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지원 하세월…물막이판 내 돈 주고 설치"

입력 2022-08-28 18:23   수정 2022-09-05 16:37


지난 26일 오후 서울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주택과 상가 출입구 곳곳에는 50㎝ 높이의 차수판(물막이판)이 설치돼 있었다. 해당 자치구인 서초구가 2011년 이 동네 전역에 지원해준 수방(水防) 시설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차수판과 배수시설 정비 덕분에 이달 8~9일 서울 곳곳에서 발생한 물난리 속에서도 미미한 피해만 입었다.

전원마을에서 12년째 살고 있다는 신모씨(65)는 “11년 전 마을을 휩쓸고 간 산사태를 잊지 말자는 생각으로 주민들이 대문에 설치된 차수판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은 2011년 7월 집중 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로 주민 8명이 사망하는 등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었다.

전원마을 사례가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면서 이번 폭우로 피해를 본 지역을 중심으로 차수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차수판을 설치해 침수를 막은 주택과 빌딩 사진이 SNS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독주택은 물론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입구에 차수판을 설치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해당 자치구들은 예산 문제를 이유로 대며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수요가 사설 차수판 전문업체로 향하면서 관련 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차수판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막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얇은 판이다. 상가나 주택 입구 양쪽에 차수판을 넣을 수 있는 쇠기둥만 부착하면 손쉽게 설치할 수 있다. 차수판 안쪽에는 고무패킹 처리가 돼 있다. 쇠기둥에 부착된 나사를 꽉 조여주기만 하면 물이 침투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다른 장소에 보관해뒀다가 집중호우나 태풍 등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우려될 때 설치해 활용할 수 있다. 상습침수구역에 있는 반지하 상가나 주택 같은 경우에는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차수판 설치를 원하는 시민 중 상당수는 지방자치단체 지원 대신 민간 차수판 업체를 알아보고 있다. 서울 자치구별로 차수판 설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신청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차수판을 설치하는 데 가구당 100만원가량 예산이 쓰여 주민센터에서 일단 수요를 모아오면 담당 직원이 현장조사를 해 차수판 설치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관련 예산이 다 떨어지면 설치 작업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번 폭우 피해 이후 민간 차수판 업체에는 설치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태풍, 집중호우 등 피해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자체 지원을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서다. 민간 업체들은 반지하나 일반 상가 같은 경우 출장·시공비를 빼면 60만원대로 설치가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차수판 설계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모씨(56)는 “지난 8일부터 차수판 설치 요청이 급증해 직원들과 몇 년 만에 야근까지 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호우 피해 속에서 서울 강남, 서초, 동작구 등 상습침수구역 관리가 소홀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근본적인 피해방지책 마련에 나서기보다 땜질식 대처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체계적으로 차수판 관리를 해온 곳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방재지구와 자연재해 취약지역 1만㎡가 넘는 건물만 차수판 설치 의무”라며 “방재지구는 서울에 없고, 자연재해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도 몇 군데 없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이번에 침수된 강남역, 대치사거리, 도림천은 1990년대부터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된 지역”이라며 “지속가능한 재난 대응책을 마련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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