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들어봤는데"…우영우 귓가에 맴돌던 음악의 정체 [김수현의 THE클래식]

입력 2022-07-30 07:00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천재적 두뇌를 지닌 신입 변호사가 로펌에서 개별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화를 담아낸 16부작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7일 방영된 드라마 우영우 9화 전국 시청률은 1화(0.95%) 대비 15배 급등한 15.8%를 기록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선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CNN비즈니스에서는 '우영우 신드롬'을 직접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우영우가 해외에서까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드라마 우영우에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분명하고도 명확한 이유 하나를 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극적인 소재, 기괴한 설정, 글로벌 팬을 보유한 배우의 출연 등 그간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 위해 콘텐츠 내 필요조건이라 여겨져 온 요소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영우 콘텐츠만이 지닌 독자성은 있습니다. 신파적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도 한 회 한 회 응축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나 자신과 사회 속 다양한 현상들을 되짚어보도록 하는 힘이 내재돼 있단 것입니다.

평소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최수연이었을지, 권모술수란 별명이 찰떡같은 권민우였을지 고민하도록 말이죠. 무의식 중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 감정이 있었으나 우영우라는 인간과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잘못됐음을 깨닫는 선임 변호사 정명석에 가까운 인물도 꽤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소소한 일화와 주인공 본연의 순수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작품 '우영우' 속 클래식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요.

주인공이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찾아간 소덕동 팽나무 밑에서 감상한 슈만의 클래식 작품부터 자동 회전문 앞에서 3박자의 리듬으로 춤추듯 움직일 때 떠올릴 만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까지. 오늘은 무엇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 속 여유가 없는 일상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특별한 작품 '우영우' 속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팽나무 아래 연주가 슈만의 작품?"…우영우의 순수함 그대로 투영
먼저 드라마 속 주인공 우영우(박은빈)가 재판 준비를 위해 방문한 소덕동에서 팽나무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공동체의 가치를 체감하는 순간 등장한 클래식 작품부터 살펴보죠. 마을에서 소덕동 유진박으로 통하는 한 공무원이 연주한 이 곡은 바로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 정경 中 제7곡 트로이메라이(몽상)'입니다. 13곡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정경은 슈만이 평생의 연인 클라라를 보며 느낀 깊은 행복을 바탕으로 작곡된 작품입니다. 클라라가 보냈던 연애편지 중 '나는 당신에게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때가 많은 것 같다'는 문장에서 영감을 받은 슈만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악곡으로 유명하죠.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된 20대 청년 슈만이 클라라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가장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트로이메라이는 가장 유명한 악곡으로 많은 연주가에게 무한한 애정을 받는 작품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트로이메라이를 첫 피아노 독주 음반 주요 작품으로 담으며 악곡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60여년 만에 연 고국 무대에서 연주한 트로이메라이 또한 현재까지 줄곧 회고되는 명연으로 남아있죠. 뛰어난 작품성 탓에 바이올린, 첼로 독주곡으로 편곡돼 연주되기도 합니다.

고난도의 기교를 뜻하는 비르투오시티를 완전히 배제하고 슈만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상상력과 서정적인 분위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연주가들에게 애증의 작품으로 통합니다. 독창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탓에 대가들이라도 혹평을 받을 수 있는 난곡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장 순수했을 때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모습과 모든 것이 변해가는 순간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지키는 팽나무가 마주하는 자리에서 연주되는 트로이메라이. 어른으로 성장해버린 우리가 놓쳤던 소중한 기억과 가치를 다시금 떠오르도록 아주 잔잔히 연주되던 팽나무 앞 장면을 생각하며 잠시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작품은 피아노 연주자의 오른손이 아주 작은 소리의 4분음표를 내려치면 왼손이 따스하면서도 풍부한 화음으로 선율을 감싸면서 시작됩니다. 이내 무언가를 질문하는 듯 상행하는 선율이 이어지면서 찬란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후 비슷한 음형의 선율이 다시금 등장하는데 이때는 음정이 A(라)까지 오르면서 약간은 서글픈 감정이 섞인 듯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성이 장조에서 단조로 변화하면서 약간은 무겁고 어두운 선율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한 번 더 등장하는 상행 선율이 B♭(시♭)까지 도달하면서 아주 맑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여기서 잠깐의 정적이 흐르면 다시금 처음으로 등장한 주선율이 이어지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고음에 이른 선율이 충분한 리타르단도를 느낀 뒤 쌓아왔던 모든 기억을 삼키듯 점진적으로 하행하면 이내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쿵짝짝" 회전문에서의 3박자 춤곡…우영우에게 딱 맞는 왈츠는?
트로이메라이가 드라마 속에서 직접 연주된 클래식 작품이라면 하나의 장르로서 등장한 클래식 형식도 있습니다. "쿵짝짝." 바로 주인공이 로펌 내 자동 회전문을 지나가기 위해 추던 3박자 춤곡 왈츠가 그 주인공입니다. 왈츠는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춤곡 또는 음악에 맞춰 남녀가 한 쌍이 되어 원을 그리며 추는 춤 자체를 의미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특정 작품이 등장하진 않았으나, 왈츠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림으로써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 장르로 승격하도록 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리게 되는 그림이 4분의 3박자 음악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된 데에 '왈츠의 황제' 슈트라우스 2세의 공헌이 상당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황제' 등 세기의 명곡을 탄생시킨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작품 중 '봄의 소리'는 특히 아이같이 순수하고도 밝은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듯 맑고 청아한 분위기를 담아낸 악곡입니다. 1883년 작곡된 봄의 소리는 부다페스트에 있었던 슈트라우스가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초대된 만찬회에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왈츠로도 유명하죠.

