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VC의 투자 비법, '종과 횡'의 법칙을 적용하라 [긱스]

입력 2022-07-05 08:21   수정 2022-07-05 08:22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털(VC)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할까요. 급변하는 시장에서 성공한 VC의 변하지 않은 투자 원칙은 무엇일까요. 카카오의 투자 전문 계열사인 카카오벤처스를 국내 대표 VC로 이끈 김기준 부사장이 한경 긱스(Geeks) 기고문을 통해 투자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무엇을 보나요?”

벤처캐피털(VC)을 하면서 단연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수십 년 된 맛집 장인 할머니의 비법 레시피라도 꺼내듯 뭔가 그럴듯한 것을 내놓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만한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누구는 ‘뻔해’라고 하겠지만 결국은 다음 두 가지에 따라 결론이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멀리 바라볼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필수 기술인가? 둘째, 그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할 수 있는 팀워크, 네트워크, 경험 등 충분한 역량을 가진 팀인가?

두 번째 질문은 반복된 투자 검토를 하며 나름의 내공과 방법론이 쌓여갈 법도 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는 더 복잡합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미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저의 방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종과 횡의 법칙




잔잔한 수면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물방울을 중심으로 물결이 넓게 펼쳐지며 퍼져나갑니다.


물방울이 수면에 부딪히기까지의 시간을 '종'의 방향성 구간, 수면에 부딪힌 후 물결이 퍼져나가는 시간을 '횡'의 방향성 구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런 흐름에 어떠한 기술의 '시작→발전→성숙→사업화'에 덧입혀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구조화가 가능합니다.

종의 방향성
미래를 바꾸는 기술의 시작은 대학교의 실험실이나 기업, 정부, 국방연구소 등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많은 기술 중 일부가 학계에서의 검증과 발전을 거듭하며 어떤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합니다.

기술 숙성의 시간이 수면 위로 떨어질 정도로 물방울이 커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물방울 가운데서도 일부만이 종의 방향성 구간을 잘 견뎌내고 횡의 방향성으로 진입합니다.

매 순간 탄생하는 수없이 많은 기술 중에서 어떤 물방울이 횡의 방향성까지 잘 진입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딥테크' 투자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물방울이 검증을 거쳐 수면 위로 떨어질 수 있는지, 수면 위에서 넓게 퍼져나갈 힘이 있는 것인지 등을 분석해 종의 방향성 구간에서 빠르게 투자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횡의 방향성
종 구간의 검증을 거쳐 횡으로 진입하는 기술 물방울들은 이미 상품화(commodity)를 구축해 가는 단계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합니다.

△해당 기술로 어떤 산업의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적정 기술을 빠르게 개발해 적용해 갈 수 있는지 △이런 전략을 신속하게 거침없이 실행할 수 있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종과 횡의 방향성이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을 묶어 ‘종과 횡의 법칙’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설명이 다소 복잡했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시대와 현상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크게는 1) 디지털·PC, 2) 인터넷 3) 모바일과 같은 3개의 물방울로 구분해봤습니다.


기술이 기술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어떤 세상의 문제를 풀 수 있을 수준까지 발달하고 성숙하는 구간이 입니다. 성숙한 기술이 실제로 세상의 문제를 풀고, 사업적인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구간이 입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물방울로 개인용 컴퓨터(PC·Personal Computer)가 있습니다. PC는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 하드웨어부터 애플리케이션(앱), 프로그래밍 언어 등 소프트웨어까지 수많은 기술과 제품의 결집체입니다. 설명의 편의상 이를 하나의 덩어리로 ‘PC’라고 표현했습니다.
종과 횡으로 보는 PC 초창기
최초의 PC라고 하면 어떤 것들을 떠오르나요?



