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인들은 때로 ??를 인삼으로 속여 판다

입력 2022-05-27 05:16   수정 2022-05-27 09:44



때는 조선 후기 어느 가을, 약령시장에서 약초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상인은 원래 약초꾼으로 깊은 산속에서 이런저런 약초를 캐다 파는 이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인삼을 팔러 나왔다. 그것도 평소 시세보다 무척 싼 가격이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약초꾼의 좌판대로 몰려들었다. 비단 도포를 입은 양반들은 엽전을 덤으로 두둑이 주고 사간 터라 좌판대는 벌써 절반이나 비었다. 약초꾼은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더욱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삼이요, 인삼! 시세의 절반이여!!!”

바로 그때 의원 두 명이 약초꾼 앞에 멈췄다. 자신들도 무척 비싸서 함부로 처방하지 못하던 인삼을 반값에 판다니 귀가 솔깃했다. 의원들은 먼저 인삼의 품질을 살펴보고자 했다. ‘혹시나 상한 삼이 아닐까?’ 아니면 ‘여기저기 상처가 난 파삼(破蔘)이나 잔뿌리만 있는 미삼(尾蔘)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래서 먼저 몇 뿌리만 사 보자고 했다. 허 의원은 “우선 한 채만 주시오.” 한 채는 750g에 해당하는 양이다.

허 의원은 그 자리에서 인삼을 부러뜨려 보고, 씹어서 맛을 보았다. 이미 줄기는 버려진 상태라 뿌리의 형태만을 봐서는 정확한 구별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 의원은 이리저리 만져보고 맛도 보더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약초꾼 양반, 이것은 인삼이 아니라 도라지와 잔대, 더덕이 섞여 있잖소! 여기 이것은 모시대뿌리구만. 아니 어찌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다른 약초를 인삼으로 둔갑시켜 판단 말이요?”하고 꾸짖었다.

약초꾼은 도리어 “당신들이 무슨 약방 의원들도 아니고 안 살 거면 그냥 제 갈 길을 갈 것이니 웬 깽판이여!”라며 화를 냈다. 그때 유의원은 품속에 들고 있던, 동의보감을 꺼내 보여 주면 “우리가 바로 약방 그 의원들이요”라고 약초꾼을 진정시켰다. 약초꾼은 안색이 변하더니 좌판대의 약초들을 허겁지겁 망태기에 쓸어 담았다.

허 의원은 약초꾼을 나무랐다. “인삼과 서로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도 효능이 서로 다른 법, 따라서 체질과 병증에 따라서 약을 달리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처럼 다른 약초를 인삼으로 둔갑시켜 판다면 환자들이 인삼이 아닌 것을 인삼으로 알고 효과를 보지 못할뿐더러 병세가 악화하고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어떡할 셈이요.” 약초꾼은 나지막이 “뭐 이것저것 약초면 몸에 어떻게라도 도움이 되겠지, 뭔 놈의 체질, 부작용 타령이여?”하고 투덜거렸다.

허 의원은 어이가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이 상황이구려. 인삼(人蔘)은 온성이면서 폐기를 보하고, 잔대라고 하는 사삼(沙蔘)은 냉성이면서 폐음을 보하거늘. 인삼과 사삼은 서로 다른 약초라 의서에는 열증이라면 인삼은 사용하면 안 되고 사삼으로 바꿔 처방해야 한다고 했소. 인삼도 보약으로만 알고 있는데 폐에 열이 있는 자는 잘못 복용하면 죽는다고 했소. 요즘 간혹 인삼을 쪄서 숙삼(熟蔘)이나 홍삼(紅蔘)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들도 마찬가지요. 그리고 이 도라지라고 하는 길경(桔梗)은 배농작용, 모시대뿌리인 제니(薺?)는 해독작용 등 주된 효능이 서로 다르오. 사삼(잔대), 양유(羊乳, 더덕), 길경(도라지), 제니(모시대)는 모두 초롱꽃과로 모양이 비슷하게 생겨서 혼동할 뿐이지만 서로 다른 약초이고 다른 약성과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처방되지 못하면 결국 병사(病死)를 면하지 못할 것이요.”

