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산다.’
국내 미술 시장에선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게임 체인저’로 부른다. 주식·코인·부동산 투자 등으로 큰돈을 번 MZ세대가 미술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매시장의 룰’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갤러리 지형도도 서울 삼청동에서 돈 많은 MZ세대의 주무대인 청담동과 한남동으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영파워 컬렉터’가 속속 뛰어들고 있는 만큼 지난해 9000억원 규모이던 국내 미술 거래시장이 올해 1조원 벽을 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규 컬렉터의 직업군도 달라졌다. 고액 자산가나 전문직에서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와 주식 투자자로 옮겨 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IT업계와 스타트업, 온라인 쇼핑몰 종사자가 지난해 신규 컬렉터의 절반을 차지했다. 변호사, 의사 등 전통 전문직(32.1%), 주식 투자 등 금융업(30.4%), 연예인(14.3%), 부동산 관련업(10.7%)이 뒤를 이었다.
MZ세대 컬렉터들은 작가와 그림의 정보 수집 경로도 다르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는 신규 컬렉터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이 경매시장에 참여하면서 2년 전 10%를 밑돌던 온라인 응찰 비율은 20~30%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온라인 경매시장 거래액은 550억원으로 4년 만에 5.5배 성장했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고전하던 아트페어도 작년을 기점으로 흑자 사업으로 돌아섰다. 올 9월에는 세계 양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도 서울을 찾는다. 업계에서 올해 국내 미술 거래액 1조원 돌파를 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도새 작가’로 유명한 1988년생 화가 김선우는 MZ 컬렉터들이 띄운 대표 작가다.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540만원에 팔렸던 그의 작품은 지난해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1500만원에 낙찰됐다. 2년여 만에 20배가 뛰었다. 도도새 연작은 ‘없어서 못 사는 그림’이 됐다. 우국원, 문형태, 하태임 등 국내 작가와 나라 요시모토 등도 그렇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아트바젤과 UBS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 컬렉터 2600명 중 56%가 40대 이하, 크리스티의 지난해 신규 고객 31%가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런 점을 반영해 해외 갤러리들도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거품을 우려하지만,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0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아직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진국 미술시장 규모는 GDP 대비 0.1~0.2% 수준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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