아마도 1976년 나온 애플의 첫 번째 컴퓨터인 ‘Apple1’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 2년 전인 1974년 MITS에서 ‘알테어8800’이라는 최초의 PC가 탄생했습니다. 인텔의 8080이라는 8비트 CPU를 탑재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알테어 베이식'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뒤를 이어 출시된 'Apple II'(1977년), 'Commodore VIC-20'(1980년)가 조금씩 대중화되며 PC가 본격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이제 물방울이 성숙하고 확산돼 종의 구간을 마치고, 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한 횡의 구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PC라는 물방울이 종의 구간이었던 이 당시에 제가 VC였다면 어땠을까요? 이 구간에서는 물방울이 완성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PC가 성숙하고 완성되기 위해 아래와 같이 필수적인 제품이나 기술 영역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투자를 검토했을 겁니다.

<i>CPU·메모리 </i>

<i>인텔(Intel). 1968년 창업. 초기에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함. 1971년부터 전자계산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생산을 시작으로 8bit CPU인 8008, 8080, 8085 등을 출시.</i>

<i>지로그(Zilog). 1974년 창업. 인텔의 8080과 호환되며 가격 경쟁력은 더 높은 자일로그 Z80 시리즈가 80년대에 많은 PC에서 사용.</i>

<i>하드디스크</i>·<i>플로피디스크 등 저장매체 </i>

<i>IBM. 1956년 하드디스크, 1971년 플로피디스크 각각 최초 개발. 이미 너무 크게 성장한 기업이기에 아쉽게도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i>

<i>PC 설계/제조 </i>

<i>MITS. 퍼텍 컴퓨터(Pertec computer)에 1976년 매각 @$6.5M), Apple, Commodore 등.</i>

PC는 어떤 문제들을 풀어가며 횡의 방향성으로 확장했을까요. 아마도 '디지털'이라는 키워드에서 소외되어 있었을 중소 규모의 비즈니스 영역이었을 겁니다.

큰 규모의 기업에서는 메인프레임·터미널 형태를 통해 컴퓨터의 힘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지만, 중소 규모에서는 수기나 간단한 전자기기로 모든 일들이 처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판을 사용해서 회계 등의 업무를 처리하던 것이 불과 40여 년 전입니다. 당시만 해도 상업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에 주판을 활용한 계산 과목이 포함돼 있었고, 또 그것을 배우는 주산학원이 성행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이를 활용해 많은 업무가 진행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 수면 위에 놓여 있는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문제는 PC의 횡의 구간이 시작되고 나서 실제로 얼마 안 돼 풀립니다.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인 'Apple II' 용 'VisiCalc'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넘버스(Numbers), 엑셀(excel),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비교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지만 비교 대상을 주판 또는 '전자계산기+볼펜+보고서 용지'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요?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지 않았을까요? 이런 변화 속에서 출시된 'Apple II'는 'VisiCalc'의 출시와 판매량이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MS도 1983년 '멀티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를 내놓고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제품은1985년에 매킨토시용으로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됐습니다.




디스플레이·사운드와 같은 기능성이 현저히 떨어진 가운데 PC산업의 성장을 이끈 견인차는 누가 뭐라해도 이런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였습니다. 당시의 업무 사무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스프레드시트 외에도 현재의 '워드(Pages)'나 '파워포인트(Keynote)'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었습니다. 수기나 타자기 또는 일체형 워드프로세서 등을 활용해 보고서를 만드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편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PC라는 물방울을 잘 이해했고, PC가 풀 수 있는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당시에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했을 겁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자 혹은 그런 창업자를 발굴해 투자하는 투자자. 그렇다면 PC 외에 다른 물방울은 무엇이 있을까요? WWW과 모바일(Mobile)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WWW의 초창기에 투자했다면
WWW을 언급하면서 이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웹의 아버지, 팀 버나스 리(Tim Berners-Lee)입니다.


1980년대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근무하던 버나스 리는 정보를 관리하고 검색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Hypertext, HTML, WWW, HTTP, URL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WWW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고안한 기술들을 특허도 내지 않고 WWW의 발전을 위해서 무료로 배포합니다. 그러니 'Sir'가 제 마음에서도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WWW가 뭐냐?'라고 생각하면 HTML(문서들끼리 정보에 따라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언어)로 작성된 문서들이 서로 거미줄(Web)처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을 탐색하고 문서를 읽는 창이 웹브라우저입니다. 그런데 이 공간이 워낙 방대하고 문서가 많습니다. 이 안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다니기 위한 길라잡이가 구글(google), 야후(yahoo)와 같은 검색엔진의 시작이 되겠습니다.

