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활동에 피해를 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을 제한하는 법안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등이 추진 중인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이 법안대로라면 기업의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는 데다 불법 파업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노조 파업권에 대한 가장 현실적 견제 장치가 파업 시 불법 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규명으로, 통상 명백한 파업 손해 발생 시 사측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이걸 법으로 막으면 불법 파업을 용인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사유재산에 대한 훼손 방지와 손실 보상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데, 노조를 예외로 하면 보편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찮다. 입법 추진론자들은 노조의 파업권 존중 논리를 편다. 파업에 따른 배상책임을 덜어주는 법은 현실 타당한가.
법안의 주요 내용은 합법적 노조 활동 범위의 확대, 법원 결정 손해배상의 기준 제시와 노조 규모에 따른 손해배상 상한액 규정, 노동자 개인과 가족 신원 보증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이다. 법안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 파업 사태 때문이었다. 하청기업 노조의 파업 사태가 51일 만에 봉합됐지만 회사 측은 파업을 벌인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무려 7000억원의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태세다. 회사 측은 이 손실에 대해 소송을 통해서라도 배상받지 않으면 스스로 배임죄에 걸린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판결 여하에 따라 노조 피해가 너무 크다. 이게 법 규정에 따른 현실이라면 결국 다른 법을 제정해서라도 이런 소송을 막아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영세한 하청 노조 등의 노동자들은 무슨 수로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겠나.
노동권이 정당한 권리로 자리잡은 만큼 파업권을 가로막는 장치 격인 소송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게 노동권 보호가 된다. 월 급여가 수백만원 수준인 노동자에게 파업 과정의 불법 여부를 문제 삼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가압류 청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법을 만든 선례가 있다. 영국이 그렇다. 형사 처벌도 쉽게 발동되지 못하도록 제동 걸 필요가 있다.
이 법의 또 다른 문제는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시로 불법을 불사하는 한국의 강성 노조가 그나마 불법 점거 등을 나름 자제하는 것은 기물 파손과 영업 방해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때문이다. 법이 있고, 소송이 가능해도 불법 행위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다만 명백하게 불법 행위를 한 노동자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기에 작업장·영업장 파괴 같은 일이 조금은 자제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판에 노조의 파업에 따른 것에는 손해배상을 아예 못하게 하고 가압류 소송까지 제한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겠나. 법이 불법 행위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돼선 안 된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특히 불법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직간접 손해가 얼마나 막대한가. 파업 피해에 대한 경제단체와 학계의 연구와 조사가 산처럼 쌓여 있다.
해외 사례가 있다지만,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영국 정도뿐이다. 한마디로 국제 기준과 동떨어진 입법 움직임이다. 불법적 쟁의 행위를 기획·지시·지도하거나 손해의 발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사용자의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국회 자체의 법률 검토 보고서도 있다. 전면 철회가 답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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