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로 나온 재건축 아파트…급히 가계약금 입금했는데 집 못 산 이유는

입력 2022-05-11 15:22   수정 2022-05-11 15:23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온 K씨. 얼마 전 서울 서초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매수하려다가 낭패를 봤다.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매도인에게 가계약금을 급히 송금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사지 못한 채 입금한 돈만 돌려받았다.

서울처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는 조합설립인가 후 재건축 물건을 매수해 조합원 지위를 승계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9조 제2항에서 규정한 예외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예컨대 기존 아파트 가구원이 모두 다른 특별시나 광역시 등으로 이전하는 경우에 내놓은 매물을 매수하면 조합설립인가 후라도 조합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K씨는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있는 재건축 아파트가 급매로 나오자 평소 친분이 있던 공인중개사의 연락을 받았다. K씨는 급한 대로 공인중개사가 알려준 매도인 계좌번호로 가계약금을 먼저 입금했다. 3일 후 계약서를 작성하고 중도금과 잔금일자를 정한 뒤 나머지 계약금을 입금하기로 했다. K씨는 혹여나 매도인의 마음이 변할까 염려돼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날 아침에 매도대금의 10%에 해당하는 수억원의 계약금마저 송금했다. 그러나 매도인은 공인중개사에게 아파트를 매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K씨에게 송금받은 돈만 돌려준다고 알려온 것이다.

K씨는 구두로 진행한 가계약도 계약인 데다 공인중개사가 알려준 계좌로 계약금을 모두 입금했으므로 매도인의 일방적인 이행 거절로 매매 계약이 해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도인이 매매 계약을 해제하려면 K씨가 입금한 계약금의 두 배를 지급해야 한다고도 했다. K씨는 매도인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K씨의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K씨의 사례처럼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 가계약금만 입금한 상태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은 매매 계약이 성립했는지와 지급된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판단한다.

재건축 아파트에 관한 매매라는 계약의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대해 서로 간 합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조합원 지위 승계를 처리할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법원은 투기과열지구의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설립인가 후에는 도시정비법 제39조 제2항 단서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조합원 지위를 승계할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은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조합 정관에서 매매 계약 시 정비사업의 추진 단계, 퇴거 예정 시기, 행위 제한, 조합원 자격, 계약 기간, 주택 등 건축물을 분양받을 권리의 산정 기준일 등을 매수인에게 설명·고지하고 매매계약서에 기재 뒤 서명·날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K씨와 매도인 사이에는 매매 대상인 재건축 아파트의 이러한 특수 사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사실이 없었던 것이다. 법원은 또 K씨가 가계약금이라며 지급한 돈은 장차 매매 계약을 진행해 볼 이유에서 지급한 일종의 ‘증거금’이지 계약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K씨가 공인중개사의 안내를 받고 매도인에게 가계약금을 입금했어도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고, K씨가 지급한 돈도 계약금이 아니므로 매도인은 받은 돈의 배액을 상환을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조합원 지위가 승계되는 매물이 흔치 않고, 설령 나온다고 해도 금방 계약이 진행된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매물을 선점하기 위해 가계약금부터 입금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 K씨처럼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재건축 조합에서 매매 계약에 관한 조항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 정관을 참고하고, 재건축 아파트라는 물건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된 내용으로 구체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다음 이를 계약서 등에 증거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고형석 법률사무소 차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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