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없는 아울렛이라니…기이한 상황 벌어진 까닭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2-05-19 09:53   수정 2022-05-20 13:44


신세계가 지난해 10월 서귀포시 안덕면에 개장한 프리미엄 아울렛엔 나이키 매장이 없다. 덕분에 이 곳은 ‘타이틀’을 하나 갖게 됐다. 신세계의 합작사이자 글로벌 복합쇼핑몰 전문 기업인 사이먼사(社)의 전세계 102개 매장(19일 기준) 중 나이키를 살 수 없는 유일한 곳이다.

신세계 제주점의 기이한 상황은 제주시 ‘소상공인’의 반대에서 비롯됐다. 유통 대기업이 제주에 상륙한다고 하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잠재적 가해자(신세계)와 잠재적 피해자(제주시 소상공인) 간 사업조정 권고 결정을 내렸다. 격론 끝에 신세계는 제주시 상인들이 판매 중인 나이키 등 372개 중복 브랜드를 팔지 않기로 하고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수년 간 반복되고 있는 이런 타협은 ‘공정(公正)’이란 이름으로 포장돼왔다. 복합쇼핑몰 규제법으로도 불리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공정을 주장하는 이들과 여기에 동조해 규제를 가하는 관료들의 논리는 두 가지 ‘프레임’을 기초로 한다. 잠재적 가해자론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계적 평등이다. 대기업과 소상공인은 애초에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아예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요지다.

한번 생각해보자. 무엇이 공평하고 올바랐다고 말하는 것인가. 신세계 제주아울렛에서 판매 금지된 브랜드 중 상당수는 또 다른 소상공인에게 할당될 예정이었다. 복합 쇼핑몰은 일종의 부동산 임대업이다. 하지만 제주시 상인들의 반대로 그들은 기회마저 빼앗겼다. 사회적 편익이란 측면에선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크다. 제주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무한한 관광 자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여행지로는 저평가돼 있다. 외국인들의 지갑을 열 만한 쇼핑 시설이 열악해서다.

참여연대 같은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조차 공익과 충돌할 수 있는 공정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고 있다. 일명 ‘고양이 모래 PB 논란’이 한 예다. 쿠팡이 자사 PB(자체 브랜드)인 ‘탐사’로 기존 상품보다 5~10% 저렴한 제품을 내놓자 참여연대는 플랫폼의 횡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고양이 모래 시장은 수년 전부터 애경산업, 피앤피산업, 레츠펫 등 몇몇 업체들이 나눠먹기식으로 지배해왔다. 플랫폼이 탈취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특별한 기술도 없다. 대부분 중국 공장에 제조를 맡기고, 자사 브랜드만 붙여 판매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쿠팡의 PB는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 재료로 더 싸게 만들었음에도 참여연대는 이를 애써 외면했다.

‘카카오 택시’ 논쟁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해법도 기계적 공정이라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카카오 가맹 택시에 유리하게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기존 택시 회사들의 주장에 공정위는 ‘인공지능(AI) 배차’를 폐지하고, 승객에 가까운 순으로 콜을 잡을 수 있도록 ‘자동 배차’로 전환할 것을 명했다.

본래 공정은 정치·사회 영역에 합당한 가치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죄수와 현인에게 모두 1표만의 투표 권리를 주는 것이 공정이고, ‘아빠 찬스’에 대한 합당한 비판의 말이 불공정이다. 경제에 공정이란 잣대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만, 굳이 시장 경제의 공정을 묻는다면 경쟁이 곧 공정이다. 공정위는 총칙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위를 비롯한 규제 기관의 관료들이 더 이상 왜곡된 공정 논리에 집착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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