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모 잃고 의료서비스 '인생 승부'…약국체인 넘어 헬스케어社 변신 '지휘'

입력 2022-09-18 16:08   수정 2022-09-26 16:29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해 자신 안의 힘과 목적을 깨닫게 된다.”

미국 최대 약국 체인인 CVS헬스의 카렌 린치 최고경영자(CEO)는 비극적인 경험을 딛고 미 헬스케어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그는 12세 때 모친, 20대 때 ‘제2의 어머니’ 역할을 하던 이모를 질병으로 잃었다. 이후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됐다. CVS헬스는 경제매체 포천이 선정한 올해 500대 기업 중 4위를 차지했다.

린치는 CVS헬스가 약국 체인을 넘어 종합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최근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을 꺾고 홈헬스케어 기업 시그니파이헬스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모친과 이모 사망 후 의료에 관심
린치는 1963년에 태어나 어려운 유년기와 청소년기, 20대를 보냈다. 린치가 12세 때인 1975년 그의 모친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모친이 사망한 뒤 이모가 린치와 그의 형제자매 양육을 맡았다. 자신의 아들에 더해 조카 4명까지 ‘싱글맘’으로 키워낸 이모에 대해 린치는 “나의 멘토이자 역할모델,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모마저 폐암과 폐기종,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다 린치가 28세이던 1991년 세상을 떠났다.

린치는 어머니와 이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문제의식도 갖게 됐다. 린치의 모친은 오랜 기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지만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린치는 “이모를 간병하면서 나는 처방전 등을 이해하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역설적이지만 당시 느꼈던 좌절과 무력감이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됐고 내 인생의 변곡점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분홍색 좋아하는 금발이 어때서
린치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BU) 퀘스트롬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어니스트앤영(EY)에서 공인회계사(CP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EY에서 린치는 주로 보험회사와 병원을 감사하는 업무를 맡으며 자연스럽게 헬스케어 산업계와 가까워졌다. 이어 린치는 미 보험회사 시그나와 마젤란헬스서비스를 거쳐 2012년 대형 보험회사 애트나에 합류했다.

그는 2015년 1월 애트나 16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사장이 됐다. 애트나 사장이 된 뒤 린치는 모친, 이모와 관련된 아픈 개인사를 공개했다. 그는 “그제서야 갑옷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린치는 주목받는 여성 경영자였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019년 린치를 혁신적인 기업인 10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0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한 명으로 린치를 꼽았다. 그러나 린치는 여성으로서 고위직에 오르는 길이 험난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위직으로 승진할 첫 기회가 왔을 때 나의 작은 키와 금발머리, 중후하지 않은 목소리, 분홍색 옷을 자주 입는 취향 등 ‘여성성’이 문제가 됐다”며 “하지만 당시 면접관에게 ‘나 자신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린치는 매일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시작하는 등 건강관리에도 철저하다.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변신
CVS헬스가 2018년 애트나를 인수한 뒤 린치는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았다. CVS헬스의 차기 CEO 후보군에 들어간 것. 애트나가 경쟁 보험사인 코벤트리헬스를 2013~2014년 인수합병(M&A)할 당시 쌓은 린치의 역량이 CVS헬스와 애트나의 통합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CVS헬스는 린치를 차기 CEO로 선임했다고 2020년 11월 발표했고, 린치는 2021년 2월 취임했다. 당시 CVS헬스는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5위(올해는 4위)를 차지한 대기업이었다. 린치는 미국 여성 CEO 중 가장 큰 기업을 경영하는 인물이 됐다. 린치가 CVS헬스 CEO를 맡았을 당시 회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으킨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에 있었다. CVS헬스 약국은 코로나19 검사 및 백신 접종의 거점이 됐다. 그러나 린치는 CVS헬스가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린치는 CVS헬스가 약국 체인을 넘어서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CVS헬스는 1963년 약국 하나로 시작해 미국 전역에 1만 개 가까운 약국을 거느리는 기업이 됐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CVS헬스가 약국 중심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약 배송 등을 해주는 스타트업들이 기존 약국 사업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아마존까지 헬스케어 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린치는 CVS헬스가 건강보험, 의약품 처방, 의약용품 판매, 직접진료까지 포괄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CVS헬스의 일부 약국은 당뇨병, 우울증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요가수업까지 연다. CVS헬스는 최근 홈헬스케어 기업 시그니파이헬스 인수를 성사시키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CVS헬스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늘어난 806억달러, 영업이익은 5.6% 증가한 45억달러를 기록했다. CVS헬스는 2분기 실적을 공개하면서 올해 연간 실적 가이던스(전망치)를 상향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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