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담비 품은 우아한 여인…아름다움에 생동감을 불어넣다

입력 2022-05-05 15:54   수정 2023-04-29 18:39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시인 베르나르도 벨린치오니는 소네트에서 한 초상화 속 여인의 미모를 이렇게 찬미했다.

‘이 여인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가. 태양조차 그 눈동자에 비하면 빛을 잃을 정도이네(-) 실재하는 여자들이 시샘할 정도이네. 이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진짜로 살아 말하는 것을 듣는 듯하기 때문이네(-) 루도비코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의 천재성과 손에도.’

당시 벨린치오니는 일 모로라는 별명으로 불린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후원을 받으며 밀라노 궁정시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초상화 속 미녀뿐만 아니라 루도비코와 레오나르도에게도 찬사를 바쳤을까. 이 그림의 주문자는 루도비코이며 걸작을 그린 사람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기 때문이다.


우아하고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초상화 속 여인은 루도비코의 정부인 체칠리아 갈레라니다. 밀라노 최고 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힌 체칠리아는 이 초상화를 그릴 때 16세였다. 그녀는 비록 루도비코의 정실부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매혹적인 외모와 세련된 사교술로 공작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군주의 공인된 애첩으로 인정받았다. 루도비코는 자신보다 17세나 어린 정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초상화로 영원히 기념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초청을 받고 밀라노 궁정에서 전속 화가이자 건축가, 군사, 수력·기계 공학자로 일했던 레오나르도에게 애첩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당시 특권층과 부유층에 초상화 주문과 수집은 단순히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취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사진술이 발명되기 이전 초상화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과시이자 홍보수단, 실내를 장식하는 최고의 명품, 자신들의 모습을 후세에 남기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물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는 후원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카를로 페드레티가 “이 그림은 15세기 초상화 전통을 뒤엎고 혁신했다”고 극찬한 걸작이 태어났다.

자, 이 작품이 미술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단색으로 이뤄진 검은 배경 화면을 선택했다. 인물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한편 모델의 흰 피부색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세련되고 정교한 헤어 스타일과 보석 장신구, 스페인풍 패션을 활용해 청순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뒤에서 묶어 턱 아래로 통과하는 투명한 베일 소재의 모자는 타원형 얼굴을 강조하면서 머리가 동그랗게 보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목을 한 번 휘감는 방식으로 걸친 검은 산호석 목걸이와 쇄골과 어깨를 드러낸 의상은 긴 목선을 강조하며 청순함과 관능성이 어우러진 이중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다음은 미녀와 동물의 결합이 가져온 상승 효과다. 여인은 흰 담비를 품에 안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곡선미가 돋보이는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동물을 쓰다듬고 있다. 상반신은 오른쪽, 얼굴은 왼쪽을 향하고 있어, 동세와 시선이 서로 반대 방향을 이루는 독특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런 역동적 자세는 인물에 움직임을 주고 평면 화폭에 생동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젊은 미녀와 담비의 공통점이다. 둘은 생김새와 피부색이 비슷하고 자세도 닮았다. 담비를 만지는 여인의 손가락과 담비 몸체의 나선형 비틀림을 비교해보라. 담비의 몸과 머리도 여인처럼 반대 방향이다.

레오나르도가 여인과 담비를 결합한 숨은 의도가 있다.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담비는 전통적으로 순수함과 덕의 상징이었다. 전설에서 담비는 불결한 것을 몹시 싫어해 몸이 더러워지면 죽고,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체칠리아를 닮은 흰 담비를 빌려 그녀가 순수하고 덕이 많은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흰 담비가 루도비코의 문장으로 사용됐다는 자료를 근거로 그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가 애첩의 사랑을 받고 싶은 군주의 심정을 헤아려 초상화에 그의 마음을 담았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당시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예술 수집가이자 후원자였던 만토바의 후작부인 이사벨라 데스테는 체칠리아에게 편지를 보내 초상화를 잠시 자신에게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그림을 본 이사벨라는 부러움이 생겨 레오나르도에게 수차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피렌체 주재 만토바 대사를 앞세워 압력을 가했지만 밑그림인 목탄 데생을 받았을 뿐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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