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가우디·르누아르…명작을 빛낸 '관절염 투혼'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2-08-30 17:47   수정 2022-08-31 00:19

다음달 7일은 김소월 탄생 120주년 기념일이다.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난 소월은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그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정주 오산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3·1운동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서울 배재고로 편입해 졸업한 뒤 일본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관동대지진으로 중도 귀국하고 말았다. 이후 서울에서 실업자로 전전하다 결국 낙향했다. 할아버지 광산 일을 도왔으나 파산했고, 신문사 지국 운영까지 실패했다. 남은 것은 극도의 가난과 절망뿐이었다.
아스피린 못 구해 아편에 의존
심신이 피폐해진 그를 더욱 괴롭힌 건 관절염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통증을 참느라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술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땐 아편을 구해 먹었다. 그러다 193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2세였다.

사인은 뇌일혈로 알려져 있지만, 학계의 유력한 추정은 ‘다량의 아편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소월의 증손녀인 성악가 김상은 씨도 관절염으로 고통이 극심해질 때마다 통증을 잊으려고 아편을 자주 복용했다고 전했다.

당시엔 별다른 진통제가 없었다. 독일에서 아스피린이 개발된 게 1899년이지만, 소월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었다. 아스피린은 바이엘사의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이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위해 만든 합성신약. 1차 대전과 스페인 독감 때 수많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줬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변방의 궁핍한 시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인류 문화사에는 ‘관절염 투혼’으로 명작을 빛낸 예술가가 많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년)도 그랬다. 그는 발 관절염으로 학교에 늦게 입학했다. 형의 등에 업히거나 나귀를 타고 등교했다. 통증을 줄이려고 밑창이 푹신한 신발과 두 겹짜리 양말을 신고 다녔다. 이른바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이었다.

관절염은 죽는 순간까지 그를 괴롭혔다. 몸이 불편한 그가 노면전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볼품없는 신발과 남루한 행색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부랑자로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돕지 않았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그는 혼자 쓸쓸히 죽어갔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같은 천재적인 건축물을 설계했다. 이 성당의 첨탑들은 인체의 뼈를 닮은 듯하다. 의학계에서는 “온종일 관절통에 신경 써야 했던 가우디가 뼈를 형상화한 건축물을 고안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 모른다”고 평가하고 있다.
손가락 마비에 화풍도 달라져
미술계에는 관절염을 딛고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가 수두룩하다.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손이 마비되자 붓을 입에 물거나 손가락 사이에 묶고 그림을 그렸다. 손가락 관절의 활막이 염증으로 두꺼워지고 뼈가 뒤틀렸기 때문이다.


그림 스타일도 바뀌었다. 죽기 1년 전인 1918년에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은 43세 때인 1884년에 그린 같은 제목의 그림과 확연히 다르다. 대상의 형태보다 붉은 색감을 강조하고 붓 터치도 거칠어졌다. 그는 7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대로 된 관절염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의 친구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자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통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얘기였다.


르누아르의 후배이자 친구인 앙리 마티스(1869~1954)는 관절염의 한계를 색종이 오리기로 극복했다. 손가락 관절이 말을 듣지 않자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새 기법을 창안한 것이다. 후기 대표작 ‘이카루스’(1947) 등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관절염 치료제의 혜택을 본 화가는 라울 뒤피(1877~1953)다. 그 역시 손에 붓을 끼워서 그렸는데, 잡지에 난 사진을 본 의사의 권유로 신약 코르티손을 먹고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몇 년 만에 죽고 말았다.

20세기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는 어릴 때부터 관절염이 심해 10인치 미만의 작은 그림만 그렸다. 처음에는 단돈 몇 달러에 그림을 팔았지만 나중엔 닉슨 미국 대통령의 의뢰를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뼈 206개 중 팔다리에만 126개
덴마크가 낳은 최고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도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다. 그의 동화 ‘빨간 구두’에 나오는 소녀가 발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하고 춤을추는 것은 류머티즘 발열로 얻은 무도병 때문이었다.

이들 문인·화가는 뼈아픈 고난을 딛고 빛나는 예술을 남겼다. 소월은 내향적인 성격 탓에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견뎠다. 남몰래 아편을 먹어가며 민족 고유의 정서와 율격을 주옥같은 시로 승화시켰다. 가우디의 위대한 건축물도 뼈가 뒤틀리는 아픔 속에서 탄생했고 르누아르와 마티스, 뒤피의 명화 역시 눈물 젖은 ‘손가락 붓’에서 완성됐다.

우리 몸의 뼈는 모두 206개. 이 가운데 팔다리뼈가 126개로 가장 많다. 심신이 건강할 때는 이들 뼈가 튼실하고 관절도 부드럽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염증이 생기고 연골이 파열되면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아픔’을 겪는다.

인체의 신비는 가장 단단한 뼈와 가장 부드러운 연골, 그 사이를 미끄럽게 감싸주는 활액(滑液)의 조화에 있다. 인생과 예술의 원리도 이와 닮았다. 직선의 뼈와 곡선의 연골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사회, 저마다의 욕망과 좌절 때문에 끝없이 삐걱거리는 관계,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히고 파기되는 다짐과 약속…. 그리고 이 모든 뒤틀림을 매끄러운 점액으로 말없이 감싸주는 활액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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