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폭염에 확 늘어난 빨랫감, 스마트 공장서 해결하죠" [긱스]

입력 2022-08-16 13:40   수정 2022-08-17 09:00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폭염과 장마가 겹친 요즘은 세탁 공장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동네 세탁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세탁 서비스를 하는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 워시스왓(세탁특공대)과 같은 업체들도 분주합니다. 런드리고는 최근 생활 빨래 주문이 평소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불, 운동화 등의 세탁 주문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국내 모바일 세탁 앱 시장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더욱 커졌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세탁 시장을 혁신하고 있는 조성우 런드리고 대표를 만나 창업 뒷얘기와 세탁 서비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습니다.

조 대표가 세탁 서비스에 뛰어든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푹 쉬자'는 생각으로 떠났던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이었다. 그는 당시 친구와 렌터카를 타고 여행 중이었다. 그런데 주차를 해둔 사이 도둑이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쳐 가는 일이 발생했다. 유일하게 도둑이 가져가지 않은 게 있었다. 가방에 담아놨던 '빨랫감'이었다. 조 대표는 “도둑도 안 가져가는 거라면 세탁물을 집 앞에 놔둬도 되겠다, '새벽배송'처럼 서비스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세탁 스타트업'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건이다.

이후 조 대표는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사회의 ‘세탁왕’ 같은 분을 만나 현지 세탁 공장을 둘러봤다. 기계로 셔츠, 바지 등을 다림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탁은 기계화·자동화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조 대표는 국내 새벽배송의 효시 격인 배민프레시(옛 덤앤더머스) 창업자이기도 하다. 덤앤더머스를 2011년 세운 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에 2015년 매각했다. 그는 당시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창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웠던 적도 있었고, 대인 관계가 나빠진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 중에 우연히 발견한 '세탁 시장에서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해서 2019년 3월 탄생한 모바일 세탁 앱 서비스가 런드리고다. 회사명은 '의식주컴퍼니'다. 세탁이 혁신되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주거 공간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년이 지난 지금 의식주컴퍼니는 국내 모바일 세탁 서비스를 주도하는 회사가 됐다. MZ(밀레니얼+Z) 세대를 중심으로 세탁기, 건조기를 사는 대신 모바일 세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비좁은 집을 더욱 여유롭게 쓰면서 주거 공간의 변화가 일고 있는 셈이다.
"세탁기, 건조기 집에서 사라져갈 것"
조 대표는 "요즘 일감이 너무 몰려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갈수록 모바일 세탁 서비스의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량이 너무 많이 늘어나니까 주문을 제한할 정도입니다."

런드리고는 최근 하루 3500~4000가구의 주문을 받고 있다. 이용자 수, 매출 등 대부분의 지표가 전년 대비 3배 이상이다. 모바일 세탁 서비스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조 대표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하나 꺼내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LG그룹 전사 임원들이 매달 조찬 모임을 하는데 올해 첫 강연자로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이걸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요. 이 사진을 보세요. 1인 가구가 이사하는 모습(위 왼쪽 사진)입니다. 저희 '런드렛'(세탁물을 담아 내놓는 일종의 옷장, 사진 속 하얀 옷장)을 들고 가죠. 일반적으로는 세탁기, TV 등이 실려 가야 하는데 여기 보면 런드렛만 싣고 갑니다. 최소한 이 고객 한 명은 (세탁기 제조회사로부터) 빼앗아 왔다는 것이죠."

조 대표는 대학 시절 자취를 하면서 얻은 경험도 있다고 했다. "대학 때 옥탑방 4~5평 정도 되는 곳에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여름 되면 방에 다 빨래였고요. 생각보다 빨래, 건조대, 세탁기 등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죠. 요즘 강남 셰어하우스나 오피스텔에 보면 저희 런드렛이 많이 보입니다. 저희 집도 세탁기가 있긴 하지만 안 쓴 지 3년 됐어요. 저희 부모님도 런드리고만 쓰고 있고요."
급성장하는 모바일 세탁 앱 시장
조 대표는 모바일 세탁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확신했다. "제가 배민프레시 할 때, 그러니까 5~6년 전만 해도 모바일로 신선식품 배달하는 시장이 0.1%도 안 됐는데 지금은 10조원 시장이 됐습니다. 모바일 세탁 시장도 현재는 전체 세탁 시장의 4%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2028년에는 20~25%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런드리고가 최근 경기 군포에 축구장 2개 크기(1만1900㎡)의 제3공장을 연 것도 밀려드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다. 조 대표는 "군포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일반 소비자 대상 세탁 공장"이라며 "최대 하루 1만 가구 정도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이클리닝 기준으로 최대 6만~7만 벌, 물빨래는 최대 15만L가량(셔츠 기준 20만 벌) 할 수 있는 규모다. 군포 공장 설립에 들어간 1차 투자액은 300억원가량이며 설비 확충에 추가로 100억원을 쓸 예정이다.

조 대표는 세탁 서비스를 1~3세대로 구분했다. 기존 동네 세탁소가 1세대다. 갈수록 업소 수는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동네 세탁소 역시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2세대 세탁은 '크린토피아'와 같은 기업형 세탁 서비스다. '본사-지사(공장)-점포(대리점)-고객'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공장 하나당 20~30개 점포와 거래한다. 점포 매출에서 공장과 본사가 가져가는 비용을 제외하고 수익으로 남는 구조다.

