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올렛길 vs 올레길, 규범과 현실 사이

입력 2022-07-25 10:00  


‘약 400만 건 대(對) 15만 건.’ 대략 26배 차이다. 최근 구글 전체에서 검색된 ‘올레길’과 ‘올렛길’의 빈도수다. ‘둘레길’과 ‘둘렛길’은 어떨까? 그 차이는 더 일방적이다. ‘1100만 건 대 1만1000건’이다. 둘레길 빈도가 둘렛길보다 1000배 정도 많다.

지난 7월 초 국립국어원 회의실. 올레길과 둘레길의 표기 문제가 현안으로 올라왔다.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을 규정(제30항)한 정신에 따르면 ‘올렛길[올레낄], 둘렛길[둘레낄]’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표기 사례는 ‘올레길, 둘레길’로 사이시옷 없는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규정과 현실 어법이 다르다 보니 널리 쓰이는 말인데도 표기를 정하지 못해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실횻값’ 등 규정 따르면 표기 어색해져
사이시옷은 우리말 적기의 두 기둥인 ‘소리적기’와 ‘형태적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온 완충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전세’와 ‘값’이 결합할 때 누구나 [전세깝] 또는 [전섿깝]으로 발음한다. 이를 발음대로 적자니 원형이 무너지고, 반대로 원형을 살려 ‘전세값’으로 적자니 표기가 실제 발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전셋값’은 그런 고민 사이에서 찾아낸, 일종의 절충형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이시옷을 덧붙임으로써 ‘전세’의 말음을 막아 뒤에 오는 ‘값’을 자연스럽게 [깝]으로 발음하게 한 것이다. 시옷(ㅅ)은 마찰음이지만 받침으로 쓰일 때 폐쇄음인 ‘ㄷ’(대표음)으로 발음돼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나게 한다.

하지만 사이시옷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교적 새로 쓰이는 말 가운데는 시각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게 꽤 많다. 가령 신문 보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실거래값’ ‘원화값’ 같은 말을 사이시옷 정신에 따라 쓴다고 ‘실거랫값’ ‘원홧값’이라고 적기는 쉽지 않다. 이미 사전에 오른 단어 중에서도 ‘북엇국, 우윳빛, 대푯값, 공붓벌레, 막냇동생, 실횻값’ 따위는 개인에 따라 여전히 친해지기(?) 쉽지 않은 표기들이다. 그래서 사이시옷은 우리말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킬레스건(腱)’이기도 하다.
‘~길’ 합성어, 사이시옷 안 쓰는 사례 많아
‘올레길/올렛길’ 논란은 20여 년 전 있었던 국어심의회 회의 결과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2001년 정부는 ‘새 주소 부여사업’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가 사이시옷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다. 맞춤법 규정을 따르면 ‘OO여곳길’ ‘경찰섯길’ 식으로 적어야 하는데, 이는 너무 어색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당시 회의에서는 새로 명명하는 도로명 ‘~길’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OO여고길’ ‘경찰서길’ 표기가 공식적으로 규범의 옷을 입고 등장한 순간이다.

사이시옷 용법에 관해 당시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올레길/올렛길’의 처리에서도 방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명이라 현실 발음이 된소리[올레낄]라고 단정하기에는 확실치 않다. 둘째, 복합어에서만 된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句)에서도 된소리 발음이 날 수 있다. 특히 새 도로명 ‘~길’은 개나리길, 개나리1길, 개나리2길 식으로 ‘△△+길’로 분리돼 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길’은 한글맞춤법 제49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유명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일 수도 있다. ‘△△+길’도 ‘소라아파트, 소망교회, 동대구시장, 청마루식당’ 등처럼 보통명사와 보통명사가 결합해 고유명사로 된 유형으로 보인다.” 합성어인 듯, 구인 듯한 새말 ‘~길’은 이런 까닭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기로 했다.

‘올레길/올렛길’의 경우는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 한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애초 상품명으로 개발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두산백과>). 그런 만큼 고유명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 말의 표기가 어떻게 정해질지 지켜볼 일이다. 향후 새로 나올 각종 사이시옷 표기에 시금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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