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맞는' 연구에 높은 점수…文정부, 국책硏을 하청기관으로

입력 2022-04-08 17:28   수정 2022-04-09 01:40

문재인 정부가 국책연구원 성과평가 주기 개편을 추진하면서 ‘연구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자신들은 국책연구원을 현 정부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 평가 때 현 정부 국정과제 연구를 얼마나 많이 수행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현 정부 성향에 맞는 연구를 많이 한 국책연구원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국책연구원은 성격상 국정과제를 뒷받침하는 연구를 소홀히 할 순 없긴 하지만 정권 성향을 떠나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장기 연구도 해야 하는데 그런 연구가 드문 데다, 그나마 국정과제 연구도 객관성보다 정부 구미에 맞는 결론을 도출하는 사례가 많아 국책연구원을 현 정부 성향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하청기관’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KDI·보사연, 국정과제 연구에 ‘올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연구기관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국책연구원 평가 지표 중엔 ‘국정과제 및 긴급연구 기여도’가 포함됐다. 총 800점의 연구성과 평가 항목 중 100점이 여기에 배정됐다. 국정과제 연구는 2018년 무렵까지만 해도 주로 연구기획이나 수행단계에서 하나의 평가 요소로 여겨졌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9년 평가 때부터 중요성이 훨씬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책연구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연구에 ‘올인’하다시피했다. 국토연구원이 수행한 연구 192개 중 문재인 정부의 12대 핵심 국정과제와 연관된 과제 수가 186개에 달했다. 전체 연구의 96.8%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국책연구원 성과 평가단은 국토연구원의 연구 수행에 대해 “미흡한 점이 없다”고 힘을 실어줬다. 국토연구원의 종합 평가 등급은 A등급으로 평가 대상 기관 중 가장 높았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지난해 11월 연임에 성공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0년에 한 연구과제 각각 76건과 237건 전체를 국정과제로 채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현 정부 국정과제 지원을 위해 연구예산 전액을 투입했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예산의 87%를 국정과제 수행에 배분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연구 과제 중 80.5%가 국정과제 관련이었다.

국정과제 연구에 소홀한 국책연구원은 비판을 받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배정된 수시사업비 중 61.4%를 정부 부처 현안과제에 투입했는데 성과 평가단으로부터 “다른 연구원에 비해 비중이 높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케어·탈원전 뒷받침에 이용
국책연구원이 국가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연구를 통해 정책을 뒷받침하거나 정책을 바로잡는 일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정부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내는 행태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졸속 추진으로 비판받은 탈원전 정책이나 건강보험 재정 악화 논란을 빚은 ‘문재인 케어’를 정당화하는 데 국책연구원이 동원된 게 대표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 이후 원전의 효율성을 실제부터 과소 추계하거나 신재생에너지의 효용을 과대 추계하는 연구를 했다. 지난해에는 원자력발전소의 발전 단가를 부풀려 원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자료를 발표해 학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일부 연구자는 탈원전을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쓰지 않으려고 퇴사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문재인 케어의 핵심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뒷받침하는 연구를 했지만 지난 5년간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급증한 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추경을 하면 성장률을 1.5%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토연구원은 서울 강남 집값이 오른 이유를 ‘언론 보도 탓’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를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심해졌다”며 “비판적 목소리를 낸 인사에겐 아예 용역을 맡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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