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정무 기능…솔솔 부는 '인사쇄신론' [여기는 대통령실]

입력 2022-07-17 10:05   수정 2022-07-17 13:24


“그때까지 현직에 남아 있을까요”

최근 대통령실 기자들이 출입처의 주요 인사들과 점심 또는 저녁 약속을 잡을 때 농담처럼 오가는 얘기입니다. 통상 한두 달 후 식사 약속을 잡기 마련인데, 그 사이 어떤 인사 조치가 있을 지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기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실의 밑바닥 공무원인 4급, 5급 행정관들을 사적인 자리에서 “조직이 무기력해지고 있다” “결국 인적 쇄신이 불가필 할 것”이라는 의견을 서슴없이 드러냅니다. 그 윗선인 비서관급 이상 인사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전하면 슬그머니 “나는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본인도 인사 대상인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내 업무는 OOO”라고 특별히 강조하는 참모들도 있습니다.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똘똘 뭉쳐 새정부 철학을 밀고나가야 할 참모들이 이렇게 각자가 따로 노는 건 30%대로 주저앉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의 ‘슬픈 현실’인 듯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세월호처럼 눈에 띄는 대형 사고가 없는 상황에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지지율이 한계선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입니다.

대통령실도 이런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주요 인사들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지난주부터 △공공부문 개혁 등 국정 아젠다를 선점하고 △중도와 2030세대를 향해 선명한 메시지를 내며 △홍보기획 등으로 국정을 주도한다 는 등의 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난 한주를 돌이켜보면 이런 방침들은 국정운영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가 후보 지명 엿새만에 사퇴했습니다.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공개 일정들도 일부 취소를 했습니다. 득보다 실이 많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과 대책들에도 지지율은 하락세는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실의 핵심인 정무와 메시지, 인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금요일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인으로 강릉 한 통신설비 업체 대표의 아들 우모씨(32)가 대통령실 사회수석실에 근무하고 있는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이 근거없이 ‘사적 채용’ 프레임을 씌운다며 대수롭게 넘어가려하고 합니다.

이 건은 이전의 사적 채용 논란들과 확실히 다릅니다. 선거 과정에 우모씨가 후원금을 1000만원이나 납부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지방에 소재하는 32살의 젊은이가 이런 거금의 후원금을 당시엔 당선이 불확실한 대선 후보에게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심지어 우씨의 아버지는 선거 당시 중립을 지켜야 할 강릉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입니다. 우씨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후원금을 대신 내줬고, 이런 대가로 대통령실에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는 건 상식입니다.

물론 윤 대통령이 이런 세세한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국민께 사죄하고 이런 일을 앞으로 방지하겠다고 약속하면 단신으로 끝날 사건입니다. 장관도 여럿 석연찮은 의혹으로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실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사실상 매관매직이 아니냐’는 질문에 “후원금은 적법 한 과정 거쳐서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실에서 일하게 된 과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답변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의 6촌이면서 대통령실 부속실에서 근무하는 최모 선임행정관이나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의 채용 사례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한 오판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선 능력과 실력에 따라 공정하게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취업을 앞둔 2030세대 뿐 아니라 이들을 자녀로 둔 5060세대들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조국 사태’에서 민심이 크게 흔들렸던 이유 중 하나가 조국 교수의 딸인 조민씨가 의대 입학을 위해 저질러진 각종 위법·탈법 사례들때문입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이사건을 심상치않게 보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사적 채용’ 논란은 한달여 가까이 끌어온 이슈입니다. 추가 사적 채용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여러 언론에서 이미 대통령실에 여러 차례 확인 작업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갑자기 터져서 대응할 시간이 없었던 돌발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대통령실 수뇌부에서 이런 식으로 대응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실의 가장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정무 기능입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하기 어려운만큼 국정의 중요도를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역할입니다. 지금처럼 거대 야당이 힘을 쓰는 상황에선 더욱 중요한 기능이죠.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런 정무 기능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볼까요? 윤 대통령이 최근 들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민생입니다. 지지율이 하락한 주요 이중 하나도 대통령이 민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때문입니다.

지난 주 대통령 행보의 하이라이트는 14일(목요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입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취약 계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의 고충과 애로를 듣겠다는 취지로 나온 첫 현장 방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보 하루 전 대통령실은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예정에 없던 브리핑까지 열고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했습니다. 더구나 “만약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송했다면 국제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행위”라는 내용은 이미 일주일 전 내놨던 대통령실 입장이기도 합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또 16명의 동료 선원들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반론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대통령실이 야당을 향해 이런 선명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런 메시지로 인해 다음날 대통령 행보는 묻히고 야당과 관계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은 지지율 하락에 따른 위기감을 느끼고 대응도 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위기대응 체제 이후에 나온 대통령실의 정책과 메시지를 보면 실망스러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상한 행보가 잦은 이유는 뭘까요? 윤 대통령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한 정치인은 “대통령실에 수비수만 잔뜩 모여 있고, 공격수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검찰과 모피아 등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만 모여서 국정을 논의하고 있으니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설명입니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이 사실상 고장났다”며 “안 그래도 대통령의 약한 고리인데 참모진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대선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을 했던 김병준 전 대통령직위원회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장도 “대통령이 얘기를 해도 (밑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포퓰리스틱한 정책들만 나온다”며 “답답하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털어놓습니다.

정치엔 어차피 가야할 정답은 정해져있다고 합니다. 한박자 빠른 대응을 할 거냐, 뒷북 대응을 할 거냐의 판단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시점에 어떤 선택을 할까요?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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