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시공사와 조합 간 극한 대립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행을 빚고 있다. 공사비 미지급으로 시공사업단(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지난 15일 전면 공사 중단에 들어가자 조합 측은 16일 전 집행부가 통과시킨 공사비 5600억원(총공사비 3조2294억원) 증액 결정을 취소했다. 조합 측은 공사 중단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시공사 교체까지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조합에는 교체 권한이 없다”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조합과 시공사 간 ‘벼랑 끝 대치’에 1만2032가구(일반분양 4986가구),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리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장기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양측 간 갈등은 2019년 12월 전임 집행부가 1000가구 신축 및 상가 공사비, 물가인상률 등을 반영해 기존 2조6708억원이던 공사비를 3조2294억원으로 약 5600억원 증액한 게 발단이 됐다. 조합 핵심 관계자는 17일 통화에서 “전 조합 집행부의 의결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며 “공사비 증액 의결이 정당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합 측은 각종 건설자재 비용 인상으로 인한 증액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비를 무조건 증액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증액분이 합당하게 책정된 것인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공사업단은 “조합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창호 새시 등 자재의 종류를 확정하지도 못했는데 증액 세부내역서를 어떻게 가져오라는 얘기냐”며 조합의 주장이 무리라고 반박했다. 특히 공정률이 52%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 동안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증액 결정을 취소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공사 측은 “한국부동산원의 검증을 두 차례나 거쳤다”며 “당초 원안보다 가구수가 늘어난 데다 조합 측의 자재 고급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속도가 생명’인 재건축 사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양측이 이른 시일 안에 타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양측이 승자 없는 싸움을 이어가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이 입게 된다”며 “조합 측은 시공사가 아군도 아니지만 적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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