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유진 연출가 "줄거리는 1급 비밀…관객이 느낀 그대로가 정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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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5-19 17:56   수정 2022-05-20 11:04

설유진 연출가 "줄거리는 1급 비밀…관객이 느낀 그대로가 정답이죠"


우리 사회 어디든 ‘엘리트 코스’는 있다. 연극 연출 분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한 뒤 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주름잡는다. 한양대 독문과를 나와 광고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설유진(40·극단 907) 같은 ‘아웃사이더’가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그럴듯한 연줄 하나 없는 비주류 경력에 연극협회와 연출가협회조차 가입하지 않은 ‘독불장군’에게 먼저 손을 내민 연극인이 많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요즘 연극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았고, 직접 대본과 연출을 맡은 ‘홍평국전’은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한 ‘베스트7 연극’에 선정됐다.

이런 설유진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신작 ‘오아시스’가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3~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다. 서울시극단장을 맡은 문삼화 예술감독이 직접 대본을 부탁했다. 특이하게도 설유진은 오아시스를 홍보할 때 기본 줄거리조차 미리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세종문화회관에 신신당부했다. 홍보가 잘 될 리 없는데도 무대를 내줬다는 것은 그에 대한 세종문화회관의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란 해석이 나온다.

19일 만난 설유진은 줄거리와 소재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관객들에게 선입견을 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는 “오아시스에 정치부터 각종 사회 사건, 죽음, 범죄 등 다양한 소재를 버무렸다”며 “구체적인 스토리는 1급 비밀”이라고 했다. 또 “오아시스는 관객들에게 딱 떨어지는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생각할 거리를 주려고 했다”며 ‘관객들이 각자 느낀 그대로가 ‘정답’인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설유진이 오아시스 대본 작업에 들어간 것은 1년여 전이다. 그때부터 적합한 소재를 찾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1983년 이후 기사와 칼럼,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 과정이었다. 설유진은 “공 들여 쓴 대본 170페이지를 통째로 지운 뒤 다시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에게도 자신이 생각한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배우들이 자율적으로 대사를 해석하고 본인의 개성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연출하고 있다”며 “각 배우의 매력적인 표현 방식을 이끌어내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유진은 2014년 서울연극제 희곡공모전에 당선된 ‘씨름’으로 데뷔했다.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백상예술대상 연극상 후보에 오른 ‘홍평국전’은 여성 영웅이 나오는 고전 ‘홍계월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는 “32세까지 연극이 아닌 다른 업종을 경험한 게 기존 문법을 뒤집는 작품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며 “학교나 극단에서 연극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창작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설유진은 TV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가난한’ 연극을 선택한 이유로 ‘관객과의 호흡’을 꼽았다. 창작자와 관객이 다른 공간에 분리된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극은 모든 스탭과 배우, 관객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소통한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과 격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사는 맛’이란 건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데서 나오는 것 아닌가요. 연극이 바로 그런 무대입니다. 작품을 통해 저도 관객들에게 영감을 주고, 반대로 제가 받기도 하고…. 이런 게 연극의 매력이죠.”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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