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의 저주' 업계 1위 찍으면…주가 '와장창'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입력 2022-04-10 07:48   수정 2022-04-11 09:24



미간주름 개선에 사용되는 의약품인 보툴리눔톡신제제. ‘보톡스’라는 세계 최초의 제품명으로 알고 계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1g으로 수백만명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치명적인 맹독인데, 극미량을 주사하면 근육을 수축시키도록 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막아 해당 부위 근육에 힘이 안 들어가도록 하는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맹독으로 만든 보툴리눔톡신제제가 이를 만들어 파는 회사의 주가에도 맹독이 된 모양새입니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회사 두 곳의 주가가 모두 폭락했으니까요. 두 회사 중 휴젤은 여전히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데다, 최근 중국과 유럽에서 보툴리눔톡신제제에 대한 품목허가까지 받아내기도 했는데 말이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일 휴젤은 8.07% 상승한 12만5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종가와 비교하면 13.37% 낮고, 작년 7월16일의 고점 26만7000원과 비교하면 반토막 이하 수준입니다.



휴젤에 앞서 국내 기업 중에서 보툴리눔톡신제제를 가장 처음 개발해 2016년까지 이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던 메디톡스의 주가는 더 처참합니다. 지난 8일 종가는 13만400원으로 2018년 7월9일의 70만5278원 대비 81.51% 낮습니다.

두 회사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린 주력제품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 보툴리눔톡신제제의 원재료 격인 균주 출처를 둘러싼 소송 등 법률 리스크로 주가가 몰락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균주 출처 소송의 원고는 메디톡스이고, 피고는 보툴리눔톡신제제 시장의 후발주자들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메디톡스, 미 ITC에 잇따라 후발주자들 제소
보툴리눔톡신제제 업계에서 이 분야 선발주자인 메디톡스는 ‘싸움닭’으로 불립니다. 후발주자들을 향해 균주 및 공정기술의 도용 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달 들어 휴젤의 주가가 급락한 배경도 메디톡스가 자사 균주를 휴젤이 도용했다며 지난달 말 제기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입니다.

앞서서도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 이 회사의 미국 파트너사를 상대로도 제기한 ITC 소송에서 이겨 21개월 동안 대웅제약 보툴리눔톡신제제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라는 결정을 받아 낸 바 있습니다. 이후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에서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해 ITC 결정의 효력은 무효화됐습니다.

ITC라는 미국 기관은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익숙할 겁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현 SK온)의 2조원 규모 합의로 막을 내린 영업비밀 침해 소송도 미 ITC에서 진행됐으니까요.

보툴리눔톡신제제 업계든, 주식 시장이든 미 ITC가 메디톡스와 휴젤 사이의 균주 출처 공방 사건에 대한 재판을 개시할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정은 이달 말께 나올 예정입니다.



만약 재판이 개시되면 또 다시 ‘천문학적 소송비용을 써가며 미국 변호사들의 배만 불려준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게 될 수 있습니다. 앞선 한국 기업끼리의 ITC 소송 때마다 나왔던 지적입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3년여 동안 미 ITC 소송을 벌이면서 소송비용으로만 수천억원을 썼다고 하죠. 다만 메디톡스는 이번에 휴젤을 상대로 한 소송 제기 소식을 전하며 소송 비용 일체를 글로벌 소송 및 분쟁 해결 전문 투자회사 등이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업비밀이나 특허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한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법정을 뒤로 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미 ITC로 향하는 이유는 디스커버리 제도라고 불리는 ‘증거개시프로그램’ 때문입니다. 소송 당사자들의 법률대리인이 ITC 재판부의 판단에 필요한 증거라고 재판부를 설득하면 상대방 회사의 기밀이라도 법률대리인이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소송에 한정해서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ITC 소송에서 패소하면 대부분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상당히 긴 기간동안 제품을 수출할 수 없기에, 재판부가 증거목록으로 지정한 내용을 상대 측 법률대리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균주가 뭐길래…이어지는 진흙탕 싸움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둘러싼 소송전은 ‘균주 소송’이라고 불렸지만,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미 ITC 소송 이후 그렇게 부르기 힘들게 됐습니다. ITC 재판부가 균주는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판결에 포함시켰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대웅제약 제품에 대한 미국 수입 금지 기간도 예비판결에서는 10년이었다가 최종판결에서 21개월로 대폭 줄었습니다.

하지만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려면 균주를 확보하는 게 핵심입니다. 보툴리눔톡신제제는 이미 특허기간이 만료됐지만, 균주를 확보하는 게 어려워 복제약을 만드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죠.

보툴리눔균 자체는 드물지 않습니다. 폐사한 철새의 사체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니까요. 다만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독을 경제성 있게 뿜어내는, 즉 ‘살아있는 좋은 균주’를 찾는 게 어렵다더군요.

