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시선] "문재인 정부 5년이 남긴 전체주의 잔재 청산하고 경제·안보 바로 세워야"

입력 2022-05-08 17:25   수정 2022-05-09 00:09


이번 대통령 선거의 근본적 의미는 전체주의적 특질을 짙게 띤 여당 대신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야당을 시민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구성 원리로 삼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정상화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지향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전체주의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엔 전체주의적 특질이 짙어졌다. 도덕과 법이 무너졌고 시민들의 삶은 활기를 잃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그런 사정을 상징한다. 마침내 앞날을 걱정한 시민들이 이번 선거를 ‘조용한 혁명’으로 이끌었다. 혁명은 가볍게 쓸 말은 아니지만, 전체주의 정권이 움켜쥔 권력을 시민이 되찾는 일은 늘 힘들다. 여당 대표의 ‘50년 집권론’을 기억하는가? 사정이 그러하므로, 새 대통령이 받은 위임사항(mandate)은 훼손된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위임사항이 그렇게 근본적 변화를 뜻하므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과제들도 당연히 중대하고 어렵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허술해진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실체에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부분이 바로 안보다. 우리 안보의 바탕인 한·미동맹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이 맺은 동북아시아 동맹의 한 부분이다. 이 삼자동맹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굳건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는 허약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담하고 기민한 움직임은 일본의 좋은 반응을 얻어서, 우리 안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빠르게 보강되리라 기대된다. 특히 북한 핵무기에 대한 현실적 대응이 가능해졌다. 극동 주둔 미군의 핵무기 보유나 우리의 핵무기 개발과 같은 방책들도 일본과 함께 추진하면 가능할 뿐 아니라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전체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사이의 전선이 단순해졌다. 이제 우리는 냉전 시기처럼 동맹국들과 보조를 맞추면 된다.

지금 동북아시아 전선은 대만 해협-한반도의 휴전선-소야(宗谷) 해협으로 이어진다. 소야 해협은 홋카이도와 사할린 사이에 있다. 1949년 형성된 이 전선이 아직 유지된다는 사실은 동북아시아 세력 균형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압도적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선전하자 대만의 방위가 온 세계의 관심을 받는다. 대만 해협의 전선이 무너지면 당장 황해와 휴전선이 위협받게 된다. 앞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자유주의 동맹에 대만의 안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반면, 적대적 세력 침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북한을 위해 암약하는 세력은 점점 강해지고 사회 요소들을 장악해가는데, 그런 위협에 대응하는 기능을 지닌 정부 기구들은 실질적으로 허물어졌다. 이제는 중국의 침투도 위협적이 됐다. 2020년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장은 중국이 미국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해 왔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계 미국 시민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다고 밝히면서, 중국 정보 요원들의 협박을 받는 중국계 미국 시민은 FBI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호소했다. 미국의 상황이 그러하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떠하겠는가?
소련 간첩에 농락당한 서방
안타깝게도, 한 번 무너진 방첩 기구를 다시 세우는 데는 큰 자원과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시급한 과제의 첫걸음은 북한 침투에 대한 시민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시민들의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우려면 국가정보원의 비밀 자료를 공개하는 수준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널리 알려진 미국의 ‘베노나 사업(Venona Project)’은 교훈적이다. 베노나 사업은 1940년대 전반에 소련 비밀정보기구 NKVD의 본부와 뉴욕 지부 사이에 오간 전문을 해독하는 비밀 사업이었다. 그래서 349명의 미국인이 소련 첩자로 암약했음을 확인했고 171명은 실명까지 밝혀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비밀로 남았기 때문에, 미국 시민들은 소련 첩자들이 야기한 엄청난 위험을 몰랐다. 베노나 문서들은 1990년대 중엽에야 공개됐다. 그제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이겼는데도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공산주의 세력이 차지한 상황이 비로소 설명됐다. 미 백악관, 국무부, 재무부, 국방부 등에 소련 첩자들이 침투해 정책마다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유리하도록 정책을 유도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미국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이란 개념이 확고하게 부정적으로 자리잡은 터였다. 소련 첩자들이 국익을 해친다고 주장하고 그들을 조사해서 정체를 드러낸 조 매카시 상원의원은 무고한 사람들을 음해한 인물로 낙인 찍혔고, 앨저 히스와 같은 소련 첩자들은 좌파 지식인의 영웅이 돼 있었다. 그래서 베노나 문서들이 한 세대만 일찍 공개됐어도 역사가 달라졌으리라는 탄식이 나왔다.

