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59엔' 시절로 돌아간 맥도날드…"과거와 다르다" 우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04-25 07:18   수정 2022-04-25 07:23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에서 맥도날드 햄버거가 59엔(약 570원) 580원, 100엔숍의 가격이 50엔이었던 때가 있었다. 1970~1980년대 얘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2002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최근 엔화 가치가 20년 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128엔까지 떨어지면서 일본은 '엔저(低)'로 뒤숭숭하다. 현재 엔화 수준은 햄버거 59엔, 100엔숍이 50엔숍이었던 2002년 달러 당 환율 수준과 비슷하다.

2002년 1월 달러 당 엔화값은 135엔까지 떨어졌다. 2001년 일어난 미국 9·11테러의 여파로 일본이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던 때다. 실업률이 5%를 넘으면서 고용 소득 소비가 모두 저조했다. 10월에는 닛케이225지수가 8498까지 곤두박질쳤다. 1989년 39,000까지 치솟았던 지수가 5분의 1토막 났다.



최근 일본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과 이 충격을 증폭 시키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신음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과 일본 걱정'이라고들 한다. 매년 20조엔 가까운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자산에서 막대한 이자와 배당수입을 얻는 나라를 왜 걱정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겪는 문제는 과거와 결이 다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일본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한국은 5~10년 주기로 같은 고민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선례를 착실히 연구해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번은 다르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경상수지 흑자 구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란 무역수지와 서비스수지, 1~2차 소득수지를 더한 수치다. 무역이나 투자 등 외국과의 경제거래 내역을 기록한 한 나라의 가계부다. '막대한 해외자산에서 매년 이자와 배당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일본은 걱정없다'는 항목이 1차 소득수지(한국의 본원소득 수지에 해당)다.



일본의 경상수지 구조를 뜯어보면 최근의 엔화 급락과 무역수지 적자가 왜 걱정거리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1996년 이후 일본의 경상수지와 이를 구성하는 무역·서비스 수지와 1차 소득수지 추이를 보자. 2000년대 일본은 무역·서비스수지와 1차 소득수지가 각각 10조엔씩 쌍끌이 흑자를 기록했다. 덕분에 연간 경상흑자 규모가 20조엔에 달했다. 2007년 경상흑자는 25조엔까지 늘었고,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조차 14조엔 흑자였다.



이 구도는 2010년 이후 크게 변한다. 무역·서비스 수지 흑자규모가 급격히 줄다못해 적자를 내는 해가 늘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경기침체에 빠진 2012~2014년은 무역·서비스 수지가 10조엔 안팎의 적자를 냈다. 이 때문에 경상흑자 규모가 4조엔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2016년 후반 경상흑자가 다시 20조엔 수준을 회복한 것은 1차 소득수지가 매년 20조엔 이상의 흑자를 낸 덕분이다. 결론적으로 2020년대 들어 일본 경제는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익의 부진을 해외 자산의 이자와 배당 소득으로 만회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무역흑자와 해외 자산의 이자·배당이라는 2개의 기둥 가운데 무역흑자의 기둥이 무너지고 해외 자산의 이자·배당이라는 1개의 기둥만 남은 셈이다.

해외 자산의 이자·배당 수입 덕분에 유지되던 경상흑자마저도 최근엔 바뀌었다. 작년 12월부터 일본의 경상수지는 2개월째 적자를 냈다. 특히 1월 경상적자는 1조1887억엔으로 역대 두번째 규모였다.



마지막 남은 기둥이던 1차 소득수지가 줄어서가 아니다.1월 1차 소득수지는 1조2890억엔 흑자로 1년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2조3422억엔에 달하는 무역·서비스 적자였다. 1월 무역·서비스 적자 규모는 2조3422억엔으로 1년새 4배 불었다. 무역적자가 너무 커지다 보니 해외 자산에서 벌어들이는 이자와 배당 수입으로 만회가 안되는 것이다.

