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봄 여름 대한민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곳곳에서 태동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처음 연결됐다. 그해 5월 서울대 연구실 PC에서 입력된 ‘SNU’라는 문자가 250㎞ 떨어진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의 PC 모니터에 떴다.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개가였다.경기 부천에선 삼성 반도체연구소가 막 문을 열었다. 삼성이 반도체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이윤우(전 삼성전자 부회장) 이임성(전 삼성반도체 미주법인장) 김기남(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등 삼성 반도체 1세대가 모여 이듬해 탄생할 64K D램 개발에 착수했다.
I(정보)·C(통신)·T(기술)의 씨앗이 40년 전 한꺼번에 움튼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다. 인터넷 혁명은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등 학자와 연구자들이 주도했다. 반도체 진출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 기업인들이, 통신 분야 혁신은 오명 한국뉴욕주립대 명예총장·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당시 정부 관료와 공공기관장들이 이끌었다. 각각 다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담대한 도전이 화학 반응하며 한국 ICT 산업을 일으켰다.
하지만 개척자들이 당시 직면한 현실은 험난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던 전 교수가 1979년 귀국해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구하겠다고 하자 관련 부처는 “그걸 어디다 쓰겠느냐”며 지원을 끊었다. 인터넷 연결 성공 이후에도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그는 KAIST로 자리를 옮겼다.
1970년대 중반, 이 전 회장이 처음 반도체 진출을 모색했을 때는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모두 반대했다.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가 지지부진해지자 재계에선 “젊은 2세가 무리한 일을 벌인다”는 눈총이 이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뚫린 혁신의 길은 후대로 이어졌다. 전 교수의 KAIST 연구실에선 김정주(넥슨 창업), 송재경(리니지 개발), 나성균 (네오위즈 창업) 등 IT 거목들이 자라났다. 삼성 반도체 연구소에는 수년 뒤 진대제(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황창규(전 KT 회장) 등이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신화를 썼다. 경상현(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TDX 개발진은 10년 후 CDMA 개발을 주도하며 이동통신 강국의 틀을 세웠다.
대한민국 ICT 40년 역사는 눈부셨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 길 맨 앞에 서서 편견과 외압에 맞서고, 각서까지 썼던 개척자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소환하는 것처럼, 뒷세대들이 지금의 누군가를 개척자로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2년 즈음 정부와 재계·학계가 규제를 깨고 기득권과 싸우며 혁신의 새로운 길을 텄다”고 훗날 평가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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