3세대 세탁은 런드리고와 세탁특공대 같은 모바일 세탁 서비스다. 세탁물을 집 앞에 내놓으면 밤중에 수거해 간 뒤 세탁을 마치고 24~48시간 안에 집 앞에 갖다준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공장)로 효율성을 대폭 높인 게 특징이다.
"의류 데이터 확보가 핵심"
조 대표는 세탁 서비스 시장도 결국 '데이터 싸움'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내 소비자들의 의류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회사는 루이비통이 아니라 런드리고"라고 강조했다.

"패션업체들은 자신들이 판매한 의상에 대한 데이터는 있을지 몰라도 옷장에 있는 것은 모르겠죠. 세탁으로 나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옷을 입고 있고,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런드리고는 이걸 데이터화하기 시작했죠. 의류 케어라벨에 있는 정보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옷 사이즈는 어떻고, 언제 만들어졌고, 가격은 얼마고, 현재 밸류는 어느 정도인지 등등 이런 정보를 쌓고 있습니다."

런드리고는 앞으로 '의류 중고 거래' 시장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하루에 2만 벌 정도의 데이터를 쌓는다고 생각하면 1년이면 700만 벌이 됩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의류 데이터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이죠. 요즘 AI 회사들이 저희에게 데이터 좀 주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세탁 방법, 케어라벨 같은 건 전 세계 공통 언어이거든요. 앞으로 자동화, 기계화가 더욱 이뤄질 것입니다. 저희는 빨래 개는 '폴딩 기계'도 개발 중이죠."

<런드리고의 인공지능(AI) 기반 의류 스캐너 영상>

런드리고는 자체 브랜드(PB) 상품 ‘라이프고즈온’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라이프고즈온은 호텔 수준의 어메니티(객실용품)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브랜드다. 샴푸, 린스, 보디워시, 로션, 치약, 칫솔 등 일상에서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을 판매한다. 수건, 침구류, 티셔츠, 속옷, 양말 등도 구매할 수 있다. 전체 런드리고 서비스 고객의 3% 정도가 라이프고즈온 제품을 쓰고 있고, 비율은 계속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B2B(기업간거래)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스토랑, 미용실, 헬스장 등 유니폼을 입는 회사들도 세탁 수요가 많죠. 중소형 사업장들의 세탁 서비스도 일반 소비자 세탁 서비스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런드리고 비즈니스' 서비스인 것이죠."

런드리고는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미국 세탁공장업체 에이플러스머시너리를 인수한 데 이어 올 초에는 아워홈이 운영하는 세탁공장 사업 크린누리를 사들였다. 최근에는 무인 세탁소 업체 펭귄하우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호텔 세탁업 하는 곳들이 코로나19 시기에 매우 힘들어졌죠. 저희가 관련 사업에 뛰어들 적기라고 생각해서 업체들을 인수했습니다. 또 오프라인 세탁소는 결국 무인화돼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펭귄하우스를 사들였고요."

조 대표는 글로벌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이 서비스를 만들 때부터 세계 시장을 생각했습니다. 식품과 달리 세탁은 전 세계 사람들이 원하는 게 거의 비슷하거든요. 국내에서만 싸울 게 아니라 세계화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국 세탁공장 업체를 인수한 것도 이런 이유죠. 내년 상반기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미국 뉴욕 등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런드리고는 세탁시장에서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 첫 주자”라며 “기술력을 앞세워 무인 세탁에 적합한 일본과 세탁 선진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했다.

런드리고는 올해 매출이 450억원가량으로 늘어 작년의 3배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누적 투자 유치액은 735억원가량이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알토스벤처스, 디에스자산운용, 삼성벤처투자,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투자했다. 최근 7000억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추가 투자 유치도 추진 중이다.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걸림돌이다.

기업공개(IPO) 계획도 있는지 조 대표에게 물었다. "저희 사업 성장의 결과물이 상장일 것입니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죠. 상장만 목표로 하고 싶지는 않고요. 제가 생각하는 회사 구조들이 다 만들어지면 그 결과물이 상장 같은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런드리고가 고객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가지 더

홍보맨 출신의 '연쇄 창업가'

조성우 의식주컴퍼니(런드리고) 대표는 대기업 홍보실 출신이다. 300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2007년 현대중공업에 합격해 수년간 홍보실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에 2011년 퇴사했다. 당시 티몬, 위메프, 쿠팡 등 소셜커머스가 뜨는 것을 보면서 비슷한 도전에 나섰다. 상품, 서비스를 구매하면 동시에 모바일 앱 등을 통해 1+1, 50%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담은 '무료 바우처북'을 덤으로 줬다. 이를 본인이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선물할 수도 있었다. 회사 이름이 ‘덤앤더머스’였던 이유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다. 수익이 나지 않아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후 ‘대동회식도’라는 이름의 회식 장소 추천 서비스를 내놨다. 이용자가 예산과 인원수, 지역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식당을 추천받고 예약까지 가능하게 한 서비스였다. 그러다 ‘구독’ 서비스로 다시 방향 전환을 했다. 정기적으로 상품을 배송해 주는 사업을 고민하다가 신선식품에 집중했다. 이용자들이 직장에 가기 전 배송을 해주면서 국내 새벽배송의 시초 같은 서비스가 됐다.

배송 서비스가 어느 정도 안착하면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과 인연도 맺는다. 배달의민족이 식품 직배송 서비스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가 직접 덤앤더머스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조 대표는 2015년 회사를 우아한형제들에 매각한다. 인수 뒤 서비스명은 ‘배민프레시’로 바뀌었다. 조 대표는 회사 매각 후에도 2년여가량 배민프레시 대표로 있다가 2017년 퇴사했다. 이후 재창업에 나서 2019년 의식주컴퍼니를 세웠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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