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물가·성장 다 잡을 카드는 디지털 전환뿐

입력 2022-07-13 17:25   수정 2022-07-14 00:14

‘세계화’와 ‘중국 부상’ ‘디지털 혁명’의 공통점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분업에 따른 비용 절감 등 공급망의 효율화를 가져왔다. 싼 공산품의 최대 생산국 중국의 등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와 중국 이상으로 물가 안정에 기여한 것은 디지털 혁명이다.

경제학은 ‘부족(shortage)’과 씨름해온 학문이다. 디지털로 네트워크화된 세상은 부족 문제로 고민하는 경제와는 그 작동원리가 다르다. 정보와 데이터, 지식은 누구랑 같이 쓴다고 부족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비용은 낮아지고 효용은 올라간다. 한계비용 상승으로 수확체감 법칙에 구속당하는 경제와 한계비용이 제로로 가면서 수확체증 법칙을 구가하는 경제의 차이다. 경제가 디지털화로 가면 인플레이션이 작동하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불행히도 코로나19로 세계화에 제동이 걸리고,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충돌이 일어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역풍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인플레이션도 그중 하나다. 그래도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 미완의 디지털 혁명이 그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생산성을 더 높인다면 물가 상승 압박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플랫폼 규제 담론이 쑥 들어간 이유도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면 거시적으로는 금리 인상이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밖에 없다. 기업 경영자들이 인공지능(AI)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 “고객보다 고객 마음을 잘 알고 싶다”도 있겠지만, 결국은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로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플랫폼이 비용을 낮추면서 독점으로 이어지고 승자독식으로 가게 된다는 이유로 플랫폼의 이점을 죽이는 규제를 동원하면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꼴이 되고 만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물가와 실업률 간 상충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의 디지털화로 생산성을 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 기존의 필립스 곡선이 ‘보다 낮은 실업률과 보다 낮은 물가의 조합’이란 새로운 필립스 곡선으로 이동하거나, 필립스 곡선이 보다 평평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물가 잡기를 넘어 경기침체 우려를 깨고 새로운 성장을 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전환은 절박한 과제다. 딜로이트 글로벌 어낼러시스(Deloitte Global Anaysis)가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10점 척도로 평가한 산업별 ‘디지털 성숙도’는 여전히 미완인 디지털 혁명을 보여준다. 반도체(6.3) 전자(5.6) 유통(5.5) 자동차(5.4) 통신(5.3) 제약 및 바이오(5.2) 건설·부동산(5.1) 항공우주·방위(5.0) 소비재(5.0) 헬스케어(5.0) 운송·여행·관광(5.0) 화학(4.8) 에너지(4.7) 농업(4.7) 물류(4.5) 오일·가스(4.3) 등이 그렇다. 디지털 전환은 아직 절반밖에 안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성장 돌파구는 인간을 돕는 AI와 로봇의 활용·확산으로 서비스업의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성장은 서비스업보다 빠른 제조업의 생산성 증가가 이끌어왔다. 문제는 경제가 서비스업 비중이 커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서비스업 생산성은 정체돼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업 생산성이 제조업의 절반도 안 되는 한국 경제는 특히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가 하겠다는 규제개혁도 그 타깃을 디지털 전환에 맞춰 물가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자고 호소한다면 국민과 기업이 호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 유럽을 지목했다. 2030년까지 AI가 세계 총생산에 15조달러를 더해줄 것이란 예측이 나온 바 있다. 15조달러면 중국 경제 하나가 더 탄생하는 효과다. 중국 못지않게 보호주의 장벽을 치고 있는 유럽이 대안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미래 디지털 시장을 보지 못하고 지리적 시장에 매달리는 게 답답하다. 구시대 경제정책으로는 물가도 성장도 잡을 수 없다.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경기침체 우려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바닷속은 기업 간, 국가 간 디지털 전환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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