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리 앞 오렌지넥타이…'영업왕' 이재용의 디테일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2-06-18 14:00   수정 2022-06-19 13:2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마르크 뤼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와의 면담 자리에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한 게 눈길을 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량 확대에 필수인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확보하고자 네덜란드 독립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넥타이를 직접 골랐다는 후문. 이 부회장은 과거에도 예정에 없던 거래처 주요 인사와 즉석 일정을 만드는 등 그룹 이익과 국가 경제 안보를 위해 직접 영업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부회장이 직접 오렌지 넥타이 골랐다"
이 부회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총리 집무실에서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뤼터 총리를 만났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과 뤼터 총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두 사람이 최첨단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확대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소 등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사진이 공개된 뒤 언론과 업계의 시선은 오렌지색 넥타이에 집중됐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넥타이를 고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부회장은 과거에도 국내외 정재계 고위급 인사를 만날 때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컬러를 맞춰 넥타이를 골랐다. 하지만 오렌지색 넥타이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뤼터 총리와의 만남에 이렇게 디테일까지 신경쓴 것은 ASML의 EUV 노광 장비 수급이 워낙 급해서다. EUV 노광 장비는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미세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최첨단 필수 장비로, 전 세계에서 ASML이 독점 생산·공급하고 있다. 다만 연간 생산량이 50대 안팎에 그쳐 삼성전자로서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ASML 장비 한 대가 아쉬운 상황.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가동 중인 EUV 노광 장비는 15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TSMC는 EUV 노광 장비를 100대 이상 운용 중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차세대 EUV 노광 장비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NA) EUV' 도입도 인텔과 TSMC에 뒤질 수 있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오렌지색 넥타이 착용은 네덜란드 기업인 ASML 장비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영업의 언어'로 해석된다.

오렌지색이 네덜란드를 대표하게 된 건 '네덜란드의 국부'로 불리는 빌럼 판 오라녜(Willem van Orange) 공의 영향이다. 과거 1500년대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큰 영향을 끼친 오라녜 공의 영문 철자가 'Orange'인 탓에 오렌지색은 네덜란드 독립을 상징하는 색깔로 자리잡았다. 오렌지색에 대한 네덜란드인들의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이 같은 정서를 파악하고 넥타이를 골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부회장의 영업 디테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다른 주목을 받은 건 이 부회장이 뤼터 총리에게 선물한 반도체 웨이퍼다. 이 부회장은 뤼터 총리에게 삼성과 네덜란드의 오랜 협력과 우정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구를 12인치 웨이퍼에 네덜란드어로 각인해 선물했다.


웨이퍼 배경 이미지는 네덜란드 총리 공관으로, 이미지를 그리는데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기술이 사용됐다. 웨이퍼에 그려진 총리 공관이 사실적이어서 사진을 웨이퍼 표면에 코팅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ASML의 EUV 노광 장비 레이저 기술로 충분히 정교하게 그림을 새길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즉 ASML 기술이 들어간 웨이퍼라는 점이 포인트로, 네덜란드 기업인 ASML의 반도체 초미세공정 핵심장비 수급에 협조해달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1조원 수주 뒤에 JY 북한산 등산 있었다
이 부회장이 영업을 위해 직접 뛴 순간은 또 있었다. 지난달 3일 삼성전자는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 네트워크'(DISH Network)의 대규모 5G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다. 두 회사는 정확한 수주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1조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수주는 삼성전자의 미국 내 5G 통신장비 공급 중 역대 두 번째 규모다.

통신장비 사업은 계약 규모가 크고 장기간 계약이 대부분이다. 또 주요 기간망으로 사회 인프라 성격을 띠고 있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속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업계는 수주가 성사된 데 이 부회장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5G 통신장비 공급계약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디시 네트워크 창업자 찰리 어건 회장을 직접 만나 등산을 같이 했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어건 회장은 당초 월요일에 이 부회장과 짧은 비즈니스 미팅을 하기로 약속했으나 하루 전인 일요일에 이 부회장이 등산이 취미인 찰리 회장에게 북한산 동반 산행을 제안했다. 어건 회장이 본사가 위치한 콜로라도주의 해발 약 43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올랐고 킬리만자로산, 에베레스트 등 세계의 고산 지역을 등반할 정도로 전문가급 실력을 갖춘 등산 애호가라는 점에 착안한 것.

이 부회장은 일요일 오전 직접 차량을 운전해 어건 회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태우고 북한산까지 단둘이 이동했다. 당일 등산은 오전 11시30분부터 약 5시간가량 수행원 없이 이어졌다. 개인적 이야기부터 삼성과 디시의 협력 방안까지 폭넓은 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산행을 계기로 신뢰 관계가 쌓였고 수주로까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왜 골드만삭스에서는 삼성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나요?"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공판에서 이 부회장이 2015년 7월 미국 골드만삭스 고위 경영진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 공개됐다. 내용을 보면 역시 이 부회장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

이 부회장은 당시 이메일에서 "왜 골드만삭스에서는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나요? 보안 때문인가요?"라고 물은 뒤 "알겠습니다. 제가 기술진과 다시 방문해 애로 사항을 해결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 은행들은 보안을 이유로 기술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전화만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기술부서의 특별 인증을 받은 아이폰과 블랙베리만 사용해왔다.


이 부회장은 골드만삭스 경영진과의 미팅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직접 삼성전자 엔지니어를 대동해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에 찾아갔고 임원 앞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장점과 보안 기능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후 골드만삭스 기술부서는 삼성 스마트폰에 특별 인증을 내줬다. 현재 골드만삭스 임원들은 애플, 블랙베리 대신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업무용 전화기로 사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하는 사업이나 영업 모두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지 않나. 총수가 직접 넥타이를 고르고 수행원도 없이 등산을 하는 것 자체가 사실 의전적으로 상당히 파격적인 부분"이라며 "튀는 걸 꺼리는 이 부회장이 오렌지색 넥타이를 맸다는 건 글로벌 경영 환경이 최악인 국면에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렌지색 넥타이, 등산, 골드만삭스 건 같은 영업은 밑에서 의견을 올릴 수 없는 사안들이다. 총수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단지 수사(레토릭)이 아니라 이 부회장이 정말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귀띔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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