실은 매카시는 우리와 인연이 깊다.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방어선’이 알류샨 열도-일본-류큐 제도-필리핀으로 이어진다고 선언했다. 대만과 남한은 이 방위선 밖에 있었으므로, 애치슨 선언은 중공과 북한에 대만과 남한을 침공하라는 ‘초대장’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무기를 구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래서 남한과 대만은 운이 다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막상 북한이 침공하자 미국은 즉각 남한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이런 극적인 반전은 애치슨의 선언 한 달 뒤 웨스트 버지니아 주 휠링이라는 광산촌에서 시작됐다. 거기서 열린 작은 집회에서 이름 없는 초선 상원의원 매카시는 국무부에 57명의 공산주의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서부를 돌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암약으로 미국이 동유럽과 중국을 공산주의 세력에 잃었다고 폭로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누가 중국을 잃었는가?”라는 논쟁이 거세게 일었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궁지로 몰렸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트루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로선 “남한까지 잃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설령 매카시에게 퍼부어진 온갖 비난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시민들은 그에게 영원한 빚을 졌다. 그가 외롭게 싸우고 끝내 파멸한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외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개인적 비리가 없는데도 감옥에 갇힌 전임 국가정보원장 세 명이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국민에게 쓴 약을 내미는 용기 필요
경제는 윤 당선인이 특히 마음을 쓰겠다고 다짐해온 분야다. 전 정권이 워낙 비합리적 정책을 추구한 터라, 실제로 상황이 심중하다. 무엇보다도 나라 빚이 너무 늘어나 경제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경제를 되살리려는 정책들은 초기엔 시민의 삶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경제 개혁의 동력이 사라질 위험은 보기보다 크다.

따라서 시민들이 어려운 상황을 깊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문재인 정권의 비합리적 경제 정책이 미친 부정적 영향이 많고 클 뿐 아니라 그 해독이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우리 삶을 짓누르리라는 사실을 시민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이 일에서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거짓 통계들을 걷어내는 일이다. ‘통계주도성장’이라는 야유가 나왔을 만큼, 통계 왜곡은 심각하다. 그런 왜곡을 밝히고 제대로 된 통계를 내는 일은 새 정권의 경제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바탕이 된다.

새 정권은 정확한 통계에 바탕을 둔 향후 5년의 경제 전망을 시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입에 쓴 약인 개혁 조치를 시민들이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협약’ 없이 새 정권이 안정적으로 경제를 운영하기는 어려울 터다.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의 불만은 나라를 병들게 한 전 정권 대신 쓴 약을 내미는 현 정권으로 향하게 된다.

시장경제 체제 회복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노동조합과의 타협이다. 시장경제 사회의 경제 개혁에서 모든 경제학자가 먼저 꼽는 과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이 말은 ‘노동조합 권한 축소’의 완곡어법이다. 우리 사회에선 노동조합의 힘이 유난히 크고 전투적이다.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사업장 단위의 노조에 큰 권한을 주고 상급 노조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다. 사업장의 노조원들은 회사가 잘 돼야 자신도 잘 되므로, 노사 대화가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분규가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드물다. 상급 노조는 정치적 일정을 추구하므로 노사 대화가 겉돌고 타협의 여지가 작을 수밖에 없다. 노조는 정치적으로도 새 대통령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 사회에서 좌파의 핵심 세력은 늘 노조다. 법적 보호를 누리고 자생력이 있어서 정치 일정을 좌우한다. 따지고 보면 노조가 제기하는 경제 및 정치적 장애에 대처하는 것이 우파 대통령이 안은 궁극적 숙제다.

