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수도 실패…매각이 최선" 알짜 계열사 내놓는 일진그룹

입력 2022-08-04 17:20   수정 2022-08-05 01:13

“인공호흡기마저 떼기로 마음을 굳힌 겁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최근 그룹 계열사 일진디스플레이 매각을 추진하고 나서자 일진그룹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4일 이같이 말했다. 그는 “‘소방수’도 불러보고 증자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매각 외엔 실적 부진에서 탈출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일진그룹은 허진규 회장과 특수관계인, 계열사가 보유 중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일진디스플레이 지분 43.19%의 매각 의사를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에 전했다. 경영권프리미엄을 포함해 1000억원가량이 매각 금액으로 거론되고 있다. 허 회장이 차남에게 물려준 ‘알짜 기업’ 일진머티리얼즈에 이어 일진디스플레이까지 잇따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방수’로 불렸던 이는 삼성SDI 출신인 심임수 전 일진디스플레이 대표다. 허 회장은 2015년 회사를 떠난 심 전 대표를 2019년 다시 대표직에 앉혔다. 그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일진디스플레이를 이끌며 터치스크린패널(TSP)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한 인물이다. 2008년 99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13년 6591억원으로 불었다. 이 공로로 심 전 대표는 그룹 창립 이후 최초로 2014년 ‘부회장’ 직에 올랐다.

그런 그도 2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실적 개선의 기미가 없어서다. 일진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매출 1014억원, 영업손실 3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김기환 대표로 다시 선장을 바꾸고는 올초 급한 불을 끄기 위해 217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수혈했다. 올 4월엔 허 회장과 서울대 금속공학과 동문인 이교진 부회장을 각자 대표로 추가 선임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일진디스플레이가 지난 2일 “최대주주가 지분 매각 등 다양한 전략적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확인한 배경이다.

허 회장은 일찌감치 장남과 차남에게 계열사별로 증여를 끝마쳤다. 일진디스플레이는 허 회장이 대주주로 남아 있는 유일한 회사다. 승계 대신 매각을 택한 것은 일진디스플레이의 성장성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21년 말 기준 일진디스플레이 매출 비중은 LED 사파이어 기판 14%, 터치스크린패널 86%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허 회장은 성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소재·부품·장비에 앞서 투자하고 10~20년 지나 차츰 결실을 거두는 스타일”이라며 “일진디스플레이 사업 구조로는 밝은 미래를 그리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1940년생인 허 회장이 이번 매각을 끝으로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허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도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허 대표가 보유 중인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가 대상이다. 롯데케미칼과 사모펀드 운용사 베인캐피탈 등 4개사를 적격인수후보군(쇼트리스트)으로 선정한 후 실사가 한창이다. 동박사업 특성상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해외 공장을 확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허 대표가 매각을 결정했다는 관측이 많다.

두 회사 매각이 마무리되면 일진그룹 외형은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가총액은 60%, 매출은 20% 이상 현재 대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홀딩스, 일진다이아 등 일진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약 2조3000억원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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