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간자본주의 vs 국가자본주의

입력 2022-09-04 17:44   수정 2022-09-05 00:33

정부는 공언했던 것처럼 재정적자를 최소화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이 어려워진다며 정부를 비판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는 기본소득으로 대표되는 ‘큰 정부론’이다. 이 대표는 여론을 얻기 위해 논란을 키울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는 복합위기가 암초다. 위기 때는 모두가 정부를 찾는다. 현 상황은 큰 정부론에 유리하다. 윤 대통령은 한국 사회가 처한 시대 조건부터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균형재정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두고 대통령과 국민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면 180석에 달하는 범야권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세계는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민간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로 나뉘고 있다. 한국은 그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의 소유자가 이윤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데, 소유 주체가 개인(또는 기업)이면 민간자본주의, 정부면 국가자본주의로 분류한다. 국가자본주의에서 정부는 이윤 전체를 직접 소유하거나, 자본 위의 자본으로 군림하며 시장의 이윤을 자기 뜻대로 재배분한다. 중국은 1990년대 세계화 훈풍을 타고 민간 경제를 활성화했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방향을 180도 바꿨다. 시 주석은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자국의 최정상급 기업을 당의 도구로 만들었고, 홍콩의 일국양제를 폐기하며 민간자본주의와의 공존을 거부했다.

당연히 국가자본주의가 세계의 선택일 수는 없다. 민간을 통제하는 정부가 민주주의에 우호적일 리 없고, 자원 배분을 독점한 정부가 창조성과 다양성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경제 선진화에 적합할 리 없다. 독재와 중진국 함정이 국가자본주의의 치명적 결함이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독재가 시진핑 개인의 독재로 악화했고,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도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자마자 하락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국가자본주의에 친화적인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법정 최저임금을 도구로 삼아 시장의 소득분배율을 강제로 조정하려 들었다. 당연히 정책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시장의 자원 배분과 소득 분배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경제철학이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정부 주도 경제의 ‘끝판왕’ 격인 기본소득 주창자다. 봉건 군주정의 정부론이라 할 ‘억강부약’과 ‘대동세상’도 대선 기간에 강조했다.

물론 한국이 중국 같은 국가자본주의로 단숨에 변모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경제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자주 등장하면 체제의 성격이 시나브로 바뀔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정책화한 것이 단적인 예다. 민주당이 ‘문빠’ ‘개딸’ 등의 팬덤 정치에 포획된 것도 시사적이다. 국가자본주의의 필요조건이 정치적 광기란 점은 ‘프로토파시즘’(파시즘의 토양이 되는 사상과 운동) 이론에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 경제학 석학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정부의 적절한 역할을 찾는 게 번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국민은 정부가 사라지면 생존을 빼앗기고, 정부가 전지전능해지면 자유를 빼앗긴다. 역사적으로도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은 국민이 행복했다. 균형의 핵심은 리바이어던(정부)에 채울 족쇄를 찾는 것이다. 애쓰모글루는 그 족쇄가 민간의 역동성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세계는 국가자본주의로 불리는, 족쇄 없는 리바이어던에 위협받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족쇄부터 찾아야 한다.

민간 주도와 균형재정을 기치로 삼은 내년 예산안은 시대적 차원에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 민생 프레임을 앞세워 리바이어던의 족쇄를 벗기려는 야당과 대통령은 논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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