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같은 나라 없다"…나랏빚 50% 늘 때 교육청은 돈 '펑펑' [정의진의 경제현미경]

입력 2022-06-23 13:30   수정 2022-06-23 15:55

지난 4년간 중앙정부가 짊어진 빚이 50%가량 늘어나는 동안 전국 교육청의 지방교육채(지방채) 규모는 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부는 코로나19와 고령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채무가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전국 교육청들은 실제 필요와는 상관 없이 세수 규모에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수입이 급격히 늘어난 결과다. 이에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교부금 제도가 국가 전체적으로는 불합리한 재원 배분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국가 예산정책처로부터 공식 제기됐다.

23일 예정처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논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7개 교육청의 지방채 규모는 2017년 12조1000억에서 지난해 4000억원으로 11조7000억원(9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앙정부의 채무 규모는 627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939조1000억원으로 311조7000억원(49.7%) 불어났다. 중앙정부의 빚이 빠르게 늘면서 재정건전성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앙정부 채무 비율은 2017년 34.2%에서 지난해 45.6%로 올랐다.

교육청의 지방채 규모가 '0원'에 수렴할 정도로 빠르게 줄어든 것은 교육교부금 수입이 가파르게 증가한 결과다. 교육교부금은 중앙정부가 내국세 수입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지방 교육청의 교육예산으로 지급하는 돈으로, 현재 교부율은 20.79%로 정해져 있다. 국가 경제가 성장하며 세금 징수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교육교부금도 기계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인 것이다.

이에 교육교부금 규모는 2017년 46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60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엔 세수 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교육교부금도 1년만에 21조원(34.8%)이나 늘어난 81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예정처는 이처럼 내국세 규모에 연동되는 교육교부금 제도에 대해 "국가 전체적인 재원배분 측면에선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예산 편성의 경직성으로 인해 국가 재정 전체적인 관점에서 효율적인 재원 배분에 한계가 있고, 교육청들도 내국세 변동에 따라 안정적인 재정운용계획 수립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정처는 특히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교부금 제도가 학령인구 감소 등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예산 편성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17세 학령인구 규모는 2020년 547만8000명에서 2030년 406만8000명으로 141만명(25.7%) 감소할 전망이다. 2040년엔 329만1000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학령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교육교부금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예산이 보다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는 비효율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예정처는 교육교부금이 유치원과 초·중·고 교육에만 쓸 수 있도록 사용처가 제한되는 점에 대해서도 "고등교육(대학)의 질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교부금의 꾸준한 증가로 인해 한국은 초·중등 교육에 대한 지출은 선진국보다 훨씬 큰 데 반해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초·중·고 학생 1인당 정부지출액은 1만2339달러로 OECD 평균 9913달러 대비 2426달러(24.5%) 많았다. 반면 대학생 1인당 정부지출액은 한국이 6266달러로 OECD 평균 1만338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교육교부금의 비효율적 배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달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에도 쓸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산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근본적 원인인 내국세 연동제 방식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면서 '개혁이 아닌 차악'을 정부가 택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정처도 이번 보고서를 통해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한국과 같이 법률에서 정하는 내국세 연동제 방식으로 교육예산을 편성하는 나라는 없다. 이들 주요 국가들은 모두 각국의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교육환경과 재정 수요를 따져 매년 초중등 교육 예산의 적정한 규모를 산정한다. 한국에서도 교육예산과 지방교부세를 제외한 모든 예산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 같은 국회·지방의회의 설득 과정을 거친다. 교육교부금에 '영수증을 떼지 않는 눈먼 재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예정처는 "내국세 연동방식을 개편하는 것은 교부금 축소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다양한 교부금 제도 대안을 마련해 각 대안이 교육투자 수혜자에 미치는 효과, 재정절감 효과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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