당장엔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시작한 전면전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첫 싸움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건 완전 박탈)이라는 공작으로 시작됐다. 이 사건은 교육적이다. 그것은 전체주의 집단이 무슨 원리에 따라 형성되고 움직이는가를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전체주의자들에겐 객관적 도덕이 없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사회적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은 도덕적이고,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은 부도덕하다. 거기서 전체주의자들의 허무주의적 세계관과 냉소주의적 행태가 나온다. 자연히, 그들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이런 상황은 민주당이 윤 당선인 임기 내내 초토 작전을 펼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사회의 근본 원리들을 뒤틀고 파괴하면서, 통치가 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가겠다는 얘기다.
정치적 지형 바꿔야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윤 당선인은 일해야 한다. 다행히, 그는 ‘살아남는 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 검찰총장 시절엔 대통령의 뜻 대신 법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박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마음을 얻었고 끝내 대통령이 됐다. 이처럼 뛰어난 생존 능력은 당선 뒤의 첫 결정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서 인상적으로 발휘됐다.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는 토로는 수사(修辭)를 넘어선 뜻을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요원들이 운영하는 시설 속으로 비서 몇 명을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이 심상한 일일 수는 없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여러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2014년 망명해온 북한군 정찰총국 김국성 대좌가 영국 BBC와의 대담에서 한 증언은 이 일에 음산한 기운을 더한다. 그는 김영삼 정권의 청와대에서 여러 해 공조 기술자로 근무했던 간첩이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공조 기술자는 건물의 구조를 다 꿰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북한이 청와대를 밑창 나도록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사시 공조 시스템을 통해 독가스 살포 같은 테러를 벌여 폭삭 내려앉힐 수 있다.”

청와대에 아예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단에 대해 문 대통령이 보인 반응은 시사적이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결정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자신이 이행하지 못한 공약을 후임자가 해냈다는 시샘을 넘어선 것이었다. 집권 세력의 거친 비난과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당선인은 꿋꿋이 밀고 나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장점들을 드러냈다. 직접 지시봉을 들고 집무실 이전 계획을 시민에게 밝히는 모습은 신선했고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즐기는 그의 정치적 자질을 드러냈다. 실제로, 그의 유세 연설은 그가 뛰어난 대중 연설가임을 확인해줬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대중 연설이 서툴렀고 많은 시민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윤 당선인의 이런 정치적 자질은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개혁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지금 정치적 지형은 윤 당선인에게 불리하다. 청와대에서 나와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공약조차 거칠고 집요한 정부와 여당의 선전과 방해 때문에 오히려 그의 인기를 깎아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임기 내내 그의 생존 능력이 필요하리라는 얘기다. 이처럼 험난한 정치적 지형을 바꿀 만한 변수는 2년 전 총선거와 관련된 선거 소송들이다. 선거 소송은 6개월 안에 끝내도록 돼 있는데, 재판관들의 태업으로 100건을 훌쩍 넘는 소송 중 지금까지 단 한 건도 판결이 나지 않았다. 재판이 빠르고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의외의 상황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이나 혹은 현 정권 실세들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정치 보복’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후보 시절에 이미 그런 범죄들은 “시스템에 맡긴다”는 원칙을 천명한 터라 윤 당선인이 그런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은 작다.

정치 보복 얘기가 나오니,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일화가 떠오른다. 누가 정치 보복에 대해 묻자 그는 속담을 인용했다. “보복은 차게 들어야 맛이 제대로 나는 요리다.” 분노에 휩싸여 정적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은 깊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상대의 악의와 방해를 극복하고 업적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보복이다.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 바로 그런 진정한 보복이다.

무엇이든 허물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어렵다. 이것을 성공시키는 것이 윤 당선인의 진정한 보복이다.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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