이전까지 왈츠 대다수가 춤을 보조하기 위한 음악에 그친 것과 달리,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연주곡으로 작곡되면서 독자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도 봄의 소리의 독특한 이력으로 꼽힙니다. 그 덕분에 '봄의 소리'는 다른 왈츠와는 달리 작품 속 가사가 남아있죠. "종달새는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훈풍의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숨결은 초원에 입 맞추며 봄을 깨우네." 초반에 등장하는 가사 한 줄만 들어봐도 봄을 맞이하는 따스한 분위기가 온전히 담겨있단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봄의 소리' 왈츠 단 하나만 기억해도 작품 주인공 우영우가 회전문 앞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3박자의 춤을 출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는 이전과 다를 것입니다.

작품은 서주가 없이 바로 유명 도입부로 시작됩니다. 아주 거대한 궁전에서 연주되는 듯 관악기와 현악기 전체의 웅장한 화성으로 시작되는 작품은 도입부에 이어 바로 3박자의 리듬이 강조된 왈츠 선율로 이어집니다. 그 위로 경쾌하게 춤을 추듯 상행하는 선율이 쌓이면 8분음표가 4분음표 첫 박에 붙는 형태로 하행하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박자에 맞춰 흔드는 모습을 형상화합니다. 이를 반복하며 고음으로 선율을 이끌던 오케스트라가 아주 작은 소리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면 스타카토 기법의 연주가 등장하면서 서정적인 선율이 이어집니다. 그러면 플룻과 클라리넷에서 하늘로 떠오르듯 가볍게 고음으로 상행하는 선율을 선사하면서 전체 작품의 분위기를 한단계 더 맑게 변화시킵니다.

이후 관악기와 현악기가 반음계로 올라가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드리우면 하프의 아르페지오 연주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덧입혀지는데 이때 물결 치듯 2개의 음이 빠르게 반복되는 트릴 기법이 사용되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숲속의 새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합니다. 이내 3박자를 강조하는 포르테 연주가 지나가면 8분음표의 아주 짧은 트릴 기법이 연속으로 등장하면서 가볍고 청명한 분위기를 형상화합니다. 이후 현악기가 서정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순간에는 관악기가 첫 박에 트릴 연주를 이어가면서 처연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이후엔 스타카토 기법이 더해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드리웁니다.

이내 큰 소리의 포르테 연주와 트릴 기법이 등장하면, 마무리 악구인 코다가 짧게 나타나고 처음 마주했던 주선율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때 초반과는 달리 현악기와 관악기가 선율의 하행과 상행을 반복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이때 관악기의 트릴 기법과 현악기의 피치카토 기법이 적용되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합니다. 이내 오케스트라 내 악기들이 상행과 하행을 서로 주고받으며 트릴 기법을 길게 연주하면 주선율이 아주 빠르게 연주되면서 기쁨과 환희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이때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화성과 페르마타 기법이 더해지면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현되면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막을 내립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소재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아주 특별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드라마 '우영우'. 일각에서는 주인공이 천재적인 인물로 설정된 탓에 현실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판타지 작품에 불과하단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도 작품이 가진 의미가 결코 작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영우라는 인물을 통해 왜 그들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왜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 어려운지, 왜 남의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고도 사소한 날갯짓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서툰 첫 발걸음이 향후 사회를 움직이는 나비 효과를 일으키길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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