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무원인 A씨는 2020년 동료들의 권유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소액으로 시작한 A씨는 초반 코인 시장 활황에 편승해 손쉽게 100%가 넘는 수익을 냈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주변에 10배, 100배 수익을 냈다는 소문이 돌자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에도 50~80%씩 급등락하는 이른바 ‘동전코인’ 매매에 뛰어든 것이다. 신용대출까지 받아 밀어 넣은 원금 2억5000만원이 날아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재 그의 계좌에는 5% 정도 원금만 남았을 뿐이다. 그는 “야근과 주말 수당까지 챙겨서 막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최근 개인 회생 신청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놨다.회생 신청 급증은 코인·주식 투자 빚은 개인의 책임으로 보고 탕감해주지 않던 과거와 달리 채무 감면 결정을 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최근 코인·주식 채무자도 구제해 경제 활동원으로 복귀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개인파산·회생 전문가인 김봉규 문앤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도박빚을 진 사람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등의 교육확인서를 제출하고 채무를 비교적 많이 갚는 변제계획안을 제출하면 회생 인가 결정을 내려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에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등 채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저강도 채무탈출’ 수단보다 유독 ‘개인회생’ 신청을 권하는 글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디씨인사이드 주식, 해외선물 갤러리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채무를 탕감해주고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개인 워크아웃은 신청하지 않으면 인생의 손해’ ‘위원회 이용이 어려워지면 회생하면 그만’ 등의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박시형 변호사는 “채무초과 상태가 임박한 시점에서 고의로 대출을 더 받아 투자하고선 회생·파산을 신청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로펌과 개인 변호사들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테라·루나, 비트코인 회생도 전문가 하기 나름’ 같은 문구를 내세우는 등 경쟁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 회생의 목적이 ‘빚으로 생계 위협을 받는 채무자의 구제’인 까닭에 신청 자체를 막을 순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법률 전문가는 “채무자 중에는 앞으로 수십 년 일할 2030세대 투자자도 많다”며 “극단적인 투기꾼이 아닌 한 회생을 불허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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