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 규모의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평평하고 탁 트인 지형에서 대규모 교전은 러시아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결과도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용기와 명석한 전술, 서방의 무기 지원 등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또 다른 굴욕적인 후퇴를 겪을 수 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번 전쟁이 돈바스, 몰도바 지역에 있는 친러 세력의 붕괴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결속력 강화, 그리고 종합적인 군사적 패배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결말은 개인적인 굴욕을 넘어 그의 정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와 이미지가 심리적, 전략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러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결정적인 패배는 ‘모스크바의 수에즈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심장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다면 러시아인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수세기에 걸쳐 고통스럽게 재건한, 레닌과 스탈린이 복원한 차르 제국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다른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자기성찰을 강요당할 것이다.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푸틴 대통령 치하에서 러시아의 정치 사상은 세 가지 신념에 의해 형성됐다. 러시아는 다르다는 신념과 그 다름이 초월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런 신념들이 세계 역사에서 러시아에 독특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믿음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패배는 이런 신념들을 급속하게 약화시켜 러시아를 정체성 위기에 빠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전쟁이 푸틴 정권의 내재된 어둠을 드러내고, 우크라이나에서의 만행이 카인의 낙인을 깊이 새겼으므로 러시아의 패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영토 확장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 아무리 무자비하고 흉악하더라도 가능한 모든 무기와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 모든 무기와 수단이 바닥날 때까지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WSJ 칼럼 ‘The End of Russia’s Empire?’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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