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3200년 전 학교 풍경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2-09-17 11:00   수정 2023-04-27 16:19


“학생의 귀는 등에 달려 있다. 학생들은 등짝을 맞아야 말을 듣기 때문이다.”

기원전 12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작성된 파피루스 ‘아나스타시 III’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집트의 서기관(글을 읽고 쓰는 전문직으로, 대부분 관료)을 양성하는 학교의 선생님이 남긴 말이죠. 요즘 이런 선생님이 있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당시 서기관 학교 분위기는 상당히 엄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배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글자 수는 2500개가 넘고, 상형문자였던 탓에 ‘잘 그리는’ 법도 익혀야 했죠. 어려운 글을 능숙하게 읽고 쓰려면 5년 넘게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난주 이 코너의 기사 ‘“아들아, 공무원이 최고다”…4000년 전 아버지의 진심’이 여러 독자님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고대 문자의 해독 과정을 주로 다뤘는데, 제목에 있는 이집트 서기관의 생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집트 서기관이 어떤 직업이었고 봉급과 ‘워라밸’은 어땠는지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군사령관부터 지방 신전 공무원까지, 업무·대우 천차만별

이집트 서기관은 그 이름 때문에 지금의 4급 공무원(서기관)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한자 표기(書記官)조차 똑같죠. 영어로 하면 좀 구분이 편합니다. 정부의 서기관은 보통 director로 번역됩니다. 행정 조직의 과장이라는 의미가 강하죠. 반면 이집트 서기관은 영어로 scribe. 쓴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말 그대로 이집트 서기관은 글을 쓰는 전문직이었습니다. 각종 공문서와 세금 계산을 비롯해 글을 읽고 쓰는 모든 일은 서기관의 손을 거쳐야 했죠. 그 수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전체 인구의 1~2% 정도였다고 생각하시면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일종의 특권 계층이기도 했죠. 병역의 의무가 면제됐고, 피라미드 건설 등 국가사업에도 동원되지 않았으니까요.

이들의 직업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파라오의 신하, 즉 중앙 행정부 관료가 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귀족의 영지에서 세금을 걷고 재무를 관리하는 서기관도 있었습니다. 전자는 국가직, 후자는 지방직 공무원에 비유할 수 있겠죠. 법원이나 신전에서 일하기도 했고 외교관이나 직업 군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두 직간접적으로 파라오 밑에서 나랏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집트 서기관은 좁은 의미의 공무원(일반행정직 공무원)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공무원에는 해당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다만 같은 서기관이라도 하는 일과 대우는 매우 달랐습니다. 9급 주민센터 공무원과 장관, 육군참모총장과 국세청 직원의 업무와 월급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말이죠. 직위에 따른 ‘월급 차이’는 기원전 1800년경 작성된 ‘베를린 파피루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당시 한 신전의 고위 공무원은 일당으로 빵 15개와 맥주 일곱 병을 받았는데, 말단 서기관은 빵 한 개 반과 맥주 두 병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수입으로 먹고살기 쉽지 않았겠죠. 그 말단 서기관은 “괜히 공부했다. 농사나 지을 걸…”이라고 푸념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왕(파라오)이 된 서기관도 있었습니다. 투탕카멘(우리가 아는 그 투탕카멘 맞습니다)의 뒤를 이어 기원전 1300년 전후의 이집트를 30여년간 통치한 호렘헤브가 그 주인공입니다. 평민 출신인 그는 서기관 학교를 나와 외교관을 거쳐 직업 군인이 됐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발휘한 덕분에 ‘폭풍 승진’을 거듭했고, 투탕카멘의 신임을 받아 이집트군 총사령관이 됐죠. ‘왕의 대리인’으로도 임명됐습니다. 왕이 후계자 없이 죽으면 왕 자리를 이어받는, 미국의 부통령 비슷한 자리입니다.

투탕카멘이 18세의 어린 나이로 자식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호렘헤브는 이집트의 일인자가 됩니다. 약간의 권력 다툼을 거쳐 파라오에 즉위하는 데 성공한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혼란스러운 이집트를 평정하고 국방·사법·행정 전반을 개혁하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지요. 재미있는 건 호렘헤브의 후계자도 호렘헤브의 핏줄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왕위를 이어받은 건 측근이자 재상이었던 파람세스(람세스 1세)였습니다. 투탕카멘처럼 호렘헤브도 왕위를 이어받을 자식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빨간펜’ 첨삭 받으며 ‘열공’

서기관이 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정부나 신전이 세운 학교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서기관이면 아들도 서기관인 경우가 많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귀족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호렘헤브의 부모가 평민이었던 것처럼요.

