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기업이 무슨 죄인가

입력 2022-08-21 17:26   수정 2022-08-22 00:21

이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간만에 제대로 된 보고서를 하나 냈다. 제목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 방향’이었다.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제한한 중기 적합업종제도의 10년간 성과를 분석했다. KDI는 그동안 중기 경쟁력 제고에 한계를 보인 만큼 적합업종 신규 지정을 중지하고 현재 지정 업종도 해제 시기를 제시하는 등 점진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 SW 사업도 대기업 제한
정보기술(IT) 서비스 분야에서도 10년째 대기업을 얼씬 못하게 하는 제도가 있다.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이 그것이다. 중견·중기 그들만의 리그다. 그사이 덩치는 커졌지만 기술 경쟁력은 뒷걸음질쳤다. 그러다 2020년 EBS 온라인 수업 접속 장애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예약시스템 먹통 사태 등 사달이 연이어 났다. 비상 상황이 터지자 정부는 결국 대기업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LG CNS, 네이버, 카카오 등이 ‘소방수’로 투입돼 문제를 해결했다.

대기업에 바늘구멍만 한 문을 열어둔 부문도 있다. 국가 안보나 신기술·신사업 관련 공공사업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소관 부처가 ‘오케이’ 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노’ 하면 그만이다. EBS 접속장애 사태를 겪은 교육부는 4세대 지능형 나이스 구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 번 모두 퇴짜를 놨다.

수익성은 낮은데도 대기업이 공공사업에 들어가는 건 해외 수주를 위해 필요한 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라도 들어간다. 수주를 위해서는 ‘상생점수 5점’을 따야 한다. 0.1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공공사업에서 5점 확보는 필수다. 이를 위해 컨소시엄 참여자 절반은 중기를 무조건 끼워 넣어야 한다. 기술력이나 전문성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한다. 참여업체 공동책임제다. 중기가 “나 몰라라” 하면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21세기판 연좌제다. 정부는 대기업에 “알아서 잘 좀 하세요”라고 압박한다. 이런 덤터기를 쓰니 답답할 만도 하다.
10년 정책효과 제대로 따져야
이런 실태에 대해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 SW 사업의 권한과 책임을 발주처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SW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은 1년이 지나도록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시절에는 참여제한제 폐지를 논의했다. 과도한 규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역시 중견·중기 매출이 늘고 수출도 증가했다는 과기정통부의 억지 주장에 좌초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중기 매출이 느는 건 당연하다.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한국과 비슷한 IT 서비스 수준에서 규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와 비교하는 게 맞다. 더구나 수익성은 더 떨어졌다. 전자정부시스템 수출도 공적개발원조(ODA)를 제외하면 오히려 줄고 있다. 단골 1위를 지켜왔던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 순위에서도 2016년 이후 3위로 밀려났다.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을 내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간부문이 도약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경제정책 방향’에서 불합리한 차별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을 꼽았다. 10년 정도 했으면 이제 냉정히 정책효과를 따져볼 시점이다. IT 서비스는 중기 적합업종도 아니고 SI 업체는 빵집도, 두부 가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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