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대통령의 휴가…"내가 한가하게 쉬어도 되겠나"

입력 2022-07-30 07:23   수정 2022-08-01 18:05

“하루 한 번 웃고 휴가를 절대 뺏기지 않는 것.”

16년간 독일과 유럽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기에 휴가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극한 직업으로 꼽히는 대통령에게 휴가는 격무에서 벗어나 심신을 가다듬는 재충전의 기회다. 새로운 국정을 구상하거나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 “일할 때 열심히 하고 휴가 땐 푹 쉬자는 생각”이라는 윤석열 대통령도 다음 주 취임 이후 첫 휴가를 떠난다. 역대 대통령들도 통상 ‘7말8초’에 휴가를 떠났다.

‘한번 뿐인 여름휴가인데 하필…’
‘휴가 징크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대 대통령은 휴가복이 없는 편이었다. 공교롭게도 때마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져 휴가를 취소하거나 관저에서 지내는 어정쩡한 휴가를 보냈다. 국정 상황과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1993년 여름휴가 직후 금융실명제법을 발표하면서 ‘청남대 구상’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7월 청남대로 휴가를 떠났다가 경기도 파주·연천의 집중호우로 하루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IMF 충격으로, 임기 말엔 세 아들의 비리 연루로 휴가를 반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정국,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 2007년 한국인 피랍사건으로 임기 5년간 세 차례나 ‘관저 휴가’를 보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부터 순탄치 않았다. 휴가 출발 하루 전날인 2017년 7월 28일 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연기됐다. 이후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2020년 50일 이상 내린 폭우로,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정 보류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가 일정을 잡는데 골머리를 앓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여름휴가를 앞두고 참모진에게 “국민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내가 한가하게 휴가를 가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청와대를 지킨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남아있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라는 글을 올렸다.
전용 별장 개방…갈 곳 없어진 대통령
대체로 장기간 휴가를 즐기는 외국 정상들은 자국 내 호화 리조트에 머물거나, 주변국의 휴양지를 즐겨 찾는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과 군 시설 등 한정된 장소를 이용했다.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 1954년에 신축돼 1960년 하야 전까지 애용했다. 여전히 해군 시설이지만 1990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뒤 2008년 8월 일반에 개방됐다.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경남 거제 저도(猪島)에는 ‘청해대(靑海臺)’가 있다.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해송과 동백이 자생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1972년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됐다. 박 전 대통령은 화강암으로 지은 별장 건물을 보고 “너무 호화롭게 지었다”며 경호실을 나무랐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취임 첫해 이 해변에서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을 남겼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과 군사시설을 제외하고 개방했다.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가 담긴 ‘청남대(靑南臺)’도 있다.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1983년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영춘재(迎春齋)’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3년 뒤 바뀌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여름휴가, 명절 등 가장 많이 찾은 곳이다.

대통령 별장이 사라지면서 대통령의 휴양지는 경호가 쉬운 군 휴양시설로 대체됐다. 외교·안보 관련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경남 진해 해군 휴양소, 대전의 군 시설 계룡스파텔 등이 있다.

레포츠·독서·휴식성격따라 각양각색
저도를 자주 찾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외부인 출입이 차단된 해변에서 윗옷을 벗은 채 경호원들과 함께 배구를 하거나 가족들과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추억 때문인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첫 여름휴가를 저도에서 보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모래 위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쓰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됐었다.

축구 마니아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남대에서 가족·경호실 직원들과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80타 골프 실력을 자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일 2㎞ 정도 되는 조깅 코스를 뛰며 건강을 챙겼다. 다리가 불편했던 김 전 대통령은 독서와 산책, 서예를 즐겼고, 테니스를 좋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휴가지에서도 라켓을 놓지 않았다.


유난히 휴가 복이 없던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관저나 휴가지에서 독서를 했다. 소문난 다독가인 두 대통령은 휴가 때마다 추천 도서를 소개했는데, 국정철학과 정치적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해 ‘독서 정치’라 불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50년간의 현대 한국 정치를 소재로 다룬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BM을 회생시킨 미국 기업인 루이스 거스너의 경험담을 담은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등을, 문 전 대통령은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진이 집필한 ‘명견만리(明見萬理)’ 소설가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 등을 권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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