다만 자식을 공부시키려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는 있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낼 학비, 필기구 등 각종 재료비를 마련해야 했으니까요. 학생이 먹을 밥을 학교에 직접 갖다줘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웠죠. 있는 집이야 가사도우미가 식사를 갖다줬지만, 아니면 가족이 도시락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서기관이 되려면 일종의 장학생으로 뽑혀 부자의 후원을 받거나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동네 서기관 밑에 견습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배우는 수준은 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서기관이 되려는 학생들은 어린 나이(6~10세)에 학교에 갔습니다. 교육은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걸렸습니다. 막 입학한 학생들은 상형 문자의 기본 원리를 익히는 데서 시작해 편지나 보고서, 계약서 등 다양한 예문을 베껴 쓰고 외우며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수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문학 작품도 중요한 교과목 중 하나였는데, 지난 코너에서 소개한 “꼭 공무원이 돼라”는 아버지의 충고도 ‘필사용 예문’으로 쓰였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집트 문학 작품 중 일부는 원본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학생이 베껴 쓴 버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렇게 베끼고 외워 쓴 문서는 선생님의 첨삭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때도 선생님이 ‘빨간 펜’을 썼다는 겁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검은색 잉크로 일반적인 내용을 쓰고, 중요한 용어를 쓰거나 문서를 첨삭할 때는 빨간색 잉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관습은 지금도 여전하네요. 쪽지 시험도 봤다고 합니다. 체벌도 적잖게 이뤄졌고요.

서기관들은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외우며 건설과 기술, 예절과 군사 업무 등으로 지식을 넓혀나갔습니다. 체조와 수영 등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었고, 천문학과 의학 등 당시 최신 과학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집트 신화도 중요한 교과목 중 하나였죠. 이렇게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면 각자의 실력과 형편에 따라 직장을 택했습니다.
묵묵히 뼈 빠지게 일한 서기관 많아

서기관들의 실제 삶은 어땠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요. 엘리트 계층이긴 했지만, 이들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4000년 전 이집트 서기관이었던 와(Wah)의 삶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줍니다. 기원전 2005년경 지금의 그리스 지역에서 태어난 와는 여섯살 무렵부터 서기관이 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0대 중후반에 서기관 훈련을 마친 그는 이 지역 출신의 고위 관료인 메케트레의 영지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지자체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곳에서 회계를 기록하고 편지를 쓰다가 승진해 창고 관리자까지 오릅니다.

그의 키는 180cm에 달했습니다. 지금도 큰 키인데, 그때는 거의 거인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조각상을 보면 전체적인 외모도 괜찮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월한 유전자를 자랑하던 그도 사무직 샐러리맨의 슬픈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 살이 많이 찐 거죠. 유골에 발을 다쳤던 흔적이 있다는 점을 미뤄보면 발을 다치면서 거동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30세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짧은 수명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그의 무덤이 메케트레의 무덤 근처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과 함께요. 이집트 왕족이나 귀족은 사후세계에서도 일을 시키기 위해 이런 식으로 신하나 고용인들의 모형을 무덤에 함께 묻었습니다. 와는 죽어서도 영원히 일을 시키고 싶어질 정도로 일을 열심히, 잘했던 모양입니다.

일은 별로 하지 않고 특권을 누리는 서기관도 있었겠지만, 고대 이집트에는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 서기관도 많았습니다. 이집트가 고대 세계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3000년 넘게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서기관들의 역할이 컸을 겁니다.

지난 주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는 공무원을 비난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부 공무원의 갑질 등 일탈, 공직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시스템, 공공부문의 과도한 팽창 등은 비판해 마땅하겠죠. 공직 사회의 수준이 이만큼 올라온 것도 국민들의 비판과 감시가 있었던 덕분이고요. 하지만 저는 6000년 전 이집트처럼, 지금 한국에도 게으르고 부패한 공무원보다 열심히 일하는 선량한 공무원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군인·경찰·소방공무원을 비롯해 밤낮없이 일하는 모든 공무원분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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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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