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강국' 독일 방산의 위기…동유럽의 'K방산' Pick 계속될까

입력 2022-08-03 14:41   수정 2022-09-01 00:02


"독일 전역에 탄약 비축분이 부족해서 전쟁이 나면 8일만에 끝장날 겁니다."

최근 폴란드가 한국 무기를 대량 수입하기로 결정한 뒤 독일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독일 정부가 폴란드에 약속한 무기 이전 계획을 어겼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다. 독일 정부는 지난 4월 "폴란드 정부가 러시아에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에 우리 대신 전차를 지원해주면 폴란드의 전력 공백을 독일산 전차로 채우겠다"고 공언했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폴란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주요 동맹국의 신임을 잃었다는 위기 의식 이면엔 수년 간 방치되다시피 한 독일 방위산업에 대한 자조론도 있다. 탄약 부족, 장비 노후화 등 독일 국방력 자체가 문제인데, 동맹국을 지원할 여력이 있겠느냐는 우려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3월 국방비 예산을 1000억유로(약 133조원) 늘려 방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키지 못할 약속…"독일 정부의 사기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2일(현지시간) 폴란드가 최근 구매를 결정한 한국산 FA-50 경공격기, K2 전차, K9 자주포의 면면을 집중 보도했다. 도이치벨레는 "한국산 무기가 세계 최강 수준은 아니지만, 가격경쟁력이 있고 품질도 좋다"고 소개했다.

독일 공영방송이 K방산을 보도한 것은 최근 독일 내 뼈아픈 실상을 반영한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기로 돌아선 것은 독일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최근 "독일이 약속과 달리 레오파드-2A4 전차를 20대만 제공했다"며 "심지어 그조차도 수리하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사용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가 24대 추가 공급을 요청했지만, 양측 간 협상은 결국 무산됐다.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실은 독일 연방정부가 나눠줄 전차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폴란드 외무차관은 "독일의 약속은 사기로 판명났다"고 비난했다.

문제는 폴란드뿐만이 아니다. 독일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현지 매체 FAZ에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과의 대체 전차 수송 계획도 약속한지 3개월여가 지났지만 아직 합의조차 안 이뤄졌다"고 토로했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에도 "우크라이나에 장갑차를 제공해주면 독일제 APC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지키지 못했다.

일각에선 사회민주당(SPD)-자유민주당(FDP)-녹색당 등 3개 당이 참여한 연립 정부라는 특성상 의사결정 과정에서 잡음이 많아 발생한 문제라는 비판을 내놓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독일 방산업의 위기에 대한 지적도 많다. '세계 최강 전차군단'을 자랑하던 독일이 최근 30여년간 외면 속에 뒤처진 바람에 동맹국을 지원할 물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스스로를 방어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독일은 그동안 방산 지출에 인색하다는 대외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를 향해 "방위비 좀 내라"고 신경전을 벌인 일화가 대표적이다. 메르켈 총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조차 2016년 독일을 겨냥해 "미국의 안전보장망을 악용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방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여왔다.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1%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지출하는 데 그쳤다. 과거 나치 전범국가였다는 원죄 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2011년엔 의무병역제를 폐지해 30년 사이(1990~2019년) 병력의 60%가 줄어들었다.

독일 싱크탱크 If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과 2014년 사이에 인플레이션에 맞춰 조정된 국방비는 34% 감소했다. 각종 군사 장비들은 창고에 방치되거나 폐기 또는 처분됐다. 그 결과 독일군 전차는 지난 30년간 6779대에서 806대로, 전투기와 헬기는 1337대에서 345대로 대폭 줄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 독일 정부와 의회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만큼 준비가 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알폰스 마이스 독일 육군총사령관이 당시 "독일 연방군은 파산상태(broke)"라고 말할 정도였다. 크리스틴 람브레트 독일 국방장관은 4월 의회 연설에서 "푸마 보병전투차량 350대 중 150대만이 당장 작전에 투입 가능하고, 타이거 공격헬기 51대 중 9대만이 비행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힌 것도 독일 방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000억유로 투자갖고 안돼"
독일 의회 국방위원회에 제출된 최근 보고서에는 "리투아니아 동맹군이 '독일군의 무선장비 시스템이 뒤처졌다'고 놀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보고서는 "국제 연합 군사훈련에서 쓰일 장비 측면에서 보면 독일 연방군은 '동맹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전락했다"고 적기도 했다. 독일 대표 방산업체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퍼가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고 자조했다.

숄츠 정부의 1000억유로 투자 발표가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의 헤더 콘리 회장은 "1000억유로는 NATO의 동쪽 측면과 독일의 영토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장기 투자에서 '초기 계약금'에 불과한 규모"라고 말했다. 차제에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국방비 증액 모멘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증액한 국방비의 쓰임새에 대한 논란도 나온다. 국방비 증액 발표 직후 독일 정부는 미국산 최신 전투기 F-35를 35대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방산업계 임원들은 "정부 투자금의 대부분이 독일산 무기의 장기적 우수성을 개발하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며 "결국 미국 등 다른 나라 방산업에만 호재가 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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