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과 '안면몰수' 화법이 지배하는 정치권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9-08 09:20   수정 2022-09-08 09:54


정치인의 말은 곧 경쟁력이다. 윈스턴 처칠 같이 위대한 정치인의 묵직한 말은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크게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기도 한다. 로널드 레이건과 같이 촌철살인의 유머와 위트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고 국민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우리 정치판은 어떤가. 불행하게도 아니다. ‘옳지, 잘 걸려들었다’는 듯 날이 서고 조롱 섞인 말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면서 정치를 가십화시키기 일쑤다. 진지한 토론과 진중하고 무게 있는 말들은 찾기 힘들다.

대표직에서 강제 퇴출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부터 돌아보자. 그는 당 대표 시절 대표가 아니라 정치평론가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수시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이견이 있으면 토론을 통해 타협하는 게 정상이다. 특히 당 대표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물론 의사 소통 수단이 다양화 된 요즘 시대에 매번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6월 당 대표가 된 이후 SNS 등을 활용, 외곽에서 상대에게 포를 때렸다. 대표를 떠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롱과 자극적인 단어로 상대를 비아냥하니 정치를 희화화, 가십화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디코이(decoy·유인용 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하네요. 다음 주 내내 ‘간장 한 사발’ 할 거 같다” “당권 탐욕에 제정신 못 차리는 나즈굴과 골룸(탐욕적인 반지의 제왕 캐릭터)” “그 섬(여의도)에서는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 “삼성가노(三姓家奴)…”. “저 같이 여론선동을 잘하는 사람” “흑화(黑化)하지 않도록 만들어달라” 등 자화자찬성, 협박성 발언도 있다.

이 대표는 또 그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데 대해 정진석 국회부의장(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응수했다. ‘개소리’ ‘싸가지’ ‘나쁜 술수’ 등 온갖 험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 두 사람 모두 ‘오십보백보’다.

젊은 당 대표의 톡톡 튀는 감각적 언어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론 감정적인 단어 몇개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당 대표로서 바람직한 태도이냐에 대해선 의문이 따라다닌다. 벌어지는 현상을 단어 하나에 압축시켜 담아내는 탁월한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정적을 공격하는데 초점을 두면서 그 스스로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 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은 현란하다. 국기문란·무당 나라·침탈 루트 등 갈라치기에 언론탓으로 돌리고, ‘침소봉대’라며 역공하는 게 그렇다는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면 몰수’ 화법이다. 예컨대 이 의원이 성남시장 시절 설계했다는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두고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했다. 대장동 의혹 관련 인물들이 대부분 이 의원과 엮여 있는 사람들인데 반복적으로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하면서 상황을 반전시켜려 했다.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 1처장이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이 의원은 성남시장 시절 그와 11일 간 호주·뉴질랜드 출장까지 같이 다녀왔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공개됐는데도 “(김문기와 출장 간 사실이)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성남)시장 재직 때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고 말했다가 고발당했다. 백현동 개발비리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이 대표가 “엉뚱한 것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다”는 인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선거에서 허위 사실 공표는 공정 경쟁을 훼손하는 것으로 엄중히 다루기 때문에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고학력·고소득자 등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다. 저학력에 저소득층이 국힘(국민의힘) 지지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한 말은 저학력·저소득층은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쉽게 휘둘린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그는 플랫폼을 만들어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가 거센 비판이 일자 “재미있으라고 과장한 게 문제가 됐다”고 했다. 건전한 비판과 당 발전 방안 건의 등을 위한 플랫폼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누가 욕을 많이 먹는지 점검하겠다고 하면 의원들에게 팬덤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되고 이는 자칫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포퓰리즘과 중우정치를 낳을 수 있다.

고함에는 고함으로, 막말에는 막말로 되받는 풍토는 상대를 굴복시키기는 커녕, 감정의 골만 깊게한다. 우리도 때론 묵중한 한마디, 때론 ‘촌철살인’의 유머와 재치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정치인 화법을 언제 볼 수 있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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