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근로자 생명까지 앗아간 무리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7-13 10:18   수정 2022-07-13 10:19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가 끝이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행된 무리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여파로 한 청소근로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주말 금융감독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규직화로 근무강도 높아져 '과로사'
금감원 청소근로자의 과로사 비극의 주인공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년 7월 설립한 금감원 자회사 'FSS 시설관리' 소속 근로자다. 그는 금감원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서두르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겼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용역 고용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과로사로 추정된다. 정규직화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려고 회사가 감원하는 바람에 근무강도가 훨씬 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비정규직 제로'라는 비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절대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인 정책이 근로자 생명까지 위협중이라는 방증이다.

비정규직 제로는 문재인 정부의 '1호 정책'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식 이틀뒤 헬기로 인천공항공사으로 날아가 첫 외부일정을 가지면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한 비정규 근로자는 '이제 희망이 보인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악' 이분법과 보여주기식의 무리한 정규직 전환을 두고 포퓰리즘 논란이 컸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자발적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는 판국에 시대착오라는 지적도 많았다.
◆불공정·부당해고·인재 구축,부작용 속출
실제로 정규직화의 상징사업장인 인천공항공사는 지금껏 온갖 부작용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 전환과정의 불공정에 기존 직원과 청년들이 반발하는 '인국공 사태'로 큰 사회적 혼란을 불렀다.이 과정에서 정부는 애먼 경영자에게 책임을 씌워 해고했지만 법원이 부당해고로 판결해 2명의 사장이 공존하는 요지경도 벌어졌다. 또 비정규직 제로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기만적 방식도 동원됐다.

무리수 정책은 고용시장 전반의 청년일자리 파괴로도 이어졌다. 정부 눈치를 살피며 정규직화를 우선하다보니 채용여력이 소진돼 공기업에선 '신규채용 반토막'났다. 주요 공기업 35곳의 정규직 신규채용이 2019년 1만1238명에서 지난해 5917명으로 47%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은 직원 수와 총액 인건비가 한정돼 있어 정규직 전환으로 직원이 늘어나면 신규 채용 감소는 불가피하다.

461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코레일은 최근 2년새 64%, 5662명을 전환한 한전은 41% 신규채용이 감소했다. ‘비정규직 제로’의 상징 사업장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채용이 반토막났고 한국마사회는 아예 신규채용 제로(0)다. 수많은 공공기관 취업준비생들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유능한 인재들의 채용을 가로막는 구축효과도 만만찮다. 주요 연구기관에선 경력이 미진한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대거 정규직이 되면서 실제 필요한 고급 연구인력 채용이 급감했다.
◆비정규직 외려 급증…로또 전환자 외 전부 손해
공공기관 정규직이 지난 5년간 10만 8000명 늘어나면서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공공기관 경영도 부실해지고 있다. 350개 공공기관의 지난해 총부채는 583조 원으로 2017년보다 90조 원 급증했다.

보여주기 식으로 치달으며 구조개혁을 외면하다보니 고용시장 전반의 비정규직은 외려 폭증세다. 2017년 657만명이던 비정규직 근로자는 작년 10월 800만 명을 돌파했다. 비정규직 비중도 38.4%로 10명중 4명꼴에 달한다. 2012~2018년엔 32~33%였지만 최근 몇년 새 폭증세다.

정규직 전환 당시 비정규직으로 있던 소수만 '정규직 로또'를 맞고 나머지 모두가 손해를 본 기막힌 결과다.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렸다가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영업자가 고통을 겪은 것과 비슷한 전개다. 노동시장은 정부가 개입하고 억눌러서 통제할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무리한 개입은 부작용만 키우고,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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