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의 부상과 CPTPP…"가입 시기 놓쳐 비용 높인 한국" [이지훈의 통상 리서치]

입력 2022-04-11 10:45   수정 2022-05-11 00:02

『한국 정부는 태평양에 접해 있는 국가 간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삼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이달 가입신청서를 제출키로 했다. 오는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본격적인 CPTPP 가입 협상에 나서야 한다. 국내에선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농축산업계의 반발을 넘어서야 하고, 일본 등 기존 가입국의 텃새도 이겨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왜 인제야 CPTPP라는 험난한 산을 넘으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CPTPP의 태동과 역사적 경로를 되짚어 봐야 한다. CPTPP 가입에 따른 비용 편익 분석도 필수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는 도구로 CPTPP가 쓰일 수 있을지 따져볼 것이다.』


<hr >▶CPTPP 대해부 기사 게재 순서
①아태지역의 부상과 CPTPP...“가입 시기 놓쳐 비용 높인 한국”
②CPTPP, 이달 가입신청서 낸다...무역효과는 과소 추정, 농축산 피해는 과장
③공급망과 新통상의 기준이 될 CPTPP...“지금의 판단이 한국 미래 가른다”<hr >


CPTPP는 호주·브루나이·캐나다·칠레·일본·말레이시아·멕시코·뉴질랜드·페루·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1개국이 체결한 자유무역 경제블록이다.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13%, 무역 규모는 15%에 이른다. 그야말로 메가톤급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가입국들은 통일된 원산지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점에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자유무역을 지향하지만 역내 국가들 간의 동맹 성격에 강해 비차별 원칙을 기반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통상 전문가들이 "CPTPP는 통상정책인 동시에 경제 안보를 위한 지경학적 전략 수단"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美 주도 CPTPP의 태동과 전개
CPTPP의 전략적 성격은 그 태동을 살펴야 알 수 있다. CPTPP는 아·태 경제통합을 둘러싼 각 국간 오랜 경쟁과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서 '자유무역협정(FTA)'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국익 증대를 위한 경제동맹 구상에 나선다. 이 같은 동아시아 경제동맹 논의는 2008년 'WTO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가속화된다. WTO 체제 출범 이후 첫 다자간 무역협상이었던 DDA 협상이 깨지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자유무역 질서 형성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아태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동아시아 경제통합 논의에서 빠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부시 행정부가 먼저 CPTPP의 모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이후 2009년 출범한 오바마 정부도 TPP가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부시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었던 미국은 TPP 구상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과 미국을 연결해주는 고리"라고 판단했다.


미국의 주도하에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브루나이·칠레·페루·베트남 등 8개국이 모여서 2010년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제1차 TPP 협상이 열렸다. 미국은 당시 최신 FTA 모델이었던 한·미 FTA에 기초해 협상에 임했다. 그해 10월 제3차 협상부터 말레이시아가 합류했고, 2012년에는 멕시코와 캐나다가 참여하면서 11개국으로 참가국이 늘었다.
일본의 리더십과 CPTPP 공식 출범
CPTPP 내에서 일본이 발휘한 리더십은 한국에게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FTA 협상에서 늘 수세적인 국가였지만, CPTPP를 통해 반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외전략은 오랜 기간 미국과의 군사 안보 협력을 기반으로 자국 경제발전에 역량을 집중하는 '요시다 독트린'의 기조를 이어왔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일본의 대외 정책에 대해 "일본의 통상 정책은 자국 수출에 도움이 되는 무역 자유화에 찬성하면서도, 농축수산업 반발을 의식하는 국내 정치의 영향으로 FTA 협상에서는 늘 한발 물러서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은 한국이다. 한국은 한·미 FTA, 한·EU FTA 등을 잇달아 타결하면서 국제 통상 무대에서 앞서 나갔다. 일본에서 한국과의 FTA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때마침 2009년 54년 만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 내각도 자민당과의 대외정책 차별화와 신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FTA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TPP를 밀어붙인 사람은 자민당 아베 총리였다. 2012년 12월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승리로 정권이 교체돼 정권을 잡은 아베는 기존의 TPP 반대 입장을 뒤집었다. 농업은 일본 보수주의의 기원이자 정치적 성역으로 인식돼 왔던 것을 감안할 때 TPP 참여 결정은 아베의 놀라운 승부수였다. 아베는 '제2의 개항'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TPP를 통해서 잃어버린 30년 동안 활력을 잃은 일본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싶어 했다. 또 대외적으로 TPP 가입이 미일 동맹의 강화와 대중국 견제라는 지정학적 전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일본은 실무협상 막바지였던 2013년 7월 제18차 라운드부터 참여했다. 2013년 하반기부터는 실무협상을 사실상 끝내고, 양자 협상과 TPP 각료회의 중심으로 최종 타결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2016년 2월 TPP 12개국이 총 30개 챕터의 협정문에 서명, 세계 GDP 약 40%의 거대 경제통합체 출범을 목전에 두게 됐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로 도널드 트럼프가 부상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트럼프는 캠페인 과정에서 러스트벨트 표심을 얻기 위해 TPP를 '끔찍한 협상'이라 평가절하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급기야 2017년 TPP 탈퇴를 강행한다.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이 탈퇴하자 TPP는 뿌리째 흔들렸다.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국가를 중심으로 미국이 없는 TPP는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연합해 우선 TPP를 발효시키고, 추후 미국의 복귀를 도모한다는 분위기를 이끈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CPTPP 출범이 자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봤다. 이 같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2018년 12월 30일 미국을 제외한 11개국 체제로 CPTPP가 정식 발효됐다.
한국은 왜 가입하지 못했나
한국은 늘 CPTPP에 가입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었지만, 한 번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먼저 태동기에 협상 참여가 가능했다. 2009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TPP 구상을 밝힐 당시 미국은 한국·일본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광우병 촛불시위 여파로 나라가 휘청이던 상황에서 또 다른 잡음을 만들어내길 원치 않았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료는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외 개방 이슈를 제기하기보다는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게 통상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2011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정부는 TPP 참여 여부를 검토했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국내 정치 상황이 또 발목을 잡았다. 또 당시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과의 FTA에 이어 한·중 FTA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2014년 2월에 범부처 TPP 대책단을 설치하는 등 또다시 CPTPP 가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탄력을 받지 못했다. 이미 기존 참가국들이 TPP 실무협상을 마무리한 상태라 한국이 뒤늦게 참여하는 데 무리가 있었고, 한국을 경계하는 일본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 됐다.



