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800명 다니던 부여 인세초, 지금은 폐교 후 '노인대학'

입력 2022-08-15 17:31   수정 2022-08-16 00:51


“아이 울음소리를 들은 지 30년도 넘었네요. 이제는 빈집만 늘어납니다.”

지난 10일 전남 고흥군 동일면 사동마을에서 만난 김진규 이장(68)은 ‘마을에 아이들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마을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생은 귀촌인 자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990년 436명이 모여 살았던 사동마을 인구는 현재 8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마을 주민 평균 연령은 77세다. 인근 소영마을 주민은 이 기간 649명에서 163명으로 75% 줄었다. 곽성권 소영마을 이장(57)은 “내 손주가 15년 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난 것을 마지막으로 인구 유입이 끊겼다”며 “작년엔 여섯 명, 올해엔 한 명이 돌아가셔서 사람이 줄어드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사동마을과 소영마을이 속한 전남 고흥군은 대표적인 ‘소멸위험 지역’이다. 1990년 13만4294명이었던 고흥군 인구는 올해 7월 조사에서 6만2387명으로 반토막 났다. 고흥군뿐만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28개 기초지자체 중 113곳을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늙어가는 마을…사라질 날만 기다린다
경북 군위군도 그런 사례다. 군위군 삼국유사면 정곡리는 현재 인구가 15명에 불과하다. 군위군 관계자는 “2019년부터 2년간 사망신고는 10여 건을 받았지만 출생신고는 단 1명뿐이었다”며 “11가구에 사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군위군 효령면 성1리에도 현재 70여 가구가 있지만 빈집이 20개 가까이로 늘어났다.

소멸 위기 지역에선 교육과 출산, 건강 등 삶에 필요한 인프라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현상이지만 이 때문에 새로운 인구 유입이 가로막히는 악순환도 우려되고 있다. 충남의 대표적 취약 지역인 부여군은 임신부가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어렵다. 분만실을 갖춘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건복지부의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에 따라 2015년 건양대부여병원에 산부인과가 생겼지만 외래 진료만 가능하다.

복지부의 작년 말 조사를 보면 전국 250개 시·군·구 중 산부인과가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이 어려운 지역이 63개에 이른다. 아이를 낳은 이후도 문제다.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돌보는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지역도 59개나 된다.

고령자들의 건강 관리 역시 문제다. 인근에 종합병원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흥군 소영마을의 곽 이장은 “종합 진료를 받기 위해선 30㎞ 떨어진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며 “60대까지는 자가용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지만 그 연령대 이상의 어르신이 갑자기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교육 인프라도 위기다. 군위군의 한 초등학교는 폐교돼 철공소가 들어와 있다. 부여에서는 마정초가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했다. 학생이 6명인데, 교직원도 6명이다.
“차라리 도시에 합쳐달라”
이들 지역의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군위와 고흥, 부여는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지역소멸위험 등급 중 ‘고위험’을 뜻하는 5등급으로 분류됐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반면 20~39세 가임여성의 수가 적어서다. 이 중 군위군은 5등급을 받은 45개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위군은 아예 주변 대도시인 대구에 편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군위군 관계자는 “오죽하면 소음 피해가 극심한 대구의 K2 군공항을 받으려고 나섰겠느냐”며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도시도 예외 아냐
인구 재앙은 도시지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부산 외곽의 영도구는 지난 10년간(2011~2020년) 인구가 20.9% 감소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 감소율 1위다. 최찬훈 국민의힘 영도구의원에 따르면 이 지역의 빈집은 1124채에 달한다. 영도구 봉래동 주민 김정환 씨(63)는 “국내 1호 조선소(대한조선공사, 현 HJ중공업)가 있어 한때 부흥했지만 지금은 자식 세대 대부분이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전국특별시와 광역시 중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부산 인구 중 2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는 2020년 336만 명이었던 시 인구가 2050년엔 251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시민들 사이에선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도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예컨대 잠실여고는 1990년만 해도 한 학급 학생 수가 60명대 후반이었지만 지금은 25명 안팎이다. 30여 년 전 이 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면 한 학년이 움직이는 데 관광버스 20대가 동원됐지만 지금은 8대면 충분하다. 학생 수 감소는 학교가 늘고 교사당 학생 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측면도 있지만 출생아 수 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든 영향도 크다. 잠실여고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같은 재단의 일신여중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부여=강진규/군위=오경묵/고흥=임동률/부산=민건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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