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세계 2위'라지만…'불공정피해' 속앓이 해온 금형업계

입력 2022-04-05 13:07   수정 2022-04-05 22:38


'수출 세계 2위, 생산 세계 5위, 기계업종내 대표 무역수지 흑자 품목….'

국내 금형산업의 위상이다. 국내 금형산업의 수출 규모는 2021년 기준 23억2000만달러로 7년째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독일, 일본, 미국, 중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5대 금형 생산국이다. 작년 무역흑자 역시 22억달러로 기계업종의 대표적인 효자 품목으로 등극했다. 국내 부품소재 중 유일하게 1998년부터 매년 대일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자동차,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제품 등 한국이 수출하는 모든 제품의 ‘틀’을 만드는 것이 금형산업이다. 제조업의 근간이라 대표적인 '뿌리산업'으로 통한다. '메이드인 코리아'제품의 화려한 디자인과 품질 경쟁력의 원천엔 금형산업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나라엠앤디, 에이테크솔루션, 재영솔루텍 등 코스닥 상장사를 비롯해 서연탑메탈, 제일정공, 신라엔지니어링, 삼우코리아 등은 전세계 자동차·가전회사들에 납품하는 국내 대표 금형업체들이다.
부품소재 산업중 유일하게 매년 對日흑자이지만...
금형산업의 화려한 위상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불공정 피해'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내 전체 8700개 금형업체 중 상위 몇개 업체만 잘 나갈뿐 대부분 중·하위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어서다. 영세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거의 없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8700곳 금형업체 가운데 연간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19곳(0.2%)에 불과하고 4830곳(55.5%)은 매출이 5억원 미만이다. 전체 금형업체의 83%인 7200곳은 근로자 10인 미만 기업들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소형 금형업계가 몰린 플라스틱금형업계 수출의 경우 지난해 12억2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대비 18.4%감소했다.

최근 '엔저(엔화 약세)'현상으로 실적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국내 금형업계의 수출 1위국이 일본(수출 비중 15.4%)인데다 세계 각국에서 경쟁하는 회사도 일본 금형업체이기 때문이다. 금형업계 밑단으로 내려갈수록 경영이 부실한 이유는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 문화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형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금형산업협동조합의 신용문 이사장은 "대기업과 대형 금형업체사이에는 어느정도 공정거래 문화가 정착됐다"면서도 "자동차·가전 2~3차 협력사들과 중견·중소기업 발주처 중 상당수는 대금지급 지연, 설계 수정비용 미지급, 계약서 미작성 등의 피해를 금형업계에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고 토로했다.

"대금 지급 미루기 다반사, 설계 변경도 공짜로..." 중견 중소 발주처가 문제
보통 자동차는 보닛, 루프, 트렁크, 범퍼, 그릴 등 부품을 제작하기 위해 2만 개 이상의 금형이 필요하다. 금형은 고도의 정밀성과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만드는 데 3개월에서 1년 6개월가까이 걸린다. 비용은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기술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제품 연구·개발(R&D) 시점부터 협업이 필요한 분야다.

문제는 건설 조선 등 다른 수주산업과 달리 수주 단계별로 선급금, 중도금, 잔금을 정확하게 나눠주지 않고 납품될 시점에야 선급금을 주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형조합 관계자는 "금형업계에서 납품될때까지 대금을 모두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납품 1년 뒤에야 잔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부산 한 금형업체는 한 중견기업이 구두로 금형을 주문해놓고 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는 바람에 빚이 누적돼 부도가 났다.

계약서 미작성, 대금지급 지연 등 피해 뿐만 아니라 설계 변경 비용을 주지 않는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 발주처가 수시로 사양을 바꿔 주문하면 중간에 만들던 금형을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주지 않은 것이다. 수도권 A금형회사는 자동차 내장재를 만드는 한 부품업체로부터 최근 3차례나 설계 변경을 요청 받은 끝에 최근 금형을 납품했다. 하지만 설계변경에 대한 비용 2000만원을 제외한 8000만원만 받았다. 금형업계 관계자는 "발주처가 '갑'의 위치에 있다보니 '을'입장인 금형업계 입장에선 수십년간 이러한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8월 수정 작업 비용 등 1억원을 금형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생활용품업체 B사에 과징금 5900만원과 시정명령 조치를 내렸다.
"금형업계 불공정 피해, 제품과 제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 커"
금형업계 피해는 소비자와 가까운 전방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형업계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R&D투자 여력이 사라져 자동차, 가전 등 국내 완성품 제조업체들이 기술력 있는 금형업체를 찾지못해 신제품 개발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또 실력있는 국내 금형업체들이 사라지면서 해외에서 대체할 금형을 수입하게 되면 핵심 제조기술 유출 및 수입에 따른 비용상승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금형조합은 공정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2020년 8월 공정위에 금형업종 표준하도급 계약서 제정을 신청했고 1년 4개월여만인 올해부터 본격 시행됐다. 국내 표준산업분류 1200개 가운데 50번째로 금형업계에 공정위 표준하도급 계약서가 제정된 것이다. 단조 주물 표면처리(도금) 등 14개 뿌리업종 중에선 최초 시행이다. 공정위 표준 계약서에는 계약서 작성 의무와 선급금·중도급 지급비율 표시, 금형 사양 구체화 등을 명기했다. 표준 계약서 작성은 법적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 공정 문화 조성에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신용문 이사장은 "금형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자동차·가전·반도체 산업의 생산과 수출이 불가능하다"며 "금형업계의 공정한 거래 풍토 조성에 대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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