또다시 정부 내에서 CPTPP가 언급된 것은 2018년 3월이 되어서다. 당시 김동연 부총리가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CPTPP 가입 여부를 상반기 안에 결정”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아직 CPTPP 회원국들이 신규 가입 조건과 절차를 정하지 않아 우리의 가입 득실의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했고, 농축산 분야의 대외 개방 강도가 너무 강하다는 농림부 등 일부 부처의 반대도 계속됐다. 정부 관계자는 "2019년에 CPTPP 위원회가 기존 회원국에 유리한 신규 가입 절차와 조건을 내걸면서 정부는 가입 협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게다가 그해 3월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는 CPTPP 가입을 추진 동력을 완전히 잃게 만든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통상환경 급변과 CPTPP 중요성 부각
2020년 11월 바이든 후보가 당선으로 국제공조 복원이 전망되고, 동아시아 역내 경제통합체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공식 출범하면서 CPTPP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특히 영국, 중국,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이 추가로 가입신청을 하면서 CPTPP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게 됐다.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영국이다. 영국은 이미 작년 6월 가입 협상을 시작해 올 연말 최종 타결을 목표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결정 과정에서 보수당이 내세운 ‘글로벌 브리튼’의 대외성과로 CPTPP 가입이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작년 9월 느닷없이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과거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이라고 CPTPP에 부정적 의견을 내던 중국의 돌발행동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고립전략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CPTPP를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아직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국의 경제력을 토대로 유리한 지위에서 협상이 가능하고, 협상에 따라 노동·국영기업·디지털 등 까다로운 규범에서 의무면제를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을 것이란 지적이다.

다만 가입 협상이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높은 수준의 CPTPP 규범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고, 호주·일본 등과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어서다.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에서 비시장 국가와 FTA를 맺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서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과의 FTA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입신청 다음 날인 2021년 9월 22일 대만도 가입신청을 제출했다. 대만의 CPTPP 가입은 단순히 경제적 득실을 넘어 미국, 일본, 대만의 경제동맹을 구축하려는 안보적 의미도 깔려 있다는 평가다. 대만 정부는 일본과 비공식 접촉을 오래전부터 진행하면서 CPTPP 가입을 위한 물밑작업을 해왔고, 가입신청 이후에는 지난 2월 일본의 관심 현안인 식품 수입 규제를 11년 만에 완화하는 성의를 보였다. 다만 대만의 가입 시도에 대해 중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향후 절차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의 CPTPP 복귀는 쉽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산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 안정을 강조했다. 또 취임 초기부터 시장개방을 수반하는 무역자유화 협정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미국은 아태 지역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급망과 기후변화, 디지털 등 신통상 이슈를 통해 새로운 경제동맹 구성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대외환경 속에서 발전해 온 CPTPP는 단순히 통상협정을 넘어 지경학적 변화를 주도하는 대외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평가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TPP를 시작했고, 일본 아베 총리가 자국 경제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축으로 CPTPP를 완성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속에 국내 반발을 넘어서지 못해 CPTPP 추진동력을 늘 잃어왔다. 그 결과는 가입 비용의 지속적 증가다. CPTPP 가입 추진에 대한 국내 갈등이 여전하고 경제적 관점만으로는 뚜렷한 가입 명분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한 통상 관료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 통상, 안보를 아우르는 종합적 사고와 국론을 모아가는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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