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경영 저술가 사이먼 시넥은 '골든 서클' 이론으로 위대한 리더십을 설명합니다. 이 일을 왜 하는가(why), 어떻게 할 것인가(how), 무엇을 할 것인가(what)를 설명한 원리인데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문제에 대해 What→How→Why 순으로 접근하는데, 세상을 바꾸는 리더들은 Why→How→What 순으로 접근하는 게 차별점이죠.
교육 소통 플랫폼 클라썸을 공동 창업한 이채린, 최유진 대표는 만난 지 1시간 만에 공동 창업을 결정했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바로 Why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첫 만남부터 5년째 클라썸을 키워온 이야기를 긱스(Geeks)가 들어봤습니다.
만난 지 1시간 만에 공동 창업을 결심하고 5년째 스타트업을 이끌어온 두 사람이 있다. 글로벌 에듀테크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클라썸의 이채린, 최유진 공동대표다. 지금까지 싸운 적이 없다는 두 사람은 10년 뒤 모습을 그리는 질문에도 별다른 고민이 없이, ‘그냥 클라썸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해맑게 답했다.
2018년 1월, 두 사람은 KAIST 창업원 선생님의 소개로 만났다. 이 대표는 KAIST 전산학부 2학년에 다니던 중 학생과 교수들이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했다. 스스로 ‘망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은사인 김동준 교수가 이 프로그램을 강의에 도입해 사업성을 검증해줬다. 프로그램을 썼더니 반 학기 만에 학생들의 질문이 300개나 쏟아진 것이다. 이제 수익모델을 만들고 세일즈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KAIST 대학원생이었던 최 대표 역시 수업용 온라인서비스 창업을 준비 중이었다. 이 대표를 앱 제작을 맡아줄 '외주 사장님'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PPT 자료까지 챙겨와 열정적으로 피칭(기업설명)했다.
곰곰이 피칭을 들은 이 대표는 갑자기 “공동창업할 생각 없나요?”라며 물었다. 당혹스러운 제안인데도 최 대표는 흔쾌히 동의했다. 최 대표는 '혹시 창업해서 당장 돈을 버는 게 중요하냐'는 이 대표의 질문이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 창업가에게 복잡한 계산은 필요 없었다.
이 대표는 당시 최 대표의 피칭 실력에 매료됐다고 했다. 하지만 세일즈 역량만 보고 공동창업을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동기 자체가 되게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을 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한 두 사람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가기로 했다.
바보 같은 질문도 괜찮아
두 사람이 그렇게 해결하고 싶어 하는 교육 문제는 무엇이었을까?KAIST에 진학한 이 대표는 전산학부 과 대표로서 ‘카카오톡 채팅방’을 열었다. 동아리 사람들끼리 폐쇄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상황이라 ‘아는 사람’이 없는 학생들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과 톡방이 없었으면 정보를 구할 수 없어 한 학기를 그냥 포기했을 것 같다”는 게시글을 보고 나서, 이 대표는 학습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대표 자신도 대학에 다니면서 자신보다 더 똑똑한 친구들이 많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궁금한 게 있어도 바보 같은 질문일까 봐 손을 들기를 주저했다. 이런 심리적인 장벽을 낮춰주는 게 클라썸이다.
처음엔 익명으로 올라오는 질문이 많았지만, 학기 말로 갈수록 실명 질문이 많아졌다. 학생들끼리 서로 답변을 달아주기도 한다. '저도 궁금해요'란 버튼이 많이 눌리면 '다들 궁금해하는구나' 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대학 입시를 거치면서 경쟁을 극복해야할 것으로 여기지만 경쟁보다 상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라썸 안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서로 돕는 문화가 공기처럼 당연해지길 바래요."
클라썸이 파고든 첫 번째 문제가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라면 다음은 효율화다. 창업 이후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딥러닝을 한 결과 중복 질문에 답변하는 AI 조교 도트(DOT)를 출시했다. 클라썸에서 비슷한 질문과 답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질문이 추가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저희가 창업을 시도했을 때 다들 안될 거라고 했어요. 보수적인 대학에서 수업용 SNS를 도입할 리가 없다고 했죠."
클라썸은 이제 25개국 6000개 이상의 대학과 기업에서 쓰는 플랫폼이 됐다. 서울대와 연세대는 클라썸을 정규 도입했고 KAIST는 지난 4월부터 모든 수업에서 클라썸을 적용 중이다. 최근 한 고려대 경영대 학생회장 당선자는 공약으로 '클라썸 도입'을 제시하기도 했다.
