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바늘구멍만 한 문을 열어둔 부문도 있다. 국가 안보나 신기술·신사업 관련 공공사업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소관 부처가 ‘오케이’ 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노’ 하면 그만이다. EBS 접속장애 사태를 겪은 교육부는 4세대 지능형 나이스 구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 번 모두 퇴짜를 놨다.
수익성은 낮은데도 대기업이 공공사업에 들어가는 건 해외 수주를 위해 필요한 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라도 들어간다. 수주를 위해서는 ‘상생점수 5점’을 따야 한다. 0.1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공공사업에서 5점 확보는 필수다. 이를 위해 컨소시엄 참여자 절반은 중기를 무조건 끼워 넣어야 한다. 기술력이나 전문성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한다. 참여업체 공동책임제다. 중기가 “나 몰라라” 하면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21세기판 연좌제다. 정부는 대기업에 “알아서 잘 좀 하세요”라고 압박한다. 이런 덤터기를 쓰니 답답할 만도 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중기 매출이 느는 건 당연하다.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한국과 비슷한 IT 서비스 수준에서 규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와 비교하는 게 맞다. 더구나 수익성은 더 떨어졌다. 전자정부시스템 수출도 공적개발원조(ODA)를 제외하면 오히려 줄고 있다. 단골 1위를 지켜왔던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 순위에서도 2016년 이후 3위로 밀려났다.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을 내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민간부문이 도약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경제정책 방향’에서 불합리한 차별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을 꼽았다. 10년 정도 했으면 이제 냉정히 정책효과를 따져볼 시점이다. IT 서비스는 중기 적합업종도 아니고 SI 업체는 빵집도, 두부 가게도 아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