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담배 좀" 얘기했다가 경찰까지 출동 [오세성의 아빠놀자]

입력 2022-09-03 08:06   수정 2022-09-03 13:08


"아잇 담배 냄새난다! 도망가자!"

퇴근길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아이들이 내지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면서 하는 얘기였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한 아이가 "놀이터에 갔더니 담배 냄새가 나더라구요. 엄마가 담배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놀지 말라고 해서 다른데로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놀라면서도 확인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버젓이 보이는 놀이터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운다니요. 아이들이 마스크없이 야외놀이를 제법하는 요즘같은 때이니 경고를 단단히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 담배냄새는 나고 있었는데 말이죠. 냄새를 따라가니 놀이터 근처 담벼락 너머에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있더군요. 흡연자와 놀이터 사이 거리는 10m 정도였습니다.


퇴근 후 거의 매일 딸아이와 놀이터에 가는 기자 입장에서도 못 본 척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흡연자에게 정중히 놀이터로 냄새가 퍼져 아이들이 놀지 못하니 자리를 옮겨달라 부탁하자 흔쾌히 받아줬습니다. 행여나 말다툼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흡연자도 미쳐 생각을 못했다고 답해줘서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집에 와서 부인에게 칭찬 좀 들어볼까 하고 얘기를 해주니 '큰일날 소리'라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흡연장소를 이동해 달라거나 담배를 꺼 달라고 요청했다가 봉변당한 경우들이 동네에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들이 얘기를 주로 하는데, 요청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협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심지어 욕설을 듣거나 보란듯이 줄담배를 피우기까지 한다고 하네요. "당신이 뭔데 끄라 마라냐", "담배 피울 권리를 지키겠다", "금연 표시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 등의 얘기도 듣는다고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어린이 시설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와 갈등을 겪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놀이터 근처나 학원 차량 승강장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에게 이동하거나 담배를 꺼달라고 부탁했다가 봉변당했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 누리꾼은 "아이를 데리러 학원 차가 서는 승강장에 갔더니 흡연자가 있어 이동을 요청했다"며 "흡연자가 화를 내면서 어느 동에 사는지 확인하겠다고 따라오는 통에 관리사무소로 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누리꾼도 "놀이터 정자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 커플이 있어 금연 구역에선 담배를 꺼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여성 흡연자가 당신이 뭔데 꺼라 마라 하느냐고 소리 지르는 탓에 경비아저씨가 오고 경찰도 출동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담배로 인해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올해 봄부터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민원이 부쩍 늘었다"며 "금연 안내문을 붙이는 것 외엔 대응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주민들의 민원이 심해져 스트레스"라고 말했습니다.

관련 법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건강증진법은 전국 어린이 놀이시설을 금연시설로 지정하고 반경 10m 이내 흡연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나 공원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도 이에 해당합니다. 금연시설이나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하지만 실효성이 부족합니다. 조금 이동해서 11m 거리에서 피우면 소용없습니다. 흡연자와 20~30m 거리에도 냄새가 퍼지는데 10m 거리를 규제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죠. 최근 질병관리청이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와 한 실험에 따르면 흡연 장소와 100m 떨어진 곳에서도 WHO 초미세먼지 기준농도 15㎍/㎥를 초과하는 수준의 유해 물질이 확산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미국 등에선 간접흡연이 태아발육 억제, 영아 돌연사 증후군, 아동 기관지 천식, 중이염을 비롯한 뇌혈관 질환, 암 등을 일으키는 위험인자로 알려졌다"며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단속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금연 구역에서의 흡연은 각 보건소 보건지도과나 건강증진과 등의 부서에서 단속합니다.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 따르면 단속은 현장 목격이 원칙입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과태료가 부과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신고받은 담당 부서에서 현장에 오기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하면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눈앞의 흡연자를 처벌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오는 12월 23일이면 담뱃갑 경고 그림이 새로이 바뀝니다. 담배꽁초가 가득 담긴 젖병을 아기에게 물리고 있는 그림도 쓰일 예정입니다. 간접흡연에 취약한 유아나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진이라도 사용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바꾼다고 큰 효과를 내리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금연 구역 범위를 확대하고 단속의 실효성도 높이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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