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족' 원망이 서운했던 대통령 "주가 오를땐 고마워 했나" [대통령 연설 읽기]

입력 2022-06-18 09:30   수정 2022-06-18 09:53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인플레이션 공포가 증시를 집어삼켰다. 증시가 하락할 때마다 지수를 떠받쳐온 개인 투자자들도 지난 5월 한달간 1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하락장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국내 증시는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된 이래 세계 시장의 파고에 내던져진 채 큰 부침을 겪었다. 새 정부의 정책이 불쏘시개가 돼 자산시장을 달구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과거 증시도 비슷한 격변기를 거쳐왔다. 대통령 연설을 통해 역대 정권의 증시 부양책 그래프를 확인해봤다.

코스피 시장을 국민 자산증식의 무대로 만들겠다던 어느 정치인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부익부 빈익빈 해소 방안으로 증시 활성화를 내걸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6년 12월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행 과정에서 빚어진 양극화 현상을 해결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주식 대중화 문제를 정부·여당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 투기판에 가까웠던 증권시장은 1972년 박정희 정부가 제정한 ‘기업공개촉진법’을 통해 외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의 상장을 강제한 것으로, 제정 이후 상장 붐이 일어나 그해 연말 66개였던 종목 수는 6년 만에 5배 이상 불어났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는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난다. 그때까지도 기업공개를 미적거린 기업을 향해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경영자들에게 맡기고 주식은 가급적 회사의 종업원이라든지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한두 사람이 쥐고 앉은 가족같은 형태를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후 증시는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에 힘입어 역사적인 대세 상승장을 연출했다. 역대 정부 중 전두환 정부에서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1983년 시가총액 방식의 종합주가지수 제도인 코스피가 도입됐는데 당시 100으로 시작한 지수는 임기 동안 656까지 급등했다.

1989년 ‘코스피 1000 시대’를 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듬해 10월까지 증시가 45% 폭락하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2·12 증시 부양책’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주식 매입, 개인 신용거래 확대 등이 담긴 증시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부양책이었다. 그럼에도 주가는 계속 하락했고, 정부만 믿고 ‘빚투’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반대 매매로 깡통 계좌를 안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런 현상이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노 전 대통령은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1990년 6월 6·29 3주년 기념 국민과의 대화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심한 압력이 들어온다”며 “주가가 올라가면 대통령한테 고맙단 소리 한마디 안하면서 떨어지면 그렇게 욕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2년 뒤 1992년 8월 코리아헤럴드 창간 39주년 특별회견에서 “주식시장 문제는 정부의 인위적이고 단기적인 부양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김영삼 정부는 코스닥 시장 개설과 더불어 금융실명제와 증권거래세 도입으로 증시 안정에 나섰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증시는 암흑기를 맞았고 재임 기간 코스피가 하락한 유일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연설에서 “부도 낸 기업인과 직장을 잃은 가장이 느끼는 절망감을 생각하며 날마다 제 자신을 매질하고 있다”며 “국민의 예금을 철저히 보호하고 주식시장의 회복과 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코스닥 시장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중소·벤처 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해 코스닥 등록법인 수가 급증했다. ‘정보기술(IT) 버블’ 시기였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유동자금을 투입한 것도 주식 열풍을 부추겼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6월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했을 때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한국 알리기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조찬 연설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가치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면서 “장차 크게 앙등이 예상되는 주가가 현재 매우 낮게 형성돼 있어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했다.

그러나 영원한 상승은 없는 법. IT 버블의 붕괴로 미국 나스닥이 급락하면서 한국 주식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 조작이 연달아 터졌고 2000년 코스닥 지수는 고점 대비 80%가량 폭락했다.김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청와대 출입기자 송년간담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봐 가정이 파괴되거나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됐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정말 죄스러운 생각을 금할 수 없는 그런 심정이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5년간 코스피가 173% 급등해 직선제 이후 대통령 가운데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자산운용사 육성 등을 통해 증시 부양에 성공했다. 당시 논란이 됐던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에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5월 경제상황 점검회의에서 “증시 부양 목적이 아니라 연금 운영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효과로 코스피는 2007년 사상 처음 2000선을 돌파했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에선 특히 대선 공약이었던 증권집단소송제가 자주 등장하는데 2003년 10월 한국증권업협회 50주년 메시지에선 “이제 증권시장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이뤄야 한다”며 “분식회계나 주가 조작, 허위 공시와 같은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회계제도를 개혁하고 증권집단소송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소송에 따른 기업 부담을 우려해 2년여간 공방이 이어지다 2003년 12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대선 후보 당시 ‘코스피 5000’을 호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거꾸로 흘러가는 시장 상황에 속을 태워야만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증시가 크게 휘청인 탓이다. 이 전 대통령은 ‘불도저’란 별명에 어울리는 발언도 남겼는데 2008년 10월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주식이 가장 낮은 가격이었을 때 두려움 없이 산 이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며 투자자들의 불안을 달랬다.

코스피 3000을 약속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엔 박스피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 등 증시 활성화 대책에도 재임 4년여간 상승률이 4%에도 못 미쳤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힘입어 ‘1000만 동학개미 시대’를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공매도 폐지론이 불거지자 2021년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투자하는 특정 펀드에 가입하면서 “많은 국민들께서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여 ‘관제펀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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