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m 앞에서 쳤더니…22세 여성골퍼, 마초들 잠재웠다

입력 2022-06-13 17:35   수정 2022-06-27 00:31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골프라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장, 골격, 근력 등 체격 차이가 있기에 혼성 경기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몇몇 여성 골퍼들이 남자대회에 도전하긴 했지만, 우승은커녕 커트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성 프로보다 평균 50m 앞에서 치도록 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3일(한국시간) 스웨덴 틸뢰산트의 할름슈타트GC에서 열린 DP 월드투어(옛 유럽피언투어) 볼보 카 스칸디나비안믹스드(총상금 200만달러)에서 22살의 스웨덴 여성 골퍼 린 그랜트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디오픈 우승자인 헨릭 스텐손(46·스웨덴)을 9타 차로 누르고 우승한 것. 그랜트는 이날 버디만 8개 잡아내며 최종합계 24언더파 264타를 기록해 우승상금 31만 9716유로(약 4억3000만원)를 차지했다.

남녀가 나란히 실력을 겨루는 정규투어 대회에서 여성이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 전 베팅오즈가 집계한 그랜트의 우승 배당률은 28 대 1로 알렉스 노렌(10 대 1) 등 남성 골퍼보다 훨씬 낮았다. 그랜트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여성은 10언더파 공동 15위의 가브리엘라 코울리다.
남녀 성 대결의 새 역사 쓰다
그동안 ‘필드 위 성 대결’은 남녀가 동일한 조건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 재미동포 미셸 위(33)가 몇 차례 PGA투어 대회에 도전했지만 한 차례도 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몇 차례 남자 골프 무대에 도전장을 낸 렉시 톰프슨(27·미국)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남성 프로에 맞춰 전장이 세팅된 탓에 여성 프로가 파4에서 두 번 만에 그린에 공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아서다.

지난해부터 남녀 혼성 게임으로 변경한 볼보 카 스칸디나비안믹스드 대회는 이런 점을 감안해 여성 골퍼에게 ‘거리 인센티브’를 줬다. 남성은 총 전장 7001야드, 여성은 5929야드로 세팅한 것.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55야드 정도 짧은 셈이다. 국내 골프장으로 치면 대략 남성은 블랙 티, 여성은 화이트 티에서 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외에 러프 길이, 페어웨이 폭, 코스 경사, 그린 경도 등은 똑같은 조건이다.

지난해 프로 무대에 데뷔해 유럽여자골프투어(LET) 통산 2승을 보유한 그랜트는 이번 대회 내내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쳤다. 네 번의 라운드에서 모두 60대 타수를 기록했고 최종일에는 보기 없이 버디만 8개 잡아냈다. 이번 대회 그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43야드, 페어웨이 적중률은 57.1%다. 드라이버만 놓고 보면 챔피언조에서 함께 경기를 펼친 준우승자 스텐손(284야드·71.4%)에게 밀렸지만, 그에게는 출중한 쇼트 게임 능력이 있었다. 그랜트의 그린 적중률과 총 퍼트 수는 각각 88.9%와 27회로 스텐손(83.3%·33회)을 압도했다.

이번 대회의 ‘티샷 이득 타수’ 상위권은 여성 출전자들의 몫이었다. 단순 거리뿐만 아니라 티샷의 정확도, 그리고 티샷 결과가 그날 타수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를 상대평가하는 항목이다. 우승자 그랜트가 2.34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상위 50위까지 모두 여성이 싹쓸이했다. 남녀 간 체력과 힘의 차이를 감안해 드라이버 거리만 조정하면 여성 골퍼가 남성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걸 수치로 보여준 셈이다.
‘남녀 동등 상금’ 목소리 힘 실릴까
그랜트의 우승이 남녀 ‘동등 상금(Equal Pay)’ 이슈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1973년 여자 선수 빌리 진 킹과 남자 선수 바비 릭스의 테니스 대결과 같은 파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당시 테니스에서는 남자 선수의 우승상금이 여자보다 8배나 많았지만 윔블던에서 펼쳐진 두 선수의 이벤트 대회에서 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그해 US오픈을 시작으로 남녀 대회의 상금이 같은 체제로 개편됐다.

올해 US여자오픈이 사상 처음으로 총상금 1000만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여전히 남자투어에 비해 상금 규모와 인기가 크게 떨어진다. 12일 막을 내린 PGA투어 RBC 캐나디언 오픈에는 총 870만달러의 상금이 걸렸다. 반면 같은 기간 열린 LPGA투어 숍라이트 클래식의 총 상금은 175만달러에 그쳤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LET는 “그랜트의 승리가 여자 골프 역시 역동적인 경기와 정교한 쇼트게임의 짜릿함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랜트는 우승 직후 “사람들이 여자골프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고 더 많은 스폰서가 LET와 함께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남자대회 상금이 많은 건 드라이버를 멀리 쳐서가 아니라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시장 논리로 결정돼야 할 상금 규모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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