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일깨운 기억, 40년 전 8월의 일이다. 치기(稚氣) 어린 헤엄 내기가 화근이었다. 친구 둘과 강 건너기를 하다가 물살 한복판에서 그만 힘이 빠져 버린 것이다. 수영 선수인 그들은 허우적대는 친구를 구하러 왔으나 쭈뼛쭈뼛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한 명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는 순간, 그들은 불에 덴 강아지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멀찍이 달아났다. 가라앉던 조난자를 건져낸 영웅은 허겁지겁 나룻배를 몰아온 낚시꾼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이후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구조를 포기했다는 미안함과 버려졌다는 절망, 하마터면 모두를 지역 뉴스 주인공으로 만들뻔한 조난자의 자책이 뒤엉켜 가슴속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물은 트라우마가 됐다.그러나 주민 6명은 영웅을 맞이하지 못했다. 며칠 뒤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로 차례상을 차렸을 이웃들이다. 지난달 9일 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끝내 숨져간 세 모녀도 그랬다. 구조에 찬사가 쏟아질수록 안타까움이 증폭되는 까닭이다.
기적의 생환 드라마는 오히려 우리 재난 대응 시스템의 틈을 아프게 비춘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의 실종이다. 시간을 8월 8일로 돌려보자.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던 때, “10분 뒤면 차량이 침수된다”는 실시간 메시지를 서울 강남역 반경 1㎞ 식당, 카페 등에 산재해 있던 이들과 반지하 주민들에게 ‘맞춤형’으로 전송했다면 어땠을까. 위치기반 실시간 대피 경고 시스템이다. 현장에서 탈출한 한 시민은 “엉뚱한 코로나 메시지가 여러 곳에서 왔지만, 침수 경고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기상청 예보 시스템은 세계 6위다. 자체 수리예측 모델을 가진 세계 9개국 중 한 곳이다. 우리보다 50년 일찍 투자를 시작한 일본의 예보 시스템을 초고속으로 따라잡은 것에 놀라워하는 나라가 많다.
문제는 더 빠른 기후변화 속도다. ‘역대 3위’로 평가되는 힌남노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폭설, 우박, 가뭄 등 극한 재난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국내 한 대기과학 전문가는 “육지와 바다의 온도 차가 커질수록 태풍 크기가 커진다”며 “최근 추세라면 10월에도 슈퍼 태풍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토 3분의 2가 잠긴 파키스탄 대홍수는 남의 일이 아니다. 시간당 200㎜가 쏟아지거나 초속 70m의 ‘괴물 강풍’이 불어닥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얘기다. 재난 극복은 국가 수준의 척도다.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내주지 않겠다는 ‘퍼펙트 재난 관리’ 체계를 겨냥해야 한다. 내일이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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