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안정제 먹이고 내기 골프로 6000만원 따낸 사기 일당 체포

입력 2022-07-28 18:22   수정 2022-07-28 18:23


오랜 친구에게 약을 탄 커피를 먹인 뒤 내기 골프를 하는 방식으로 수천만원을 갈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28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충청지역 조직폭력배인 A(52)씨는 친구인 피해자 B(52)씨에게 "조만간 지인들과 내기 골프를 치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여러 차례 라운드를 통해 A씨와 지인들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B씨는 A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지만 이 모든 것은 A씨의 계략이었다.

단순한 내기가 아니라 A씨는 범행에 가담할 내기 골프를 할 때 돈을 따는 역할인 이른바 '선수'와 약물을 커피 등에 타주는 '약사', 금전 대여 '꽁지' 등을 역할을 미리 분담하고서 B씨를 끌어들인 것.

범행 당일이던 지난 4월 8일 A씨는 일당들과 함께 전북의 한 골프장 내 음식점에서 미리 준비한 마약성 신경안정제를 커피에 몰래 탄 뒤 B씨에게 건넸다. 라운드 시작 전 퍼팅 연습을 하고 있던 터라 해당 사실을 몰랐던 B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커피를 마셨고, 곧바로 내기 골프에 돌입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신 B씨는 첫 티샷부터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느꼈다.

이에 A씨에게 "내기는 다음 번으로 미루자. 골프를 그만 치겠다"고 말했다가 "판을 이렇게 키웠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만 두느냐"는 말에 내기 골프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 일당은 B씨에게 얼음물과 진정제 등을 먹이며 골프를 끝까지 치도록 종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약에 취한 그는 신체 기능과 판단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샷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B씨는 전반홀(9홀)에서만 48타를 기록, 총 104타를 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한 타당 비용은 최소 30만~최대 100만원에 달했으며, B씨는 한 홀에서 최대 700만원까지 돈을 잃었다.

당시 B씨는 3000만원을 들고 내기 골프에 참여했다가 모든 돈을 잃고 A씨에게 2500만원까지 빌리는 등 범행 당일에만 5500만원을 잃었다.

범행 다음 날에도 몸이 좋지 않았던 B씨는 인근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받았음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듣자 전날 마신 커피 때문이라고 의심해 경찰을 찾아갔다.

B씨는 "내기 골프로 돈을 잃었는데 아무래도 '꾼'들에게 당한 것 같다"고 경찰에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경찰에서 "새벽 티업이라 커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첫 티샷부터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고, 3홀 이후부터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B씨의 진술을 토대로 골프장에 방문해 증거 확보에 나섰고, 음식점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A씨 등이 커피에 무언가를 넣는 장면을 찾았다.

조사 결과 A씨는 지인이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입수해 미리 가루로 만들어 물에 희석한 뒤 범행에 사용했다.

경찰은 검거 현장에서 의약품 150정과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기 2개를 확보했으며 이들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통해 범행을 공모한 정황을 확인했다.

그러나 A씨 등은 모두 "커피에 약물을 탄 사실이 없고, 설탕을 타준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사기 및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범행에 가담한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심남진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장은 "피해자는 평소 80대 중반 정도의 타수를 쳤던 것으로 보인다"며 "약을 먹으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보니 피해자도 4홀까지는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판돈이 늘어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통상의 내기 골프를 넘어서는 고액의 내기 골프는 도박죄에 해당할 수 있어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며 골프 경기 중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경찰에 피해를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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