옆에서 지켜보던 유의원은 실로 감탄했다. 자신은 동의보감만 들고 다녔지 허 의원처럼 서로 비슷한 약초의 구별법이나 효능들에 대해서 공부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허 의원 자네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허 의원이 답하기를 “근래 의원들이라도 의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약초에 대해 잘 모르면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이것저것 난잡하게 처방하다가 병세가 오히려 위독해지고, 또한 돈맛을 본 의원들이 양반가 부잣집 환자들에게는 병증과 체질에도 맞지 않는 값비싼 인삼을 처방해서 병세가 심해지거나 없던 병도 생기기도 하는 것을 많이 봐오지 않았나. 사실 나도 수년 전 약초를 잘못 사용해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있었네. 그래서 산에 다니면서 직접 약초를 캐가면서 공부를 좀 했다네”

유의원은 불쑥 동의보감을 펼치더니 “대단하네 그려. 그런데 조금 전에 자네가 잔대와 더덕도 서로 다른 약초로 구별하던데, 동의보감에는 사삼의 한글명으로 더덕으로 나와 있다네. 자네도 실수를 하는구먼. 허허” 유의원은 그래도 괜찮다는 듯 허 의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나 허 의원은 의외의 말을 이어갔다. “동의보감이 틀렸네. 조선에서는 동의보감을 저술할 당시 사삼과 더덕을 혼용해서 사용했을 뿐이네. 그러나 사실 사삼의 우리말로는 잔대가 있고, 더덕은 양유근(羊乳根)이라는 한자 이름이 있으니. 서로 구별해야 하는 것이 맞지. 한나라 때 지어진 명의별록에는 더덕이 양유(羊乳)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허준께서 구별함을 놓치신 것 같네.”

허 의원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삼(沙蔘)은 모래밭에서 잘 자라서 지어진 이름으로 속을 보면 치밀하지 않고 푸석거린다네. 반면에 더덕은 습한 토양에서 잘 자라고 속은 꽉 차 있고 향이 좋고 맛이 달지. 그래서 사삼은 주로 약으로 사용하고, 더덕은 음식으로 해 먹는 것일 뿐이네. 더덕을 양유(羊乳)라고 한 것 보면 마치 양의 젖처럼 달다는 것이지. 의서들을 보면 효능이 서로 비슷하게 나와 있어서 뭐 이래저래 같이 사용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지만, 일반 평민들이나 요리하는 숙수(熟手)들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명색이 의원들이라면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걸세.”

그때 약초꾼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더덕을 보고 잔대라고 하기도 하고, 잔대를 달라고 했을 때 더덕을 줘도 아무 말 없이 가져가지라. 심지어 약방에 팔 때도 그렇당게요. 그런데 우리 약초꾼들이 보면 잔대와 더덕은 단단함과 맛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구먼요.”

유의원은 허 의원의 의안(醫案)에 감복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정리가 필요해 보이네. 사실 본초강목에 인삼은 몸체가 실하고 심이 있으면서 맛이 달고 약간 쓴맛을 띠고, 사삼은 속이 비고 심이 없으면서 맛이 담박하고, 길경은 몸체가 단단하고 심이 있으면서 맛이 쓰고, 제니는 속이 비고 심이 없다는 문구를 봤지만, 사람들이 혼용해서 사용하는 터라 서로 구별해 볼 생각은 못 했네.”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던 약초꾼은 허 의원에게 “의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앞으로는 속이지 않고 제대로 된 약초만을 팔겠습니다. 약초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하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보약이라면 기둥뿌리라도 뽑아서 살려고 하길래 제가 잠시 눈과 귀가 멀어브렀네요.”

허 의원은 “어찌 이런 폐단이 당신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겠소. 의원들도 보약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처방을 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요. 의원들도 자신의 처방이 비방이라고 과장하거나 폭리를 취하는 일이 없이 인술(仁術)을 펼쳐야 할 것이요.” 허 의원과 유의원은 서로 보며 겸연쩍게 껄껄껄 웃었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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