메디톡스의 균주도 자체적으로 찾아낸 게 아닙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양규환 카이스트 교수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이 학교에서 만들어낸 균주를 한국으로 갖고 들어와 제자인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에게 전달했다고 하죠. 당시엔 관계 법령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국가 안보를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맹독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가 훨씬 더 촘촘해졌습니다.

문제는 보툴리눔톡신제제의 수익성이 너무나 좋다는 점이었습니다. 한때 보툴리눔톡신제제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50% 이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휴젤의 작년 연간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률이 39.63%에 달합니다. 제조업체로서는 엄청난 수준이죠. 본격적으로 균주 출처 소송전에 나서기 전인 2014년 메디톡스의 영업이익률은 60%를 웃돌기도 했습니다.

초과 수익이 있는 분야에는 경쟁자가 유입되기 마련입니다. 최근까지도 보툴리눔톡신제제의 제조·판매에 나서겠다는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만들어 팔겠다는 회사가 유독 한국에서만 많이 나옵니다. 균주를 확보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데 말이죠. 이 때문에 처음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균주 출처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2016년 전후에도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이후 국내에서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만드는 회사들에게 차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번에 휴젤을 제소했죠.

이 때문인지 최근에 보툴리눔톡신제제 제조·판매 사업에 뛰어드는 회사들 중 일부는 외부에서 균주를 매입해온 뒤 합법성을 공표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위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걸 보면 ‘당연한 게 강점이 된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매끄럽지 않은 일처리로 흙탕물 뒤집어 쓴 식약처
더 씁쓸한 건 보툴리눔톡신제제와 관련한 진흙탕 싸움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휘말려 규제당국으로서의 체면이 깎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미 ITC 소송이 한창이던 시절 메디톡스가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폭로가 잇따라 나온 게 시작이었습니다.

제기된 의혹은 △무허가 원액을 사용한 제품 제조 △자체 품질 검사의 역가 조작 등은 메디톡스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의약품의 국내 판매 등입니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뒤 식약처는 잇따라 메디톡스 제품들에 대한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의약품 규제당국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한 거죠.

하지만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ITC가 내놓은 문건 하나에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지리한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나온 식약처의 엄정한 처분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한 식약처 고위 공무원의 학벌도 입길에 오르내렸죠. 한 식약처 관계자는 당시 기자와 통화에서 직접 해당 소문을 거론하며 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증시에서 특정 종목이 정치 테마주로 주목된 뒤, 해당 회사가 부인하는 모습과 비슷하군요.



일부 다툼의 여지가 있는 의혹에 대한 식약처의 매끄럽지 않은 처분 과정이 이런 뒷말에 힘을 실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수출용 보툴리눔톡신제제의 국내 판매 의혹입니다. 비슷한 정황이 있는 회사가 메디톡스 외에도 여럿이었는데, 당시엔 메디톡스 제품에 대해서만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려 ‘식약처가 메디톡스를 죽이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여지를 식약처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식약처가 국가출하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수출용 제품의 소유권이 국내에서 수출상으로 이전됐다는 점을 문제삼아 2020년 10월 메디톡스 제품 5개 품목에 대해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자, 메디톡스는 해당 제품이 국내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데다 문제가 된 거래 방식은 관행으로 비슷하게 수출하는 회사들도 있다고 반박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식약처는 휴젤에 대해서도 몇 년 전에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수출용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했다는 이유로 품목허가 취소 처분 절차에 돌입한다고 작년 11월10일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작년 11월9일에 18만2200원이던 휴젤의 주가는 2거래일만에 13만원으로 급락했죠. 업계는 휴젤 이후로도 같은 사유로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당할 보툴리눔톡신제조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식약처의 메디톡스 죽이기’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고 볼 만합니다.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국내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하는 방식의 간접 수출 역시 수출에 해당하므로 해당 품목의 국가출하승인은 면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건의문을 식약처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년 반 전 메디톡스 혼자 외치던 주장을 이제는 제약바이오업계가 하는 겁니다.

메디톡스에 대해서만 국가출하승인 미승인 제품의 국내 판매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업황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메디톡스를 비난하는 목소리만 냈습니다. 강력한 경쟁자 하나가 사라지는 효과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싸움닭’인 메디톡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고요.

메디톡스가 가진 균주라는 진입장벽이 영원히 버텨주지는 못할 겁니다. 이미 많이 허물어졌죠. 하지만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액상형 보툴리눔톡신제제를 개발했을 정도의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용 용도의 보툴리눔톡신제제 시장이 더 크지만, 세계적으로는 미용 용도와 치료 용도의 시장이 비슷한 규모라고 합니다. 치료용 보툴리눔톡신제제 시장에 한국 기업들은 아직 완전히 진입하지는 못한 상태죠. 경쟁자를 죽이기 위한 ‘치킨게임’에 나서지 않아도 성장할 여지이 남아 있다는 거죠.

앞으로 보툴리눔톡신제제 기업들의 다툼은 법정이 아닌 의료·연구 현장에서만 봤으면 합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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