3000개 '콜드메일'로 성사된 미국 출장기
최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동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낯선 이국땅에서 인종차별을 몸소 겪은 그는 교육 상황에서 언어와 문화 장벽을 낮추고 싶다는 목표를 품게 됐다. 클라썸이 초기부터 미국 진출을 진행한 것도 최 대표의 역할이 컸다. 최 대표는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진행한 이매진컵에 아태지역 대표로 선발돼 미국에서 열린 월드 파이널 리스트에 참가했다. 현지 기업 전문가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으면서 미국의 시장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19년 7월 중순 본격적인 미국 시장조사를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 적지 않은 비용을 쓰는 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홈페이지에 하나하나 들어가서 3000개가 넘는 이메일 목록을 만들고 미팅을 요청하는 '콜드 메일'을 보냈다. 그 결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까지 실리콘밸리 지역을 다니며 3주간 40여개 대학, 기업, 벤처캐피털(VC)과 미팅을 할 수 있었다.
하루 평균 3~4개 미팅하고 저녁이면 숙소로 돌아와 미팅 결과를 정리하고 다음 날 미팅을 준비했다. 새벽까지 미팅 때 선물로 나눠줄 양말을 포장하고 한국과 업무 공유를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출장 중 빅베이슨캐피털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 투자 유치까지 이어졌다. 기업용(B2B) 소프트웨어(SaaS) 투자를 많이 해온 VC로 클라썸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즈노 캠퍼스 등 해외 대학과 기업에서도 클라썸을 이용하고 있다.
클라썸 초기 투자자로는 액셀러레이터 크립톤이 있다. 2018년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대상을 받은 클라썸팀의 당시 멘토가 양경준 크립톤 대표였던 게 인연이 됐다. 지난해 펄어비스캐피탈, 스톰벤처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시리즈 A 단계 투자를 받으며 누적투자금 74억원을 달성했다.
정말 싸우지 않는다고?
두 사람은 교육 문제를 풀고자 하는 동기는 닮았지만 스타일은 딴판이다. 예컨대 IR 설명회를 하면 이 대표는 가설을 검증하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하나씩 풀어내는 식이라면, 최 대표는 청중을 향해 "자 눈을 감아보세요"라며 발표를 시작한다. 공동 창업가인 그들에게 '싸우지 않느냐'는 단골 질문이다. 5년째 클라썸을 이끌어 오면서 싸운 적이 없는 이들이다.
클라썸은 이 대표가 개발한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진출의 발판을 닦고 이를 세일즈 한 건 최 대표의 역할이 컸다. "진(최유진 대표를 부르는 호칭)이 없었으면 절대 여기까지 못 왔다"는 이 대표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린(이채린 대표를 부르는 호칭)이 나에게 어떤 피드백을 하든 그건 우리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신뢰가 항상 있어요. 린이 자기 이익을 챙기거나 자신이 좀 더 빛나야지 하는 게 있었다면 절대 같이 못 했을 거예요. "
두 사람은 창업 초기 KAIST 창업빌리지에서 1년 넘게 함께 지냈다. 알고 보니 서로 기숙사 앞집에 사는 이웃이었다. "밤새 사무실에서 같이 작업하다가 새벽에 기숙사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클라썸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이 대표는 "그때 나눴던 얘기들이 지금까지도 클라썸을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배구조는 공동 창업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다. 둘은 회사 설립 전부터 지배구조를 고민했다. 각자 지분을 많이 가져가서 부자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경영권을 제대로 방어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지분 매각을 생각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최 대표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지난해 말엔 각자 대표 체제로 개편했다. 최 대표는 미국 현지 지사 설립과 글로벌 사업 전략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기회
2020년 2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클라썸에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출시한 지 두 달 된 '클라썸 3.0' 유료 버전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당시 정말 많은 교수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코로나가 터졌는데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이 대표는 "우리가 클라썸을 왜 시작했는지 돌아봤고,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게 목표라면 무료로 제공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했다.
클라썸은 초기부터 트래픽 확장 전략이 아닌, 매출 기반 성장 전략을 추구해 유료 서비스를 고수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빠르게 무료 배포를 결정했고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줌(Zoom)과의 연동도 빠르게 진행했다. 학교 예산을 쓰지 못하는 대학에는 당초 3월까지였던 무료 배포 기간을 8월까지 연장해 학업 공백을 메울 수 있게 했다.
이를 계기로 클라썸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착한 스타트업' 상을 받았다. LG 삼성 DB인재개발원 오설록 등 기업 고객사가 늘기 시작했다.
