통계학자 이름을 따서 ‘필립스 곡선’이라 부른다. 필립스 곡선이 마이너스의 기울기를 보이는 이유로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은 실질임금을 낮춰 고용을 증가시킨다”는 논리에 따라 1930년대 경제 대공황 기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옹호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주장이 종종 인용된다.

우하향하는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긴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낮은 실업률을 얻으려면 다소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수해야 한다. 즉, 실업률을 낮추는 정책(대개 확장적 재정 및 통화정책)은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어느 정도 실업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양(+)으로 바뀌었다. 이같이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의 등장은 2007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을 겪으며 실업률의 심한 등락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율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데 기인한다.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의 등장으로,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의 동시 달성이 가능하니 정부가 돈을 많이 풀고 지출을 늘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하는 현대화폐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까지 출현했다.

그러나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은 양날의 검이다. 일견 낮은 실업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흔히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 불리는 높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이션의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내포한다. 코로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늘어난 유동성 완화정책의 후유증으로 자산 가격이 급등했고,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이어지며 물가가 빠르게 상승했다. 이는 우상향하는 필립스 곡선의 나쁜 시나리오, 즉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물가와 고용의 관계는 경제가 처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지만, 최근 그 위험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불황의 요인이 민간소비 및 투자 위축 같은 수요 측 충격일 경우 인플레이션과 고용은 상충관계를 보여 전통적 금리정책을 통해 고용-물가 중 하나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가 상승 등 나쁜 충격이 공급 측에서 발생할 경우,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악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고용과 인플레이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더구나 1990년 이후 생산과 고용의 동조성이 약화하는 ‘고용 없는 경기 회복’ 또는 ‘고용 없는 성장’이 관측되고 있다. 대개 생산과 고용은 함께 움직이기 마련인데, 최근에는 두 변수 사이의 동조성이 많이 약화돼 생산이 늘어도 고용은 늘지 않는 경우가 자주 관측된다. 고용 없는 경기 회복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으로 자동화 기술이 노동을 대신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최근 보이는 고용 부진은 기술 및 산업 변화로 인한 구조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단기적 확장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는 불황에 대처하는 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금리 인하 같은 전통적 수단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중앙은행은 효과가 불확실한 고용보다 인플레이션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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