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년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한 예술 영재들의 발자취는 비슷하다. 5조원대 시장이 된 예체능 학원들이 ‘원석’을 골라내면, 한예종 등 국가 영재교육 시스템이 ‘보석’으로 만들었다. 기업은 세계 무대에 나갈 수 있게 무대와 악기 등을 내줬다. 민간, 정부, 기업으로 이어지는 3각 육성 시스템이 단단하게 구축된 만큼 ‘제2의 조성진’ ‘제2의 임윤찬’이 줄지어 나올 것으로 예술계는 기대하고 있다.
국내 초·중·고 사교육 시장(23조4000억원)에서 예체능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예체능 사교육 시장 규모는 2007년 3조9150억원에서 지난해 5조3102억원으로 35% 증가했다. 여기에 개인레슨을 합치면 수학 사교육 시장(약 6조원)과 맞먹을 것으로 예술계는 추정한다.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이 동네 곳곳에 본격적으로 스며든 건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1994년부터였다.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역설적으로 국내 예술 인프라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국내로 소환된 유학파들이 앞다퉈 학원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국에 3만 개 넘는 피아노·미술학원이 생겼다.
정규 교과과정의 보조 역할을 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학원은 ‘재능 조기 발견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득 2만달러(2006년)를 넘어서면서 이런 분위기는 심화했다. ‘ 내 아이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전체 예체능 사교육비의 71%(3조8089억원)가 초등학생에 집중됐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한선정 씨(44)는 “대다수 부모가 아이가 어릴 때 평생 즐길 수 있는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정도는 가르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음악학자인 고(故) 이강숙 초대 총장이 기틀을 잡았다. 예비학교(현 영재원)를 설립해 일찍 예술을 익히게 하고, 박사 학위가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교수로 채용했다.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이경숙과 김대진(현 총장),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 등이 그렇게 한예종 식구가 됐다. 한예종 학생은 교육비가 전액 무료이고, 교수진으로부터 1 대 1 레슨을 받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이 초대 총장에 대해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에 맞먹는 한예종 교육 시스템은 2000년 중반 이후 꽃을 피웠다. 세계 주요 음악과 발레 콩쿠르에서 수상자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한국의 스파르타식 교육 시스템이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들을 낳은 측면이 있다”며 “물론 한국인 특유의 예술성이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보탬이 됐다”고 했다.
이 시스템을 굴리는 연료는 ‘연습벌레들’의 열정이다. 한예종 건물에선 화장실, 운동장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춤추고 노래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연주홀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한예종 영재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백서연 양(16)은 “친구들과 연습하면서 항상 자극받는다”고 말했다.
클래식 부문에선 금호문화재단이 큰 역할을 해왔다. 1977년 금호그룹이 2억원을 출자한 장학재단으로 출발해 매년 연간 예산의 30% 이상(20억원)을 영재 지원에 썼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의 클래식 영재를 배출했다. 금호는 문화재에 준하는 수억원의 명품 고악기를 무상 제공하거나 콩쿠르 출전 항공권을 지원하고, 해외 유명 지휘자가 내한하면 영재들과의 만찬 및 오디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금호문화재단은 단순 금액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 예술 지원의 본보기가 됐다”며 “메세나가 없었다면 클래식 한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신연수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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