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퇴사협상에도 ABC가 있다

입력 2022-04-26 17:36   수정 2022-04-27 17:51



승진 이후 팀 성과가 저조하고, 불명확한 지시와 잘못된 사업상 판단으로 팀원들로부터 신망을 잃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팀장이 있다. 피드백 절차를 통해 개선을 도모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아 업무 능률을 위해 팀장에 대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하자. 기업은 어떤 인사조치를 할 수 있을까?

경영자나 인사, 법무 담당자는 저성과 해고, 전보, 연봉 감액(급여 조정)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사조치는 모두 중대한 약점이 있다.

저성과 해고는 그 요건을 충족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작년 대법원에서 대기업 제조사의 저성과 해고가 유효하다고 인정한 판결이 나오자 화제가 되어 많은 평석이 쏟아질 정도다. 그런데 해당 판결은 3년간 성적 평가가 최하위권(하위 2% 미만)을 기록한 직원이 교육 후 직무재배치 되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었던 극단적 사안을 다룬 것이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8다253680 판결). 통상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저성과가 문제된 사안이었다면 해고가 적법하다고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보를 한다면, 팀장의 소속 부서와 담당 업무를 변경하고, 직위를 팀원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정당화하기 어려운 교육 훈련 투자가 필요하거나, 그나마 팀장 경력에 맞는 자리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국내 사업 규모가 작고 T/O를 까다롭게 관리하는 외국계 회사에 그런 경우가 많다. 최근 전보 유효성을 종전보다 엄격하게 인정하는 법원 경향도 부담스럽다. 한 예로, 팀장을 조직개편을 이유로 팀원으로 전보한 사안에서, 이 때 전보의 업무상 필요성은 비대칭적 정보를 보유한 사용자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면이 있으므로 종전 관행과 비교하여 얼마나 이례적인지 등을 고려해서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보가 위법하다고 한 판결도 있었다(서울행정법원 제11부 2022. 4.8. 선고 2021구합52754 판결).

연봉 감액은, 실력 내지 성과에 근거한 급여 지급이라는 점에서 저성과 대응에 적합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취업규칙상 아예 연봉 감액이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되거나, 오랜 기간 연봉 감액을 실행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을 우려하여 쉽게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발하는 직원이 나타나면 대응도 쉽지 않다. 감액 제시된 연봉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게 합의 시까지 새로 감액 제시한 연봉을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할 수 있을까? 감액된 급여를 급하면 임금 미지급 관련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종전 급여를 그대로 지급하면 감액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런 사정 하에서 퇴사 협상은 저성과에 대응하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 된다. 기업은 앞서 설명한 조치와 연결하여, 또는 처음부터 직접 퇴사 협상을 통해 저성과자의 원만한 퇴사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형식만 합의일 뿐 실질은 퇴사 강요라면 퇴사 협상 과정에서 괴롭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기껏 합의가 이루어져도 합의가 무효라고 판단될 위험이 있다. 즉, 저성과 직원이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퇴사에 동의해야 하며, 그 동의 여부는 오로지 직원이 수긍하는지에 달려있다. 정년까지 급여를 일시에 다 준다고 해도 직원이 무슨 이유에서건 동의하지 않으면 기업은 의도를 달성할 수 없다.

저성과 직원이 기업 요구에 응해 자발적으로 퇴사하도록 하려면 기업은 저성과자 퇴사협상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협상 과정에서 기업이 유념할 사항을 소개한다.

우선 협상 시작 시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저성과 직원이 전혀 퇴사를 고려하지 않을 때, 아무런 맥락 없이 퇴사를 권유하면 합의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합의 결렬 후 기업의 모든 인사 조치가 퇴사 강요 수단이라고 오해 받을 수 있다. 아직 준비 안된 직원과 협의 과정에서 직원의 퇴사 합의금에 대한 기대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조직변경 설명 면담 △희망퇴직 의사 확인 면담 △PIP 결과 통지 면담 △전보 관련 협의 등 객관적으로 퇴사 협의를 할 수 있다고 인정되고, 이상적으로는 실제 본인도 퇴사를 현실적 옵션으로 고민하는 시점이 퇴사 협상을 시작할 바른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정하면 퇴사 사유를 언급하는 방법과 수위,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첫 제안부터 합리적 수준의 제안을 하고, 위로금 외 요소도 고려한다.

