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 사러 갔는데 판매거부 당했어요"…이유 들어보니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2-06-06 07:24   수정 2022-06-17 03:44


“손님은 이 가방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최근 샤넬 매장을 찾은 강미리 씨(38·가명)는 매장으로부터 판매 거부를 당했습니다. 반나절 가까이 대기해 어렵게 매장에 들어서 사고 싶었던 가방까지 발견했지만 샤넬 측에선 물건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매장 측에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달 구매 가능한 횟수를 이미 넘어섰습니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강 씨는 함께 매장을 찾은 친언니 명의를 빌려 가방을 구매해야 했습니다.

강 씨 사례처럼 요즘은 돈이 있어도 명품을 사기가 쉽지 않습니다. 긴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구매) 행렬 탓에 한나절은 기다려야 매장 문턱이라도 밟아볼 수 있는 데다가 어렵게 매장에 입성해도 재고가 턱없이 부족해 원하는 제품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간혹 운 좋게 사고 싶은 물건을 찾는다 해도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사꾼이 손님을 마다하는 꼴입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은 1인당 구매가능 수량 제한 등 일반 대중 소비자의 구매 허들(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로 꼽히는 프랑스 명품 샤넬은 지난해 말부터 인기 상품의 인당 구매 가능 수량을 ‘1년 1점’으로 제한했습니다. ‘타임리스 클래식 플랩백’과 ‘코코핸들 핸드백’ 라인 등 대표적 인기 제품들은 한 사람이 1년에 단 한 개만 살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구매 제한 조치가 더욱 강화돼 이미 구매한 제품과 다른 품목을 사는 경우에도 각종 제약이 따릅니다. 지갑은 한 달에 3개, 신발과 가방은 각각 두 달에 3개와 2개 이상 구매하지 못하도록 방침을 세웠습니다.

샤넬 뿐만이 아닙니다. 롤렉스 역시 1인당 구매 수량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롤렉스 매장의 경우 1년 동안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계는 단 한 점 뿐입니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서브마리너’ 등이 포함된 ‘프로’ 라인의 시계 한 점, ‘데이저스트’ 등이 있는 ‘클래식’ 라인 한 점 등 연간 두 개의 시계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시계와 주얼리를 합산해 연간 다섯 개까지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에서는 고객 한 명에게 같은 디자인의 가방은 연간 두 개까지만 팝니다. 신발과 패션주얼리 상품은 1인당 같은 모델을 하루에 2개까지만 살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다이어리·담요·바구니 등 소품이나 작은 가구, 그릇, 주얼리 등 선호도가 떨어지는 상품을 4000만~1억원 정도 구매한 고객에 한해 ‘버킨백’이나 ‘켈리백’ 등 대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합니다.


이같은 명품 브랜드들의 구매제한 조치는 마치 ‘당신 아니라도 살 사람은 넘쳐난다’는 식의 대응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중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명품 매장에서 구매 허들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는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정가보다 비싸게 중고품으로 되파는 ‘리셀’ 행위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일반 대중 고객들의 과도한 매장 출입을 제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은 VIP(우수고객) 이탈로 고심이 깊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명품 매장에선 입장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들어선 후에도 혼잡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수백만~수천만원을 들여 비싼 가방을 사도 ‘3초백·5초백’(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범용 핸드백)이라는 은근한 조롱을 견뎌야 합니다. VIP 입장에서 이같은 분위기가 달가울 리 없습니다.

국내 백화점 두 곳에 VIP 고객으로 등록돼 있는 박재숙 씨(55)도 “샤넬이나 루이비통 등은 너도나도 들고 다니는 백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기존에 갖고 있던 제품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며 “주변 VIP들의 관심도 요란하게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명품 브랜드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전했습니다.


VIP 고객은 명품 브랜드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에서 VIP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약 32% 달합니다. 롯데백화점은 27% 남짓입니다. 올해 연 매출 1조원을 넘기며 백화점 ‘1조 클럽’에 들어간 갤러리아 명품관의 경우 연간 2000만원 이상 VIP 매출 비중이 명품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같은 VIP들은 전체 고객의 수의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1인당 구매 비중이 일반 소비자에 비해 확연히 크다는 뜻입니다. 명품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수록 진짜 매장에서 돈을 쓰는 1% 소비자는 이탈하는 셈입니다.

600만원대 샤넬 코코핸들, 1000만원이 넘는 샤넬 클래식백. 일반 대중이 몇 년을 고민하고 돈을 모아 사는 이 비싼 가방들은 명품 매장 입장에선 입문템‘(입문+아이템)’일 뿐입니다. 오랜 기간 언제 어디서나 들 수 있는 가방이나 신발보다는 착용 횟수나 기간이 제한돼 선뜻 사기 어려운 의류를 구매하는 고객을 장기적 소비자로 보고 있습니다. 소재가 얇고 예민해 두세 해를 넘기기 힘든 샤넬 블라우스는 300만~4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습니다. 트위드 자켓류는 1000만~2000만원 선을 호가합니다. 겨울 한 철밖에 입을 수 없는 에르메스 코트도 100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명품 매장들이 입문템인 가방·신발만 여러 개 사는 고객들 중요도를 낮게 보는 이유입니다. 실제 명품 브랜드들은 잡화 고객은 여러 방식으로 구매를 제한하지만 의류 고객에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품 VIP 고객의 연간 구매 실적 기준이 에르메스는 3억원, 루이비통과 샤넬은 1억원 이상, 구찌 6000만원 등이라는 이야기가 돌지만 의류 고객에겐 이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해도 매장이 재량껏 VIP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명품 매장 관계자는 “사실상 같은 비용이라도 가방을 두 세개 구입하는 고객과 의류를 사는 고객은 잠재적 구매 능력 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명품 매장들은 고객들의 구매 성향이나 종류를 보고 앞으로 VIP가 될 고객을 걸러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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