1990년에 WWW는 이미 제안됐고 시작했지만 일반인들이 WWW를 서핑하기 위해 필요한 통신 인프라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그래서 실제 대중에게 'WWW=인터넷을 한다'라고 동일시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이 WWW의 물방울이 종에서 횡으로 전환되는 시점일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집에서 01410으로 전화를 걸어 몇 시간 동안 집 전화를 통화 중 상태로 만들어 부모님께 혼나던 시절에서 집에 인터넷을 깔았다며 좋아하기 시작한 시절로 넘어갈 때가 그때쯤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1990년대 중후반 종의 구간에서는 WWW가 일반화하기 이전으로 직접 세상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기술 자체가 완성도 있게 발전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할 수 있을 의미 있는 투자로 다음과 같은 회사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i>매크로미디어(Macromedia). 웹페이지 저작 툴 드림위버, 멀티미디어를 위한 플래시. 2005년에 어도비가 인수.

넷스케이프(Netscape). 대표적인 웹브라우저. 1999년 AOL이 인수. 창업자 마크 안드레센과 멤버 벤 호로비츠는 유명 VC인 '안드레센 호로비츠'를 설립.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 워크스테이션. 닷컴 붐에 힘입어서 엄청난 판매를 하며 성장. 2009년 오라클이 인수. 비노드 코슬라는 그 유명한 코슬라벤처스를 설립.</i>

몇 해 정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음의 회사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i>나모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저작 툴. 2000년 코스닥 상장 </i>
<i>하이홈. 개인 홈페이지를 쉽게 템플릿 형태로부터 제작하는 것만으로 크게 성장.</i>

이후 전용선이 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종횡 전환이 가속화했습니다. WWW의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함에 따라 이 세계를 쉽고 빠르게 탐색하고 다닐 수 있는 검색엔진 또한 종횡의 전환을 견인했습니다.

그 이후 WWW의 대표 서비스 카테고리인 '4C'(Communication, Community, Contents, Commerce)가 우리 생활을 지배할 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한 가지만 기억할 것은 지금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런 대중화된 인터넷 서비스들도 횡의 구간이 시작되며 세상의 불편함을 인터넷을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모바일 시대 '횡의 전환' 이끈 애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모바일의 시대는 여러분들의 기억과 현실 속에 생생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아래 사진으로 갈음해보고자 합니다.


이 시점이 모바일의 물방울에 있어서 종과 횡의 전환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이 시기 전에는 이동통신사의 종속적 사업 환경 속에서 세상의 문제를 모바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다채롭게 발생하기 어려웠고 또한 하드웨어(피쳐폰)도 이런 노력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의 확산으로 상황이 급격히 달라집니다. 모바일 기기가 단순한 전화를 위한 수단에서 다양한 기능(특히 WWW를 웬만큼 편리하게 사용 가능하고 전용 앱을 누구나 만들어서 배포 가능)으로 확대됩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존 PC 환경의 WWW 서비스들이 그대로 표시되는 것에서 출발하거나 또는 간단한 퍼즐 게임류와 앱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개인화, 이동성, 실시간 등 모바일만의 특성이 잘 반영된 서비스들에 대해 고민하는 똑똑한 분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초반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하는 창업가들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카오벤처스(당시 케이큐브벤처스)도 ‘100인의 CEO를 만든다’는 사명으로, 2012년에 설립돼 무시무시한 속도로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PC, WWW, 모바일 등 총 3개 물방울들을 ‘종과 횡의 법칙’으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알파고가 세상에 알려지기 2년 전인 2014년. 아직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인공지능(AI) 영역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김기준 | 카카오벤처스 부사장
김기준 부사장은 개발자 출신입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보대학원 디지털경영 석사를 받았습니다. 2004년 아이디어웍스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CJ홀딩스 전략기획실에서 사업 기획, 전략 업무를 맡았습니다. 2012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했습니다.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기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 자율주행 전문업체 모라이,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등의 투자를 주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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