첫 제안은 퇴사를 원하는 기업이 하는 것이 통상이다. 이때 첫 제안은 너무 높아서도 안되지만, 지나치게 낮아도 안된다. 상대방 직원이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최소한 수정 제안을 할 정도로 합리적 수준의 제안이어야 한다.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위로금 액수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의제도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 협상이론에서 유능한 협상가는 꺼내놓을 수 있는 모든 의제(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의 판을 키운다고 하는데, 퇴사협상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위로금 지급시기, 지급 방법, 조건도 카드가 된다. 그 외에 퇴사 전 유급 휴직기간(Garden Leave)의 부여, 법적 책임 추궁의 포기, 경업금지 약정 면제, 회사 차량 사용허가, 장기재직 혜택 부여도 중요 카드가 될 수 있다. 이런 카드가 많을수록 주고 받기를 통한 원만한 협상을 유도하기 쉽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업을 대리해 퇴사 협상을 하면서 퇴사 예정 임원과 한참 적정 위로금 규모를 논의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임원의 렌트카 옆에서 같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렌트카를 소재로 잡담을 했다. 그 때 임원이 렌트카에 각별한 애착이 있고, 위신상 퇴사 후 당분간 렌트카를 사용하고 싶어함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협상에서 렌트카를 퇴사 후 1년 더 사용하는 조건으로 위로금은 양보를 받아 손쉽게 합의했다. 기업은 렌터카를 즉시 돌려 받을 필요가 없었고, 기간 연장으로 증가한 비용은 양보 받은 위로금에 비하면 아주 소액이었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다.

제안할 때는 답변 시한을 정하는 것이 좋다.

실무상 답변 시한을 정하는 것을 의외로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정해야 한다. 그래야 협상 진도가 나가고, 논의가 불필요한 부분으로 확산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시한을 정함으로써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 생기고, 최선의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서로 입장을 이해하여 급격한 관계 악화와 법적 분쟁을 피할 여지가 생긴다.

이 때 직원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숙고할 시간이 필요한 점, 다른 동료나 가족, 그리고 변호사 등과 퇴사에 관한 협의를 하는 것이 당연한 점을 고려하여 시한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주말을 앞두고 제안을 하고, 시한을 그 다음 주초로 정한다. 연기요청도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흔쾌히 응하는 것이 좋다. 기업의 강한 해결 의지를 보여준다고 너무 가까운 시한을 제안하고 연기요청에도 소극적인 것은 반발을 불러 대체로 결과가 좋지 않다. 퇴사 협상은 서로 주고 받는 작용이며, 걸릴 만큼 시간이 걸린다. 일방적으로 밀어 붙일 수는 없는 것임을 명심하자.

긴 호흡으로 협상 전략을 수립한다.

조기 합의를 목표로 서두르기보다는 공정한 조건 달성과 뒷맛이 깨끗한 완전한 합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특히 직원이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한 두 차례 본인 제안을 하향 조정 하면서 협상에 진지하게 임했다면, 아직 적절한 조건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합의 노력을 잠정 중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추후 적절한 기회에 얼마든지 협상이 재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개 시점은 인사조치가 통지되고 실행이 임박한 시점일 수도 있고, 심지어 해고가 이루어진 후에도 협상은 가능하다. 오히려 해고 이후 이루어지는 협상이 더 많다. 해고 이후에도 분쟁이 시작되어 노동위원회 절차가 시작되는 시점, 조사관이 심문기일 전 화해의사를 확인하는 시점, 직원이 선임한 변호사나 노무사와 처음 연락을 하는 시점 등 매우 다양한 계기가 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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