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비용 99% 줄인 로켓 재활용, '우주호텔 시대' 앞당겨

입력 2022-05-08 17:29   수정 2022-05-16 15:15


“랜딩 번(landing burn) 완료. 아름답다(beautiful).”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팰컨9’이 지난 6일 151번째 우주 비행을 마치고 북대서양 버뮤다 인근 무인선박 기지(드론십)에 착지하자 관제센터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이로써 팰컨9 로켓이 발사된 뒤 육지·바다로 귀환에 성공한 횟수는 111번이다. 이번 비행에선 스타링크 위성 53개를 올리는 임무를 맡았다. 1단 로켓을 육지나 바다에서 회수해 우주로 다시 보낸 횟수만 90번이다. 작년 말 유럽 최대 우주기업 아리안스페이스는 30년간 100억달러(약 12조7180억원)를 들여 미국·유럽·캐나다가 공동 개발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을 ‘아리안5호’ 로켓에 실어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곳으로 배달했다.

세계 발사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기업을 호텔에 비유하자면 아리안스페이스는 ‘특급 호텔’, 스페이스X는 ‘최고 가성비의 비즈니스 호텔’이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창조적 파괴’의 혁신 기술이 어떻게 세계 산업 판도를 바꾸는지 보여준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힌다.
엔지니어링의 극한
로켓은 첨단 과학의 총집결체다.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이 수두룩하다. 공력(대기가 누르는 힘)과 추진력(로켓이 분사하는 힘)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가속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가는 추력벡터컨트롤(TVC: 자세 제어)이 대표적이다. 아직 국내 기업 중 TVC 기술을 보유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처럼 진입장벽이 높지만 급속한 기술 발전을 발판 삼아 시장성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1981년 탑재체 ㎏당 8만5216달러였던 발사 비용이 2020년 951달러(약 120만원)로 40년 만에 98.9% 급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정찰위성들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관측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런 극적인 비용 절감이 있다.

비용 절감의 근본 비결은 2002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전인미답의 우주 발사체 기업으로 우뚝 선 스페이스X의 로켓 재사용 기술이다. 최근에는 ‘작은 스페이스X’로 불리는 뉴질랜드 스타트업 로켓랩이 페어링(위성 덮개)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 발사체 ‘뉴트론’ 개발에 착수했다. 페어링을 마치 꽃잎처럼 네 갈래로 열고 위성을 내보낸 뒤 닫고 귀환하는 로켓이다.

지구 저궤도(400~600㎞)에 인류 거주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이 잇따르는 것도 발사 비용 급감 덕분이다. 블루오리진은 미국 보잉, 애리조나주립대 등과 함께 차세대 국제우주정거장 ‘오비탈 리프’를 2020년대 말 선보일 계획이다. 미국 스타트업 오비탈어셈블리는 비슷한 시기 세계 최초 우주호텔 ‘보이저 스테이션’을 개장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수학 기반 유도제어
‘우주경제 빅뱅’의 시작점인 팰컨9의 엔진은 공학 수준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로켓 재사용 기술의 3요소는 유도항법제어(GNC), 재점화, 추력제어 세 가지다. 팰컨9은 우주 공간에서 위성을 사출한 뒤 1단 진행 방향을 180도 틀어 마치 발레 선수처럼 지상이나 선박에 사뿐히 착지한다. 실제로 보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탄성이 나온다.

기술 비결은 수학적 최적화에 있다. 팰컨9이 위성 사출 후 엔진을 끄고 관성 비행을 하면서 진행 방향을 정반대로 전환할 때 유도제어 기술이 사용된다. 이후엔 엔진을 다시 켜고 탄도 비행을 한다. 이때 공력(공기 압력)을 제어하는 날개 ‘그리드핀’을 편다. 연료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하강 속도까지 조절(추력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시간으로 궤적을 최적화해야 하는데, 이 궤적과 알고리즘을 모두 수학으로 설계한다.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어긋나면 로켓은 그대로 추락하거나 폭발해버린다.

설계가 완벽해도 실전 경험이 쌓여야 한다. 팰컨9 역시 2015년 귀환에 처음 성공하기 전까지 21번의 실패를 맛봤다.
‘미사일 게임체인저’도 우주 기술
북한은 지난 7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며 올 들어 15번째 도발을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우주 발사체는 유도제어 관점에서 보면 똑같다.

이창훈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유도제어 기술은 각국이 최고 등급 비밀로 삼고 있어 실체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올초 아랍에미리트(UAE)와 4조원대 수출 계약을 맺은 요격미사일 ‘천궁2’ 유도제어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이 교수는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 등과 함께 재사용 발사체 원천기술을 연구 중이다.

‘미사일 게임 체인저’인 극초음속 활공체(HGV)도 재사용 발사체 뺨치는 유도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HGV는 탄도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다 뚝 떨어져 수평으로 활공하는 등 예측불허로 움직인다. 우주 궤도를 비행하다 갑자기 대기권으로 진입해 비밀 군사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X-37’ 무인기도 HGV 기술이 토대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HGV와 자국의 저궤도 통신위성군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북한도 지난달 말 평양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열고 HGV를 공개했다.

고성능 우주 발사체 개발은 관련 시장이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는 한국으로선 꿈같은 얘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펴낸 2021년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우주산업 매출은 2020년 3조4293억원으로 3년 전(4조1457억원)보다 17.2% 줄었다. 셋톱박스 등 장비 매출이 2조460억원(59.7%)으로 대부분이다. 발사체 제작은 4332억원(12.6%), 위성체 제작은 6303억원(18.4%)에 불과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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