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쉐린 가이드와 미국의 자가트 서베이, 한국의 블루리본 서베이 등은 해마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올해의 레스토랑’을 선정한다. 필자 역시 맛집을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한식의 경우 정갈하게 놓인 알싸한 김치가 그 기준이다. 일식은 매끄럽고 보들보들한 차왕무시(일식 계란찜)를, 중식은 자장면 면발의 탱탱한 정도를 보고 식당 수준을 판단한다. 식기나 조명 또한 음식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명의 밝기나 색온도가 음식과 잘 어우러진다면 금상첨화다.김치와 나이프 등을 보고 그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국가의 문화적 품격은 일상 속 디자인을 통해 드러난다. 지하철 지도는 그 나라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수준을 표상하는 지표다. 지하철 지도는 한정된 지면에 다양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담아야 하기에 사용하는 글꼴의 종류, 크기, 색상, 배치 등에 따라 복잡한 내용이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단순한 내용이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영국이 모범적이다. 해리 베크가 디자인한 영국 지하철 지도는 세계 최초의 지하철 지도다. 체계적인 설계와 조화로운 디자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지하철 지도를 처음 접했을 땐 실망스러웠다. 프라다·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들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에 맞게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뛰어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발생지인 영국은 일찍부터 기계적이고 체계적인 디자인을 고도화했지만, 패션·주얼리 등 전통 수공업에 뿌리를 둔 이탈리아는 장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적인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좋은 명품’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지하철 지도’를 만드는 능력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변화한다. 그렇다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보편화하는 미래 사회는 어떤 능력을 주목할까. 많은 사람이 ‘창의적 창작 능력’을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꼽는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인간의 창의성’은 기술로 완벽하게 자동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로서 ‘디자이너’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좋은 디자인’은 국가의 문화적 품격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가 될 것이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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