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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하려면 1200억 내라" 조합 갑질에…중형건설사 '울상'

입력 2022-03-29 17:31   수정 2022-03-30 00:23

서울 강북권 주요 재개발 사업지인 이문·휘경뉴타운 내 이문4구역 조합은 최근 시공사 입찰 조건으로 ‘보증금 1200억원’을 내걸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역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요구한 입찰보증금 중 최고 금액이다. 총공사비 9369억원의 10%를 훌쩍 넘는다. 결국 지난 11일 입찰을 마감한 결과 롯데건설만 단독 참여해 유찰됐다.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이 과도한 입찰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입찰보증금은 건설회사의 ‘찔러보기’식 입찰 남발을 막기 위한 취지로 조합이 요구하는 보증금이다. 시공사 선정 후 탈락 업체는 돌려받고, 낙찰자가 낸 보증금은 대여금 형식으로 조합 사업비에 활용된다.

건설사 간 입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 조합은 지난해 11월 시공사 입찰 과정에서 보증금 1000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요구했다. 광주광역시 내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인 광천동 재개발 조합은 지난달 입찰보증금 900억원을 내건 바 있다. 다음달 12일 시공사 선정 입찰 마감을 앞둔 부산 우동3구역 재개발 조합도 보증금 700억원을 현금으로 요구하고 있다.

조합이 요구하는 입찰보증금 규모가 지나치게 커 일부 대형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는 등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형 건설사와 달리 수백억원 규모의 현금을 쌓아 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중견 건설사는 경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정 건설사 입찰을 유도하거나 배제해 결국 수의계약 방식으로 전환된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한강맨션은 GS건설 단독 입찰로 두 차례 유찰돼 수의계약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한번 입찰하기 위해 현금 수백억~1000억원 이상을 준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입찰보증금이 중소 규모 건설사엔 일종의 ‘문턱’으로 작용해 대형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시공권을 ‘싹쓸이’하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정부에서 입찰보증금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개정하면서 현장설명회에 입찰보증금 중 일부를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만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입찰보증금 규모에 대해선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아 현재 조합 임의대로 정할 수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민간사업자인 조합으로선 자금력을 갖춘 건설사 위주로 입찰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규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비의 일정 비율 이하로 상한을 두거나 현금 납부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정하는 등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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