일본을 더욱 휘청이게 만든게 20년만의 최저치인 엔화 급락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고통을 받는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원유 같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일본은 엔화 가치까지 떨어지니 충격이 배가 된다. 원자재를 수입할 때는 달러로 결제하는데 엔화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까지 일본의 경상흑자를 이끌던 무역수지가 2010년 이후 경상적자의 원인이 된 건 일본 기업들이 생산거점과 연구시설을 대거 해외로 옮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여러차례 보도했다. 일본 기업이 해외거점에서 생산·판매한 제품은 일본의 수출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무역수지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95년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체 수출 가운데 자국 내 생산 부가가치 비중이 94%였다. 2018년 이 수치는 8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등 고부가가치 상품을 자국에서 제조해 해외 고객에게 판매한 반면 일본은 자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에는 (글로벌 경쟁력이 없어서) 남을 수 밖에 없는 기업만 남아 제조업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늘어난다고 좋아했던 일본이 이제는 거꾸로 원유나 원재료 수입값이 급등한다며 울상을 짓는 이유다. 국가 경제의 체질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올해는 일본이 1980년 이후 42년 만에 연간 기준으로 경상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9일 자체 분석결과 올해 달러당 엔화 환율이 120엔,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유지하면 9조8000억엔의 경상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오키 다이주 UBS증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이 앞으로 10년 이내에 만성 경상적자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상적자가 이어지면 수십년간 쌓아올린 대외자산이 줄어든다. 2020년말 일본의 순대외자산은 356조9700억엔으로 30년 연속 세계 1위다. 하지만 2019년보다 약 50조엔 감소했다. 한때 2배 이상 벌어졌던 독일과 차이는 24조엔까지 줄었다. 2021년에는 독일이 일본을 역전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자랑인 세계 1위 규모의 대외자산이 흔들리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위기 때마다 엔화는 가치가 치솟는 안전자산이었다. 엔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대접을 받는 이유가 30년째 세계 최대인 대외자산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져 엔화 가치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과 달리 엔화는 주요 25개국 통화 가운데 2번째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안전자산 대접을 못받은 것이다. 엔저가 경상적자를 증폭시키고 순대외자산을 감소시키면서 일어난 이변이라는 분석이다.



일본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스즈키 준이치 일본 재무상은 지난 15일 기자회견과 18일 국회에서 잇따라 "기업이 원재료값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임금인상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엔화 약세는 '나쁜 엔저'"라고 말했다.

통화당국 최고 책임자가 환율 수준을 이처럼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은 상대국이 걸려 있는 문제, 즉 달러엔 환율이라면 미국이라는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통화당국자들은 환율의 수준이 아니라 속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일본 재무상이 '나쁜 엔저'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구두개입을 했는데도 엔화 가치는 126엔까지 떨어졌다. 연내 13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흔하게 나온다. 엔화의 방향을 바꿔놓으려면 구두개입이 아니라 일본은행이 ‘나홀로 금융완화’를 멈춰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영국 한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금리를 올리는데 일본은행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이자율이 제로인 일본에서 자금을 빼 이자율이 높은 미국에 투자하는게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나홀로 금융완화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구로다 총재는 2013년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아베노믹스를 측면지원했다.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으로 2% 수준을 유지할 때까지'인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긴축으로 돌아서면 지난 10년간의 금융완화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환율을 방어하려다 자칫 재정을 파탄낼 수 있다는 점도 일본은행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다. 작년말 일본의 국채 잔고는 처음으로 1000조엔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56%로 미국(133%) 영국(108%)의 2배가 넘는다.

올해도 일본 정부는 예산 부족분 37조엔을 적자국채를 발행해 매운다. 일본이 선진 7개국(G7) 최악의 재정건전성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은행이 국채의 상당 부분을 사들여 금리가 오르는 것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말 일본은행은 일본 국채의 44.1%를 갖고 있다.



일본 재무성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연간 원리금 부담이 3조7000억엔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매년 갚아야 할 원리금은 7조5000억엔 더 불어난다.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고 통화긴축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서 엔저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금리가 워낙 가파른 속도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물가와의 싸움에 나선 미국 정부가 엔화 강세를 용인할지도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환율을 방어하려면 금리를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며 “그 경우 재정이 파탄 나서 다시 엔화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일본의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인 사이제리아의 호리노 잇세 사장은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화제를 모으는 인물이다.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점심 시간에도 외식을 자제해 달라는 일본 정부의 권고에 "후사케루나(ふざけんな!·'장난해 지금!'이라는 뜻)"이라고 맹반발해서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호리노 사장이 지난 13일 실적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모든 수입품에 통화약세의 여파가 불어닥치는 최악의 엔저"라며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언제까지 엔 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구로다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재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도 호리노 사장과 일치한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9일까지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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