클라썸은 지난해엔 미국 메타버스 서비스 게더타운과도 연동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최 대표는 게더 본사에 직접 연락해 실질적인 소통 증진을 위해 클라썸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클라썸은 이미 25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글로벌 에듀테크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스타트업 정보업체 테크크런치가 주최한 엑스티씨(XTC) 경진대회에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선발된 106개 스타트업 가운데 클라썸은 교육과 유니세프 특별분야 파이널 리스트에 올랐다.
대학을 넘어 기업 HRD 시장으로
클라썸은 교육 소통 플랫폼으로 불리지만 에듀테크로 한정 짓지 않는다. 이 대표는 클라썸의 존재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Unleash the Full Potential) 플랫폼"이라고 정의했다. '성장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설명이다.실제 평생교육원의 한 '약초 수업'에서 클라썸을 사용하는 50, 60대도 있다. 네이버 밴드를 써봤던 세대라서 클라썸으로 소통하는 게 익숙하다.
최 대표는 기업용 협업 도구인 '슬랙'처럼 클라썸은 교육용 협업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 교육을 위한 툴이었다면 코로나가 끝나가는 올해 초에 연세대가 클라썸을 도입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언제 어디서든 교육이 행해지는 모든 공간에서 클라썸이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객사들은 클라썸의 소통 서비스, AI 서비스, 학습관리시스템(LMS)을 골라서 유료로 사용할 수 있다. 클라썸에는 단순한 출결이나 성적 데이터가 아니라 행동과 언어 데이터가 남기 때문에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고객사들이 많다. 클라썸은 고객사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고객 성공 팀을 운영하고 있다.
클라썸은 이미 대학을 넘어 기업용 인적자원개발(HRD) 시장으로 넘어왔다. 2년 전부터 클라썸 매출의 절반 이상을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기업용 강의와 영상 콘텐츠를 클라썸 안에 올려서 볼 수 있다.
클라썸의 현재 직원은 52명 정도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있는 사무실엔 120명까지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고객 성공 팀을 비롯해, 글로벌, 데이터, 개발, 디자인, 영업 등 전 분야에서 채용을 진행 중이다.
두 대표는 10년 뒤에도 클라썸이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이 대표는 "유니콘, 데카콘이 되는 것은 수단일 뿐"이라며 "함께 배우며 자기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문화를 전 세계에 퍼트리는 소통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참, 한 가지 더
클라썸의 이채린·최유진 대표는 어떻게 20대 이른 시기에 창업을 결심했을까? 창업가가 되는 DNA는 따로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경우를 보면 창업가를 만드는 것은 환경과 경험의 힘이 크다.
이 대표는 과학고 2학년 이후 KAIST로 진학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일반고 출신이다. 서울 성북구 소재 석관중·고를 다닌 그는 수학이 좋아서 KAIST에 갔지만 고등학교 시절 철학 등 문과 과목도 좋아했다. 방학이면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뮤지컬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가 KAIST 진학을 선택한 이유는 1학년은 학과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무학과'여서다. 입학 후 프로그래밍에 매력을 느낀 그는 2학년 때 전산학과를 선택하고 이듬해 창업에 매진하기 위해 휴학에 들어갔다. KAIST 창업원은 회사와 기숙사로 오가며 24시간을 창업에 몰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이 대표는 클라썸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현재는 자퇴한 상황이다.
학창 시절 이 대표에게 사업은, TV 드라마 속 장면처럼 자칫 잘못하면 집에 노란 딱지가 붙을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KAIST 개발동아리에서 선배들이 창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업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 실패한 선배들도 다시 재기할 기회를 잡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창업에 한걸음 가까이 갔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최 대표는 어린 시절 장난감 선물을 받으면 드라이버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아이였다. 장난감을 갖고 놀기보다는 원리를 파악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세일즈 재능을 발견했다. 당시 기부 행사로 아이들에게 초콜릿 한상자씩을 나눠주고 이를 팔도록 했는데, 모르는 사람 집을 찾아가 초콜릿바 하나를 1달러에 팔면서 '혹시 후원해주시겠어요'라고 물어봐야 했다. 최 대표의 첫 피칭과 세일즈 경험이었다.
최 대표의 인생 키워드는 '선한 영향력'이다. 과학을 좋아했지만,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외교관이 되고자 대전에 있는 외고에 진학했다. 이후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진학해 드론 저널리즘과 빅데이터 저널리즘을 배우면서 코딩을 접했다. 기자를 꿈꿨던 그는 KAIST 대학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 가상현실(VR) 저널리즘과 메타버스 관련 공부를 했다. 외교관도 기자도 아닌 창업가가 된 이유 역시 가장 큰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활동이 창업이라고 생각해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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